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읽으며
큰맘 먹고 집 정리를 하면서 버려야 할 책들을 골라냈다. 30년 전에 사 두었던 책도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그중에는 12권 전집으로 된 ‘대 세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책도 있었다. 책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다시 책꽂이에 책을 꽂고 무슨 대단한 도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의지를 불태우며 세계사를 읽기 시작했다.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이 책은 인류의 탄생부터 시작된다. 다윈은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류의 조상 속에 있었을 것이고 인류가 처음 생겨난 곳은 아프리카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500만 년 전에 원숭이류에서 진화한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이다. 호모 사피엔스답게 인류는 1백70만 년 전에 석기를 만들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열매를 채집하고 동물을 수렵하며 오랫동안 석기시대를 살았다. 6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하였다.
최초 문명의 발상지인 수메르에서 기원한 고대 오리엔트는 바빌론과 앗시리아, 페르시아로 이어졌다. 기원전 4천 년에 문자를 사용하였고, 수메르인들은 농경문화의 발달로 보리로 맥주를 만들어 먹었다 한다. 화려했던 고대 오리엔트 문화는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빛은 동방에서 온다고 했던가. 그리스는 에게해와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상국가이다. 지중해로 진출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동방의 오리엔트 지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역을 하며 성장하였다. 기원전 6백 년 경 인류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원소라고 하였다. 물의 생명력을 발견하고 주장한 그의 사상은 우주의 만물은 신이 만들었다는 신화적인 해석에서 인간의 사고와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고 새로운 우주관과 철학과 과학이 생겨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많은 철학자, 수학자, 의학자들이 탄생하고 그들은 광장에서 시민들과 토론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 문화는 서양 문화 발달의 기반이 되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발현한 그리스도교는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점차 세력을 확대해 갔다.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젊은 아내를 새로 맞았는데 새 왕비는 황제의 아들이 자신을 농락했다고 거짓으로 고하여 황제는 아들을 끓는 물속에 넣어 죽였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분노한 황제는 또다시 젊은 왕비를 끓는 물속에 넣어 죽였다. 황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313년에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였다.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이 유럽을 지배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고 서구 사회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종교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2천 년 전에 문자를 사용하였고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기원전 97년에 쓰였다고 한다. 유교는 오늘날까지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며 통치 이념으로,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규율하는 예법으로 자리하였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인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유럽보다 문화와 문명이 발달해 있었다. 서구의 나라들은 아시아로부터 비단, 향료 등을 교역하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였고, 스페인은 콜럼버스를 지원하여 인도의 새 항로를 발견하기 위하여 항해를 하였으나 콜럼버스가 도착한 것은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이들은 신대륙에서 황금을 발견하고, 원주민과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자원을 착취하였다. 중남미 지역의 황금과 아시아 지역의 특산물인 향료를 장악하기 위한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서구 나라들은 세계 곳곳을 정복하고 식민지를 만들었다.
식민지 경쟁과 서구 각국의 패권 경쟁이 시작되면서 좁은 유럽 대륙에서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결국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두 번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민간인 포함하여 7천만여 명이라고 한다. 당시의 소련에서만 2,900만 명이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서 570만 명이 죽었다. 전 세계가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였음에도 세계대전이 끝나고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세계는 또다시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와 내전이 끊이질 않는다. 인류는 과연 평화의 유전자가가 진화를 멈추고 퇴화하고 있는 것일까.
고대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정복 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통하여 영웅이 탄생하고 마치 그들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미화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몇 사람의 영웅에 의해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정리하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나는 다니고 있는 능곡성당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정리하여 카지노 게임 사이트서를 편찬할 때 집필자로 참여하였다. 성당 설립 40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정리하고 서술하는데 하루 5시간씩, 1년 6개월 동안 오로지 그 일에 매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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