왜 늘 예민하고 공허할까
현대인은 예민하다. 각자가 세워놓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려야 하니, 시간을 한시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되니 더 예민하다. 목표의 정도는 누군가에겐 소소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다. 가령, 오늘 하루 일이 끝나고 운동을 하는 것은 소소한 목표나, 보디빌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늘 하루 영어 단어를 열개 외우고 잠에 드는 건 소소하나, 프리토킹이 가능한 수준을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평소 공부하고 싶었던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근데 소소한 거든, 장기적이든 현대인은 그 목적의 기준을 스스로에게 두지 않는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본인이 얼만큼 능력치가 있는지를 살핀다. 달리기를 하는데 내가 지금 어디에 왔는지 중간에 옆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조금 앞서간다 싶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뒤처진다 싶으면 불안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본인을 더 채찍질한다. 근데 이 달리기가 국가별 이어달리기라고 생각해 보자. 같은 편 선수가 늦게 달리면 답답하다. 그래서 도발을 한다. 더 빨리 달리라고 자극하고,화를 내기도 하고, 빡세게 훈련을 시키기도 하고, 당근을 주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아래 일상 속 예시를 보자.
1. 면접에 들어갔는데 면접관이 공백기에 대해 트집을 잡는다. 그때 뭐 했냐고 경찰 심문조사하듯 캐묻는다.
2. 신혼여행에 갔다 온 친구와 커피 한잔을 하다 "너는 결혼 언제 해?"라고 묻는다.
3. 이름 있는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가 내는 취업턱 저녁자리에, 친구가 취업준비생 또 다른 친구에게 "요즘 어디 넣고 있어? 잘 돼 가?"라고 묻는다.
4. 집에 내려갈 때마다 부모님은 만나는 사람 없냐고 트집을 잡는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내 카지노 게임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5. 지금 카지노 게임이 잘 살고 있는 건지를 알기 위해 익명 게시판에는 늘 이런 질문이 돌아다닌다.
"저 30살에 1억 모았는데 잘 살고 있는 것 맞나요?"
자, 일상생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무한경쟁사회 자체를 욕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같다. 받아들이되, 왜곡된 시선으로만 일축해선 안된다. 돈 많이 벌면 당연히 좋은 거니까. 취업하면 당연히좋은 거니까. 다시 말하면, 주위에서 이렇게 말을 해 준다는 뜻은 본인은 언제든지 현재 기준에서 이룰 수 있음을 말한다. '아직 기회가 주어져있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다 가능성이 보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다.그래서 기분 나쁘게 들을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는 본인이 아직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본인에게 그 시기를 묻는 것이다. 나이가 오십넘은 노총각에게 아무도 ’너는 결혼 안 하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제 하기 힘들다는 걸 다 알거든. 경력도 변변찮은 나이 사십이 넘은 백수에게 아무도 취업 안 하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쉽지 않거든. 일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절대 공백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뽑고 싶고,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 자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현상은 그 자체로 고무적이다. 같은 편의 이어달리기라고 표현한 것이, 다 나를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카지노 게임 것. 부모님이나 아끼는 친구나, 내 상사가 될 수도 있는 면접관이나 본인에겐 어쨌든 미래에 귀인이 된다.
근데 중요한 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데에 있다. 결혼이나 취업이나, 재테크나, 연애나, 본인이 바라는 그 목표를 결국 주변의 관심과 본인의 노력 끝에 이뤘다 치자. 정상적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달리기 선수로 컸다 치자. 자, 이제 이들은 또다시 같은 운동장을 계속 돌듯 경쟁을 반복한다. 계속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취업은 어디에 했는지, 결혼은 누구랑 했고, 얼마나 부부관계가 좋은지,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연애하는 남자친구의 성격은 어떤지, 재테크로 나보다 더 잘 버는 사람은 누군지 끊임없이 경쟁하고 또 경쟁한다. 어떻게 하면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심한다. 과연 이게 인간의 본연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이렇게 결국 다 이뤄도 불행하다. 그때 사람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공허해진다. 그래서 길 가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 출근길 출근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 다 회색빛, 무표정인 것이다. 왜냐고? 감정이 없거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고, 그냥 생계를 위한 반복적인 운동장 달리기만 계속하고 있는 거거든. 나중에는 이 경쟁에서 이겨도 행복하지 않은 지경까지 이른다. 그리고 그들은 번아웃이 오고 정신과 상담을 다닌다.
나는 이 현상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이 현대인의 답을명확히 알고 있다. 본인이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목표를 막상 이루고 나니 허망하겠지.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착각하고 살아서 그렇다. 즉,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지금 내 현재의 마음이 평온한 것’ 그게 진짜 행복이다. 나는 어떨 때 마음이 평온한가. 나는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평온하고 내적인 성취 그리고 안정을 느낀다. 본인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꼭 한번 이상은 가져야 한다. 그 일을 하루에 10분이라도, 생계를 하는 일과 병행하면서 본인을 키워나가면 일상 속에 아주 작은 행복이나마 남게 되고 갈수록 그 행복은 커지게 된다. 그 행복만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사는 이 세상, 운동장을 계속 달리고, 빨리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것 자체를 버려야 한다. 본인 생각만 맞다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그걸 이루든 안 이루든 결국 공허함은 어떻게든 밀려온다. 진짜 별거 없이 그냥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소소하게 타인과 대화하며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던가,누구는 책을 읽으며 내적성장을 이룬다던가, 조용한 클래식과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명상을 한다거나. 행복은 진짜 사실 별거 없다. 근데 우린 이 별거 없는 게 진짜 별거 아니라고 등한시한다. 사실은 제일 값진 건데.
피 터지는 경쟁은 내적성장과 나라의 경제발전은 가져오겠지만, 결국 그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곪아간다. 그렇게 내 청춘은 지나버린다.
자, 봐라. 요즘 자기 계발 콘텐츠가 인기다. 유튜브만 켜면 웅장한 음악이 흐르고, 새벽 몇 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해서 성공한 유명인들의 일대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면서 억지스러운 자기암시를 하면서 성공을 향해 쫓는 영상들. 이런 건 동기부여라는 원론적인 목표를 넘어 더 서로 간 경쟁만 부추긴다. 근데 생각해 보자. 회사에 아무리 목숨을 건들, 임원을 한들 60세가 지나 정년퇴직을 하면 어떨까? 그냥 길가는 동네 아저씨일 뿐. 남은 건 본인 아파트 한채. 사업에서 큰 성과를 이뤘다 치자. 영원할 수 있을까 평생? 피 터지는 또 다른 노력이 수반된다. 그 경쟁의 값은 결국 허상인 것. 지나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 사이사이, 자기 계발 사이사이 내 본연의 행복감을 꼭 찾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삶의 질이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다, 연봉을 많이 받는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건강하게 산다 같은 숫자로 표현되는 맹목적인 조건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 아니라, 이게 삶의 질이다.
‘얼마나 내가 자주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냐’가 삶의 질을 떡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