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불행하다고 카지노 게임 이들에게
누군가는 소확행을 추구하라고 한다. 소소한 것에 카지노 게임을 느끼며 살아라는 것이다. 힘겨운 하루를 끝마치고 산책하면서 느끼는 상쾌함,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노랫소리에 흥겨움, 맛있는 치킨을 먹으며 혹은 친구와 맥주 한잔하면서 느끼는 후련함, 편안함. 카지노 게임의 빈도를 이렇게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어떤 대단한 성취보다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믿는다.
근데 또 다른 누군가는 대확행을 추구하라고 한다. 대확행은 일어나는 행위 자체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소확행에서의 예시를 그대로 가져와본다. 산책을 하는 소소함에 누군가 카지노 게임을 느낀다면 산책 자체를 할 수 있는 것에 카지노 게임을 느끼란 거다. 건강이 좋지 않아 혹은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지 않아 이 세상에는 산책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여럿 있을 테니까. 청각장애인은 노랫소리 자체를 듣지 못한다. 이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치킨을 살 수 없는 경제적 궁핍에 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술을 끊어야만 하는 치료 중인 알코올중독자들은 맥주 한잔 자체도 마시기 어렵다.
어떤 방향을 택하던 그건 본인 마음이다. 둘 다 장단점을 가진다. 먼저 소확행을 보자. 소소한 것에 카지노 게임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역치가 낮은 카지노 게임으로 삶 자체는 만족스러울지라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수 있다. 그냥 쭉 계속 잔잔하게 가는 거다.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비즈니스맨은 되지 못할지언정, 잔잔하게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공무원처럼. 또 이미 본인은 소소한 카지노 게임을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 선을 그어버리기 때문에, 자기 계발에 인색하게 되고 그 자체로의 삶에 안주해 버릴 수도 있다.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무한경쟁사회, 비교문화, 1등 만을 기억하는 이 한국사회에서는 어쩌면 조금은 필요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쉴 때 뭘 하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거나, TV를 본다. 길게 시간이 비는 카지노 게임들은? 무조건 여행을 간다. 한국인만큼 여행 자주 가는카지노 게임도 없다. 불경기에도 어떻게든 돈 모아서 해외로 나간다. 자, 이때 한국인은 여행에서 '그냥 쉼'이 아니라, 여기서마저 무언가 얻어오려 발버둥 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려 지식을 쌓아온다던지, 문화체험을한다던지, 하물며 이렇게 놀고 있는 것도 죄책감에 시달려 문화체험이라는 합리화로 포장하기 바쁜데, 일상은 어떠하리. 여행이 도움이 돼 나중에 또 본인을 성장시켜야 되거든. 개인적으로 이런 문화 속에서는 사실 조금 안주해도 큰 상관은 없는 듯하다.
자, 그럼 카지노 게임을 보자.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존재자체에 의미를 두기에 만족스러울 수 있다. 근데 주위에 있는 너도, 나도 다 같은 상황이라면? 언젠가는 만족 자체를 못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마저 무뎌지는 것이다. 아니면 본인이 애초에 인지를 하면서 억지로 자기 암시를 해야만, 노력을 해야만 카지노 게임을 느낄 수 있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평생 못 느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 카지노 게임이라는 발언 자체도 '타인은 그렇게 못 누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렇게 하고 있다'라는 비교에서 오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건강한 마인드라고는 사실 보기 어렵다. 안 좋게 표현하자면 정신승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 취업난이 사상 최악이라고 한다. 통계상으로만 일을 하지 않는 청년이 120만 명이란다. 장담컨대 실제 내가 추측하는 수치는 400만~500만 될 거다. 진짜다. 왜냐고? 이 120만 명은 실제 취업의지가 있거나 구직 중인 인원을 전부 제외시킨 숫자거든. 취업난의 원인을 파고들어 가면 이렇게 끝도 없기 때문에 요점만 보면 카지노 게임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가 직장이라도 있음에 감사하자'라는 마인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 직장인이 오늘 하루 상사에게 수없이 깨졌고, 출근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아 죽고 싶고, 연봉에 불만족하고, 출퇴근거리가 너무 멀고, 본인의 능력대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 모든 순간에서도 그냥 '직장의 존재 여부'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생활을 근근이 버텨나가는 거다. 이건 말이 좋아야 카지노 게임이지 사실 정신승리에 근접한 것이 맞다.
카지노 게임을 찾는 방향은 이렇게 각자 다르다. 정답이 없다. 그리고 100%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방향에서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법에 위배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본인이 카지노 게임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그 방법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적절하게 찾아갈 수 있을지가 결국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놓인 숙제라 본다. 근데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10억, 아니 100억이 있어도 불행하다. 인간은 간사하고, 단순해서 욕심을 부리니 늘 더 크고 대단한 걸 바란다. 그게 본인에게 충만함을 채워줄 거라는 착각 속에서. 그래서 우리는 각자만의 카지노 게임을 꼭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찾은 하나의 방법을 공유하자면, 소확행과 대확행의 균형을 간당간당하게 맞추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긍정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까를 연구해 보는 것이다. 본인에게 관대한 평가를 해나가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무한긍정의 의미를 부여해 본다. 취업난 속에서 직장 자체가 있음에 감사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아직 다음 주워크숍이 있으니 상사와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라고 생각해 본다거나, ‘내가 다음에 맡을 프로젝트에 저번보다 더 준비를 철저히 해보는 것. 다시 올 기회를 잡아보는 것’ 이런 것이다.
노래의 흥겨움에서만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게 아니라‘오늘은 카지노 게임 할 일을 그래도 다 완수하고 노래를 들을 시간이 있네, 산책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구나’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카지노 게임 스스로 처한 환경과 조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해보는 거다.
누군가 오늘 생일이라면 대확행은 아, 오늘 00번째 생일이 올 수 있음에, 아직 살아있는 거 자체가 카지노 게임이구나라고 한다. 소확행은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아서 카지노 게임하다. 근데 조금 더 본인의 환경과 조건을 재해석해 보면 누군가는 그 여러 명의 친구도 없을 수도 있으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 딱 한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카지노 게임하다고 재평가를 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한 명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해서 카지노 게임하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꼭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카지노 게임의 종류를 넘어 인생의 난이도를현저히 낮추는 길이라 본다.
100% 카지노 게임한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누군가는 불행하고, 100% 불행한 상황 속 놓여있더라도 누군가는 카지노 게임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해도 나보다 불행한 사람 널렸고, 내가 제일 카지노 게임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해도 나보다 더 카지노 게임한 사람 많다. 어차피 다 상대적인 개념이다. 살아가며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가는 우리는 혼자서 스스로가 처한 상황과 조건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왜냐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지금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대박칠 수도 있다. 소확행과 대확행의 균형을 찾아가는 연습, 조건과 상황을 긍정적 재해석을 해야만이 이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를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이 120만이라는 기사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내 글의 유입키워드에도 이런 단어를 봤다. 취업을 준비한다고 연인과 이별했단다. 진짜 슬픈 일이다. 직접 경험해 봐서 너무 잘 안다.
내가 말한 카지노 게임도 찰나의 순간이고 힘든 시절도 결국 다 잠깐이다. 잠깐이기에, 유한한 시간이기에 그게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움켜쥐려 사람들은 소확행이니 대확행이니 단어를 만드는 거다.
터널은 늘 끝이 있기 마련. 그러니 모두 힘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