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운 Mar 10. 2025

카지노 게임 규정해버린 그 한마디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라는 말을 지금 한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져가며 찾고 있다. 분명 나에게는 익숙한 말인데 그 정확한 뜻을 모른다. 사실 ‘카지노 게임’인지, ‘텁쌔기’인지, ‘텁세기’인지, 아니면 ‘텁새기’인지 알지 못한다. 발음이 비슷한 말을 검색해 보지만 컴퓨터는 답이 없다.


‘카지노 게임’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초등학교 때인 것 같다. 어머니는 8남매의 맏이인 내게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곤 하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이미 식구가 10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되었으니 어머니는 손발이 몇 개는 더 필요하였다. 기껏 심부름을 시키면 나는 그릇을 깨거나, 살림살이를 떨어뜨려 망가뜨리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아이고 ‘카지노 게임’ 같이 또 깨먹었네 또 깨먹었어!” 이렇게 야단을 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고, 어찌 된 일인지 심부름만 하면 실수를 더 자주 반복하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는 어른이 되면서 점차 잊혀갔다. 어머니는 성장한 내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카지노 게임’는 한동안 나에게서 잊힌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내와 점점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게 된 어느 날 갑자기 아내의 입에서 ‘카지노 게임’가 튀어나왔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내게 하였던 그 말이 딱 그때 상황과 맞아떨어진 컵을 떨어뜨려 깨뜨린 순간 튀어나왔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서 그랬을까, 기분이 언짢기보다는 어쩐지 반갑기까지 하였다. 고등학생이 되어 어머니 곁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오래된 그 말을 다시 듣게 될 줄 몰랐다. 아내가 나를 비하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귀하고 우리끼리만 통하는 그 말을 재미있어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재미를 붙였는지 간혹 내가 실수를 저지르면 그때마다 ‘카지노 게임’를 자연스럽게 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행동은 덜렁거리고 조심성이 없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여전해서 집안에서도 어딘가에 부딪혀 다치고,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여기저기 긁히고,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한다. 뭐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작은 실수들 때문에 듣는 조롱이나 비하하는 카지노 게임 듣게 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누구나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설사 장난으로 하는 말일지라도 계속 반복되면 스트레스가 되고, 그 말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 실수를 더 자주 하게 된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데, 꾸중을 하면 추고 싶은 춤도 멈추게 되고, 마치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각인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통제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오랜만에 혼자 생활하는 딸이 집에 왔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는 딸에게 올 가을에 갓 나온 햅쌀이 있으니 조금 가져가라며 비닐봉지에 쌀을 담아 내 차에 실으라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잘못하여 손가락이 비닐봉지를 찔렀다. 쌀 한 주먹이 차 바닥에 흘렀다. 이 광경을 본 아내는 어떻게 하다가 쌀 봉지를 터트렸다며 ‘카지노 게임같다’고 내뱉었다. 나는 이제껏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웃어넘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도 모르게 화를 벌컥 냈다. 쌀 그까짓 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아내대로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낸다. 나는 나대로 “쌀 한 줌이 중요하냐? 사람의 감정이 더 중요하냐?” 이러며 싸운다. 사소한 일로 양보 없는 싸움이 계속되자, 결국 딸이 중재에 나섰다. 어른스러운 딸의 충고를 따를 수밖에 없어 내가 먼저 사과를 했다. 아내도 어렵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부모 곁을 떠나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 사회는 부모 밑에서 했던 작은 실수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냉혹한 책임과 평가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곳은 ‘카지노 게임’라는 듣기 싫은 말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 생존경쟁의 전쟁터 같았고, 누구도 무너진 자존심을 살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살아남고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곳임을 알게 된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변화하고 적응해야 했다. 덜렁거리는 것을 숨기고 차분한 척,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침착한 척, 걱정할 일도 담담한 척, 나는 점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차분하고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나를 원래부터 매우 참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사람으로 알았다. 아내와 3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아내로부터도 차분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왔다. 간혹 내가 실수를 하면 ‘카지노 게임’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지만 농담처럼 사용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화를 냈던 이유가 뭘까?


‘카지노 게임’는 어린 시절부터 50년을 넘게 나를 따라다니며 울게 하고 웃게 하였다.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마음에 상처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부단히 도 애를 썼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각인된 나의 열등감은 나를 성장하게도 하였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현관문을 여는 순간 회사에서 있었던 힘들었던 일과 모욕과 수치도 환한 웃음으로 위장하며 반기는 가족에게 안정과 평화와 행복감을 주려고 하였다. 가족들은 웃음 가득한 나를 보며 안도를 하고 든든해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인 나의 가장 큰 책무였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내려는 중압감을 그 누가 알아줄까?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 화를 보며 가장 놀란 것은 아내와 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아내와 딸에게 말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카지노 게임’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나의 성격은 차분하지도, 침착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 온 것뿐이고, 그것이 내 본래의 모습이라고 했다. 아내와 딸은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갑자기 숙연해졌다.


‘카지노 게임’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내와 나의 같은 고향인 전라남도 남부 해안지방의 사투리임에 틀림없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사전에 있는 가장 비슷한 말은 ‘덥석(텁석)’이 있다. ‘왈칵 달려들어 움켜잡는 모양’을 뜻하는 ‘덥석’이 경음화하여 ‘텁썩’이 되었고 어미에 ‘이’를 붙여 사람을 뜻하는 말로 ‘카지노 게임’로 변화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풀이하면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잡거나 놓치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사람’ 쯤으로 해석된다.


아내는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더 이상 ‘카지노 게임’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이제는 어디서도 영영 그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카지노 게임’라고 쉽게 나를 규정해 버렸던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비록 가식과 허위가 있을지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많은 시간들이 헛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