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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 Mar 02. 2025

방정

카지노 쿠폰의 사랑의 말

“방~정!”

“방~정!”

내가 여섯 살 손자에게 손으로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하면서 “방~정”이라고하면 손자 녀석도 “방~정”하며 장난스럽게 따라 한다. ‘방정’이라는 말은 내가 손자 아이와 똑같은 나이었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말썽꾸러기였던 나에게 하였던 말이다. 내가 말썽을 피울 때면 외할아버지는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하며 ‘방정’이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지금 손자 아이는 ‘방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단지 장난으로 하는 말인지 아는 모양이다. 나 역시 처음 외할아버지가 ‘방정’이라 하며꿀밤을 먹이려고 하였을 때 근엄하신 카지노 쿠폰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마다 말썽을 피울 때에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는 카지노 쿠폰가 나를 혼내는 말이라는 것을 눈치채게되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는 아들이 없이 딸만 둘 있었다. 아들이 없자 마을 사람들은 외할아버지에게 소실小室을 얻어 아들을 낳아 대를 이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단호하였다.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며 딸이 둘이나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큰 딸이 일찍 죽고 딸 하나만 남게 되었다. 남은 딸은 무남독녀 외동딸이 된 것이다. 두 분은 외동딸을 애지중지하며 키웠고 단출한 세 식구였지만 오순도순 살았다. 딸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첫아들을 낳았다. 두 분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아들을 딸이 낳아 손자를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좋았을까.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무남독녀 외동딸인 어머니는 나를 낳았다.


카지노 쿠폰는 큰 키에 마른 체격이지만 허리가 곧고 걸음이 빨랐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작은 방으로 가서 책을 읽거나 화투로 패를 나누다가는 긴 두루마기를 입고 휭 하니바람을 일으키며 사립문 밖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마을에 가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 수 없으나 점심때가 되면 어김없이 시간을 지켜 들어오고 식사를 마치면 다시 휭 하니 도포자락을 날리며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 멀어지곤 하였다. 카지노 쿠폰는 엄격하고 올곧은 성격으로 마치 대쪽 같은 분이었다. 동네에서 누군가 불의한 일을 저지르면 참지 않고 잘못을 꾸짖었다. 마을에서는 호랑이 같이 무서운 분이었다. 그러나 철부지 장난꾸러기였던 나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고 고작 혼낸다는 것이 “방~정”이라며 가짜 꿀밤을 먹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흔치 않은 미소를 지으면서 오히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로 잠시 돌아간 듯한 표정이 된다. 나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카지노 쿠폰였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방학 다음날 곧장 카지노 쿠폰 댁으로 간다. 또 방학이 끝나는 날이 돼서야집으로 돌아온다. 일 년이면 두 달은 카지노 쿠폰 집에서 보낸다. 두 분은 방학이 시작되기를 나보다 더 손꼽아 기다린다.카지노 쿠폰 집은 구불구불 돌담길을 걸어가면 맨 끝에 동화처럼 앉아있는 아담한 초가집이다. 큰 방과 작은 방이 있고 큰 방과 작은 방 사이에 광이 있다. 살림살이는 두 분만큼이나단출하고 정갈하다. 장롱도 화장대도 없다. 가구라고는 키 작은 반닫이 하나만 방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계절에 입을 옷 몇 벌은 깨끗이 다림질하여 벽에 못을 박고 걸었다. 계절이 지난 옷은 반닫이에 가지런히 개어 넣어 두었다. 소박한 이불 몇 채는 벽에 통 대나무 2개를 걸쳐 만든 시렁 위에 올렸다. 그 옆으로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종이를 발라 만든 함지에 속옷이며 양말이며 버선이 들어 있고, 또 그 옆 함지에는 외할머니의 바느질실이며 바늘, 가위 따위가 담겨 있다. 맨 끝 또 다른 함지는 카지노 쿠폰 전용이다. 그 안에는 주로 담배가 들어 있는데 곰방대에 담배 잎을 비벼 넣고 피우는 봉초(封草) 몇 개가 카지노 쿠폰를 기다리고 있다. 벽 한쪽에는작은 거울이 걸려 있는데 외할머니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곱게 빗어 쪽진 머리를 하면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할머니가 된다.


외할머니는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큰 방에서 정지로 난 아주 작은 문을 열고 나가서 솔가지에 불을 붙여 가마솥에 밥을 하고 큰방으로 밥을 차려 낸다. 네모진 상에는 외할아버지와 내가 겸상을 하고 외할머니는 동그란 작은 상에서 혼자 밥을 드신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당신을 한없이 낮추는 가운데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살림살이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꼭 두 분을 닮아서 소박하고 정갈하고 그리고 맛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그때 그 밥상 그 음식이다.


광에는 두 사람은 들어갈 커다란 옹기 독 몇 개와 작은 독들이 벽을 대고 서 있다. 여기에는 쌀이며 보리며 식량이 들어 있다. 간혹 곶감이며 홍시 감을 독 안에 넣어 두었다가 겨울에 꺼내주곤 하였다. 마당 오른쪽에는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왼쪽에는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여름이면 주황색으로 잘 익은 살구가 맛있고, 겨울이면 홍시가 된 감이 배부르다. 마당 한편에는 까만 토종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다른 가축은 키우지 않았다. 다른 쪽 마당에는 장독대가 자리하고 그 옆으로 작은 텃밭이 있어서 파, 상추, 부추를 길러 그때그때의 찬(饌)에 맛을 더 한다.


집안이며 마당 살림이며 꼭 필요한 것 만 가지고, 키우며, 검소하고 청빈하기 이를 데 없다. 뭐 하나 더 있는 것도 없고 남아돌아 허투루 허비하는 것이 없다.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욕심내지 않고 마음은 항상 너그러웠다. 동냥하러 오는 사람에게는 쌀 아까운 줄 모르고 인정을 베풀었다. 누가 그분들에게 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만큼은 큰 부자였다.


나는 지금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가득한 사랑이 그리워서 손자들에게 “방~정” 하며 가짜 꿀밤을 먹인다. 이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알아줄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받은 사랑을 전해주면 아이들도 먼 훗날 그들의 손자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전해지고 퍼져나가고, ‘방정’은 우리만의 사랑의 또 다른 말이 되어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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