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의 서포트
*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곳을 혹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애순은 제주도를 떠난다. 언제나 자신을 지지하는 관식과 함께. 하지만 부산으로 가출을 감행한 그들 앞에는 혹독한 세상이 있었다. 미성년자이기에 떳떳하지 못했고 돈이 없었기에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 냄새 풍기며 맞이해 준 여관방 주인의 음모와 배신에 둘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그들을 구한 건 용감한 엄마였다. 비록 금개구리의 행방에 큰 관심을 두었지만, 그 참에 고비를 넘긴 건 사실이니까. 또 한 사람의 숨은 공신은 금은방 주인이다. 아이들이 팔려던 패물을 얼씨구나 사지도 않았을 뿐더러, 훔친 패물을 팔러 온 여관방 주인을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했으니 말이다.
(애순의 딸)금명은 과외 하던 집의 사모에게 받은 대리 시험 제안을 거절한다. 사모는 이를 괴씸히 여겨 금명을 반지 도둑으로 몰았는데, 이 상황을 제지한 것은 다름아닌 그 집 가정부였다. 자신을 도운 누군가(금명의 엄마 애순)가 생각난 것이었으나, 반드시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거다.
세상 살이는 휘청거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힘을 주고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으로 무게를 주는 거다. 오래 살수록 비교적 균형을 잘 잡게 된다. 하지만 그 말이 어른은 휘청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들은 그 길의 초입에서 수없이 흔들리는 중이다. 작은 바람에도, 한 순간의 기쁨에도 아이의 몸과 마음은 크게 요동친다. 길을 잊거나 잃는 일이 허다하지 않을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질 테니 말이다.
균형잡지 못할 때 필요한 것이 어른의 손길이다. 어두운 밤길에 불을 켜 주든, 이쪽으로 기울었을 때 슬쩍 밀어 주든, 넘어지는 자리에 쿠션 한 장 깔아 주든 하는 것,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애순과 관식이 들렀던 금은방 주인과 금명이 과외하던 졸부집 가정부처럼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수많은 ‘어른’이 있었다. 튀김 대여섯 개를 집어먹고 몇백 원만 내도 그러려니 받아 주셨던 어른이 있었다. 텐트 칠 자리가 필요했던 학생들에게 무료로 자리를 내어 주신 어른이 있었다. 책을 고르는 척 만화책 한 권을 다 보는 학생을 모른 척해 준 어른이 있었다. 일탈이 일탈로 끝나게끔, 장난이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끔 나를 슬쩍 밀었던 수많은 어른이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분들은 나에게 의인이다. 진짜 어른이다. ‘나’라는 아이를 키운 건, 온 동네, 어쩌면 온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떠오른 그때의 기억에 새삼 감사하고 새삼 부끄럽다.
지금껏 나는 어떤 카지노 게임었는가.
앞으로 나는 어떤 카지노 게임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