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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lee Mar 24. 2025

카지노 게임 타고

몰랐던 것들- 너에 대해서- 그 길 위에서

오른팔을 차창턱에 걸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릴 때쯤 팔을 들고 아래위로 휘저어 본다. 괜찮아지면 내 자리는 원래 거기라는 듯 창턱으로 팔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언제부터 오른쪽 팔을 차창밖으로 내밀고 다녔다고 자연스럽다 못해 현지인이었던 듯 당연했다. 내 팔만 당연한 게 아니라 내 모든 것이 당연했으면 했을 것이다. 이 길의 끝은 알 수 없고 이 길의 시작도 기억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서 나는 내 팔이 언제부터 현지인이 된 건지 기억나지 않을 그때 태국의 어느 길을 달리고 있음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때는 카지노 게임도 좋았던 그때였었다.


카지노 게임와 나는 같이 살고 있었다. 왜 같이 살게 된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내 집이 아니라 숙소였었고 카지노 게임는 집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 아침저녁으로 옆방에서 자고 일어나고 있는 카지노 게임를 가라고 안 했던 것 같다. 얼마나 지났다고 외로웠던지 같이 밥 먹을 때도 화장실을 쓸 때 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조금씩 사라지는 듯해서 그냥 같이 살게 된 것 같다. 머리를 빡빡 밀어서 세수할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얼굴인지 잊어버린다며 머리를 감은건지 세수를 한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수건을 축축이 해 두고 발까지 닦으며 다시 써야 할 나를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며 걸어 두는 참기 힘든 버릇을 제외하고는 여러 모로 쓸모가 많았다. 태국말을 할 줄 알고 몸 쓰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 같이 먹고 다니면 편하기까지 했으니 같이 살아 주는 건 카지노 게임입장에서는 나를 불쌍히 여겨 살아 줬을 수도 있다. 한국이었으면 서로 대화하기 불편했을지도 모를 동쪽과 서쪽의 사투리가 섞여 서로 뭔 말인지 해석이 필요했을 텐데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 그냥 고국사람이니 서로의 사투리도 반가울 뿐이었다.'카지노 게임요잉~' 이 말을 말의 끄트머리에 붙여가며 썼었는데 나는 이 말이 재미있었다. 그 말의 끝에 나는 이렇게 꼭 토를 달았다. '그라이'라는 말은 추임새이며 긍정의 대답이었다. 뭘 하든 뭘 먹든 나는 순응하고 긍정하며 선택을 맡겼던 것이니 이렇게 대답했었던 것이다. 그래도 서로 불편함 없이 의견 대립 없이 잘 지냈으니 어쩌면 같은 민족임을 잊지 않고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영래는 내가 좋은 게 아니라 한국인이 좋은 거고 나도 태국말을 하는 한국인이 필요했던 것이었으니 나는 순수하지 못했었던 계산적인 어른이었던 것이다. 점점 영래와 살면서 그 어른이 됨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계절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곳은 사계절이 있어 짧은 옷차림에 눈이 돌아갈 때 바깥은 여름이었임을, 외롭다고 폼 잡고 싶을 때면 늦가을이고 내리는 비조차 차가움을 버렸을 때 그때는 봄이 온 것이었을 계절,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던 하얀 눈의 겨울을 가진 내가 살았던 곳과 다른 이곳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서 그냥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정도만 아침에 확인했던 것 같다. 카지노 게임서 언제였을지 기억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서 어느 날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문득'을 붙여야겠다.


어느 날 문득 "거기 가봤어?"라고 물었다. 처음 듣는 곳이라고 한다. '비치'라는 영화에 나오는 곳인데 디카프리오가 영화 찍은 거기를 모르다니 태국에 살면서 왜 모르는 거지. 영덕 하면 대게, 대구 하면 사과, 전주 하면 비빔밥, 광주 하면 민주화인가? 뭐 이런 것처럼 연상되는 그런 이미지가 있듯이 태국 하면 '비치'라는 영화가 떠오르고 비치하면 코사무이가 연상되었었다. 실제 촬영지는 태국의 이곳저곳이었을 테지만 섬이라는 신비로움을 나타내고자 전면에 내세웠을 그 섬을 가 보고 싶어 물어본 것이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한국에서 일하던 시간보다 더 길어지고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로 인해 개인적 시간을 버리고 살고 있어서 인지 물어보고 나서 잊고 지냈었다. 한국 본사의 어떤 이유로 며칠정도 의도치 않은 휴무를 통보받은 나는 아침에 일어나 영래에게 다시 물었다. "거기 갈래?"라고 다시 물었다. 눈만 끔뻑이던 영래는 "지금이요잉~"이라고 되묻길래 "그라이 깐 지금."라고 했다. 당장 갈 생각이 없었고 망설이거나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생각이 많은 나와는 다르게 영래는 항상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 영래몸이 내 몸이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영래가 반팔 티셔츠 한 장 입고는 "챙길 것들 챙기고 계십시오. 제가 후딱 차 한 대 빌려 올라니까요잉~"라며 바로 나가 버렸다. 뭘 챙기면 되지. 팬티 2장 챙기고 그냥 뭘 할지 생각하고 있으니 영래가 왔다. '빰빰빰빰 빠밤~' 맥가이버가 타고 다니던 그 지프차와 똑 닮은 지붕 없는 차를 빌려왔다. 맘에 들면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재수 없는 표정을 하고는 차키를 던지라면 손짓하고 직접 시동을 걸어 봤다. '아~ 그래 이 소리지' 우렁찬 경운기 소리와 함께 토해내는 시꺼먼 매연을 보며 '그래 이게 낭만일거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팬티 2장만 챙기고 출발한 우리는 그냥 좋았다. 어른이면 무모한 출발이지만 우린 어른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른이 아니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어때? 요즘 잘 지내지' '다음에 만나서 술 한잔 하자.' '다음 휴가 때는 같이 보내자.' '어 다음에 꼭 가야지.' 누구를 만나서도 어떤 것을 하고 싶을 때도 항상 이런 말이 나온다. 빈말인 줄 알면서도 기다려지기도 하고 기다렸던 어른의 말은 그때는 잊었던 것 같다. 태양소년 에스테반을 하교 후 테레비에서 하기만을 기다리며 볼 때도, 주말이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매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맥가이버를 좋아했던 나는 지프차를 보자 꿈을 이루러 가는 어린이가 된 것이었다.

출발하고 10분쯤 지났을까. 오토바이가 주 이동수단이었던 영래는 오른쪽에 있는 운전대에 적응이 안 되어 그나마 조금 나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곤 우리는 하나씩 알게 된 것이다. 지도 한 장 외에 우리에겐 목적지만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도 웃었다. 가다 보면 나오겠지. 가다가 배고프면 먹으면 되고 가다가 모르면 물어보면 되니깐.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선착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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