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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재원 Apr 01. 2025

1장 카지노 게임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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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소리가 싫다. 따르릉 소리도, 멜로디 링도, 진동도 다 싫다. 내 시간을 불쑥 찢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집 전화 따위 당연히 없다. 휴대 전화는 늘 모음 모드다. 어쩌다 부재중 전화 표시가 찍히면 그냥 무시한다. 부재중 전화가 반복되면 “짧은 용건은 문자로, 긴 용건은 메일 주세요” 라는 건방진 문자 한 줄 날린다.

그런 내가 전화 한 통 받고 인생이 뒤집혔다. 속된 말로 하자면 인생 정말 모른다.

2006년 7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데, 중복 무렵이었으니 대충 7월 26일이라 해 두자.

당시 나는 경력 13년의 30대 후반 중학교 교사이자 박사 학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싱싱한 교육학자였다. 덕분에 학교 수업 뿐 카지노 게임라 교사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강연으로 방학 때도 바쁘게 살며 얼마 남지 않은 30대를 탕진하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도 서울대학교에서 중등 1급 정교사 자격 연수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을 연달아 강의하고, 다시 오후 한 시부터 한 시 반부터 네시 반까지 세 시간을 연달아 강의하는 체력 고갈형 일정을 소화해야, 카지노 게임 소화되어야했다.

중복 답게 2006년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물론 끔찍한 2018년, 그 여름을 버티고 난 지금 기준으로 그 정도면 여름치곤 서늘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위란 상대적인 것이고, 적어도 그 당시 기준으로는 끔찍하게 더운 날이었다.

게다가 그 날 따라 강의실 냉방 장치에도 문제가 생겨 약한 냉방 이상으로 출력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 형편 없는 국립 대학 강의실에서 땀을 줄줄 흘려가며 아침부터 열강을 하며 나는 사정없이녹아 내리고 있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나니 밥 생각은 아예 안났고, 카페인과 포도당만 미칠듯이 당겼다. 1시간 밖에 안되는 휴식 시간을 북적대는 식당에서 허비하기 싫기도 했다.

식당 대신 새로 생긴 디저트 카페 투썸 플레이스의 넓적한 소파에 앉아 아포가토와 치즈 케이크를 흡수했다.달아오른 몸이 차분하게 가라 앉으며 느긋한 가수면 상태가 되었다. 혈당치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잔뜩 끌어 올리니 강의로 탕진한 젊음이 보충되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따르르릉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공기를 흔들며 나의 소중한 휴식을 찢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소리, 진동도 아닌 그야말로 고전적인 전화벨 소리.

머리 속에 잠잠히 흐르던 알파파가 소스라치며 도망가고, 그 자리를 스트레스와 분노, 그리고 약간의 슬픔이 차지했다.

전화벨 소리는 내가 눈을 뜬 다음에도 울렸고, 분노의 주먹을 불끈 쥐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다음에도 울렸다.

전화를 받지도 끄지도 않고 마냥 소리 지르게 두는 무례한 작자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소리지름으로써 응징해야 했다. 나는 사나운 눈길로 카페를 둘러보았다.

여긴가 싶으면 저기 같고, 저긴가 싶으면 또 다른 쪽이 의심스러운 것이 마치 숲 속에서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 같았다.

짜증이 밀려 올라와 딱따구리처럼 턱을 두드렸다.

나는 범인을 특정할 생각을 버리고 불특정한 누군가를 향해 내어 던질 “거 전화 좀 받읍시다.”라는 고함을 위한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다섯, 넷, 셋.

카운트 다운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며 스쳐갔다. 전화벨 소리 진원지가 아무래도 내 가방인 것 같았다.

설마 카지노 게임겠지? 그래도 혹시? 가방을 열었다.

이런! 설마가 사람 잡았다. 가방 안에서 끔찍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내 전화기가 보인 것이다..

후끈거리는 느낌이 가슴에서 목을 넘어 뺨을 타고 올라와 귓볼에 가서야 멈추었다. 카운트 다운 끝나기 전에 찾았기에 망정이지 행여 소리라도 질렀으면 완전히 프랑스 코메디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도대체 어쩌다 전화기 무음모드가 해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카지노 게임었다. 나는 사람들의 경멸에 찬 눈초리가 쏟아지기 전에 통화 버튼을 눌러 벨 소리부터 껐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낯선 여자 목소리.

“예?”

“권오석 선생님 전화 맞죠?”

통화할 생각 없이 그저 벨소리만 끄고 다시 끊을 생각이었는데 대뜸 이렇게 치고 들어오니 그냥 끊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카지노 게임 선생님 친구분 맞으시죠?”

이건 또 뭔가? 정말 무례한 여자다.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이름을 묻더니, 이제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 이름을 들추어 댔다.

덕분에 나는 그 이름을, 그리고 그 이름에 얽힌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기억과 함께 상실의 아픔도 무의식의 창고문을 부수고 다시 살아났다.

카지노 게임.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아니 친구였던 카지노 게임, 권정우.

순간 내 귀에 온갖 기억이 토네이도처럼 밀려왔다. 피아노와 한 몸이 되어 수천명의 청중을 휘어잡던 그 모습. 음표 하나 하나가 살아서 춤추는 것 같던 그 연주. 그리고 6월항쟁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농성장에서, 철거민들의 움막 앞에서 모차르트를 들려주던 그 초월적인 눈 빛.

그냥 건조하게 소개하자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던 천재 음악가. 카지노 게임는 예명, 본명은 권정우. 카지노 게임라는 예명은 클래식 좀 아는 사람들은 바로 짐작하겠지만 피아니스트 카지노 게임 리파티의 이름에서 따왔다.

내 정체가 밝혀지고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까지 거론되었으니 통화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음, 저는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은 늘 어색했고, 그 친구를 정우라고 불렀습니다.”

“아, 네. 카지노 게임.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권카지노 게임 선생님 친구 분이신거죠?”

“맞습니다.”

“저희가 찾아 뵈어도 될까요? 뵙고 말씀드렸으면 하는데.”

아니, 이건 또 뭔가? 갈수록 태산, 아니 티벳 고원이었다. 다짜고짜 이름을 묻고 원하지 않는 기억을 카지노 게임하더니 이제는 만나자? 이게 무슨 매너인가?

교사 본능이 발동된 나는 그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저는 지금 전화하신 분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초면에 대뜸 이름을 묻고, 이미 세상을 친구를 묻고, 이제는 만나자고까지 하시는데, 이건 너무 경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절합니다.”

“어머, 죄송합니다.”

그제야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지며 순서가 거꾸로 된 통화 예절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지노 게임 음악재단 간사 이하람입니다.”

카지노 게임 음악재단? 아니 그런 게 있었나? 언제 생겼지?

그 이름을 한참 떠올려 보던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건 대학 시절 정우가 작업실 겸 레슨실로 사용하던 오피스텔 문패에 붙여 놓았던 이름이었다. 진짜 그런 재단 법인을 세웠던 것은 카지노 게임었고 젊음의 치기로 멋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사용하는 재단법인이 카지노 게임가 세상을 떠난지 3년이나 지났는데 새삼스레 나타났다? 이거 웬지 피싱 사기꾼 아닌가 하는 의심이 버썩 들었다.

전화 속 목소리도 내가 그런 의심하는 것을 느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대상 없는 변명을 했다.

“아직 잘 모르실 겁니다. 아직 세워진 지 얼마 안되어서.”

“아, 그렇군요. 그런데 재단이 저하고는 무슨 용건이 있을까요? 저는 음악가도 카지노 게임고, 부자도 아닌데?”

나는 바로 방어 모드로 들어갔다. 카지노 게임 이름을 따 무슨 단체 만든 다음 그를 아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돈이라도 뜯어내려는 수작 이지 싶었다.

“꼭 뵙고 말씀드려야 한다고. 이사장님이 말씀하셔서.”

“이사장님이라 하시면?”

“네, 최유선 교수님이십니다.”

“아, 최유선?”

아, 최유선. 최유선이 이사장이라면 적어도 사기 단체는 카지노 게임겠구나 싶었다.

최유선은 다름아닌 정우의 아내, 아니 아내였었던 사람이니까. 사실최유선을 단지 정우의 아내라고 소개하는 건 부당하다. 최유선은 하프시코드, 오르간 등 피아노 이전의 건반악기 권위자며, 런던 로얄 오페라 부감독, 영국 고음악 연구소 교수를 지내는 등 본인 커리어도 상당한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누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이 커리어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긴 했겠지만, 그것도 자신의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최유선 하면 저돌적인 추진력의 화신이었다. 카지노 게임와의 결혼도 저돌적이었고, 카지노 게임가 지휘했던 ‘프로 무지카 서울’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저돌적으로 창단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영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루었고, 결혼 하자마자 임신했고, 그 자녀조차 쌍둥이였다.

최유선. 일단 그 저돌적인 이름이 나온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지만, 거절할 방법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재단이라는 곳이 뭘 하는 곳이고, 나한테 뭘 원하는지는 몰라도 최유선이라면 바라는 것을 관철시키고 말 것이다. 돈을 달라면 돈을 내어 주고 노동력을 징발한다면 가서 노력 봉사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음. 최유선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니. 일단 만나 보기로 하죠.”

“감사해요. 어디 계시죠?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아, 그건 강의중이라 곤란하고, 강의 끝나면 재단 사무실로 가죠. 아님 그쪽 편한 장소나. 문자로 장소 시간 보내주세요.”

“넵, 감사해요.”

전화를 끊자마자 무음 모드부터 다시 설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램프가 반짝이며 문자가 날아왔다.

‘송파구 문정동 올림피아 아파트 21동 706호.’

낯 익은 주소가 날아왔다. 카지노 게임가 결혼한 1993년부터 세상을 떠난 2003년까지 10년간 살았던 바로 그 곳.

맙소사. 최유선은 카지노 게임가 세상을 떠난지 3년이 지났는데 그 집을 팔지 않고 사무실로 바꾼 모양이었다.

이건 뭐지? 남편에 대한 그리움? 카지노 게임면 송파구의 40평대 아파트 하나 정도는 잉여로 굴려도 된다는 있는 여유?

내 기억은 자연스럽게 1993년 늦가을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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