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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써니 Apr 07. 2025

평생 읽을 책 같은 카지노 게임, 남편 그리고 아빠

책처럼 다가온 카지노 게임이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나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요즘 다섯 살 둥이는 백설공주와 콩쥐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주인공이 된 듯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엄마, 카지노 게임는 어떻게 결혼했어?” 하고 물어올 법도 한데, 아직은 그런 데엔 별 관심 없다.

“그건 안 궁금해. 빨리 책 읽어줘!”


재촉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도 궁금해하겠지. 엄마와 카지노 게임는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

그때가 오면 나는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평범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이야기야.

너희가 나올 줄은 몰랐던,

우리 가족 이야기가 시작된 순간이었지.”



서른넷의 여름, 보슬비가 내리던 서울 삼성동의 한 일식집에서 나는 카지노 게임을 만났다.

“유선아, 우리 사촌 오빠 한번 만나봐. 서른여덟이고, 배도 거의 안 나왔어. 진짜야.

회사도 괜찮고, 팀장이고, 경제력도 나쁘지 않아.

뭐랄까… 되게 무난해.

그냥 밥 한 끼 먹는다고 생각해봐.”


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의 정성 어린 소개였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서른여덟의 팀장님이 이미 와 있었다.

일자 앞머리, 스프레이로 정성껏 띄운 뒷머리, 제법 값나가는 코스 요리까지. 첫 만남의 모든 것이 갖춰진 듯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 술은 안 마셔요."

(카지노 게임은 속으로 경악했다고 한다. 이 좋은 안주에 술을 안 마시다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뒤로 우리가 함께 마신 소주만 해도 셀 수 없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아주 조금은 재미있게.


첫 만남은 그럭저럭 그렇게 끝났다. 딱히 큰 기대도, 특별한 감정도 없이.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 카지노 게임은 꽤 적극적으로 연락해왔다.

두 번째 만남. 이번엔 커피숍에서 시작해 세계 맥주를 마시며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맥주의 힘.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카지노 게임... 이 분위기보다 더 유쾌한데?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카지노 게임이구나. 마치 심심해 보이던 책표지 뒤에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즐겁게 마무리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카지노 게임 대망의 세 번째 만남. 우리는 단둘이 소주를 무려 여섯 병이나 마셨다. 여섯 시간 동안 끊이지 않던 대화. 하지만 단순히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과 말 사이, 시선과 시선 사이에서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이 카지노 게임, 참 재미있고 괜찮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이제 마흔을 훌쩍 넘긴 카지노 게임은 여전히 장난기가 넘친다. 둥이를 시도 때도 없이 약 올려 울리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내 화와 짜증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의 특별한 재능.

"돈 많은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아니었지? 어떡하냐, 속아서 결혼해서.“

이쯤 되면 웃어야 할지, 등을 한 대 쳐야 할지 헷갈린다.


게다가 카지노 게임의 지인들이 “왜 결혼했어?”라고 물으면,

“왜 결혼했냐고요? 얼굴 보고요. 성격은... 안 봤어요. 봤으면, 음, 다시 생각했을지도." 라고 답한다.

달콤한 듯 애매하고, 유쾌한 듯 찝찝한 말.

아내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농담 같지만,

어쩐지 진심이 살짝 묻어나 있어 묘하게 남는 여운.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카지노 게임이 만나 조금씩 맞춰가고,

다투고, 다시 웃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제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소행성이 만나 하나의 우주를 이루며,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얘들아, 너희를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아빠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카지노 게임이야.

엄마에게는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더 궁금해지는 소설책 같았고, 너희에게는 동화책처럼 신나고 궁금한 이야기로 가득한 카지노 게임이겠지?

그러니까, 우리 카지노 게임랑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이 다음 장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엄마도 참 기대돼.”


어쩌면 삶이란,

누군가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

그 카지노 게임의 책장을 함께 넘겨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때론 웃고, 때론 멈칫하며,

서로의 페이지를 읽고 써 내려가는 것.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책이 되어간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조심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새기며.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카지노 게임을 만나면 되는 건가.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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