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 폭탄을 맞았다. 우리 아파트 같은 평수대 세 배란다. 18만 원이 넘는 전기세, 이 집에 산 이래 최고 금액이다. 어쩌면 한여름을 보낸 다음 달 전기세가 더 높을 수도 있다. 그해 여름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고온 다습의 폭염이 연일이었다. 거실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에어컨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틀어 재꼈다. 아주 사소하고도 사소한 손바닥보다 더 작은 도마뱀 한 마리를 위해서.
인류의 눈에 도마뱀은 사소하다. 사소하다 못해 하찮고, 하찮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나의 눈에도 그랬다. 내 생활권 안에서 도마뱀은... 으으으 생각할 일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존재다. 더구나 나의 보금자리인 집 안에 들어올 일은 더더욱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가오지 않은 앞날을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우리 집에는 카지노 쿠폰이 산다.
- 엄마 우리 집에 카지노 쿠폰 있어.
-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같은 소리 하네.
- 아니, 정말 있어.
- 어디 있다는 거야.
- 오빠 방에.
2021년 7월의 일이었다. 아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귀엽다며 내게 한 번 보기를 권했다. 나는 갓 태어난 강아지가 옆에 오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다. 뱀은 더더욱 싫었다.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안 된다는 엄마의 절대 강권에 입도 벙긋 못했다. 그런데 도마뱀이라니.
가장 혐오스러워했던 것이 뱀이었다. 그냥 생각만 해도 징그럽고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싫었다. 어린 시절 풀밭을 스르르 지나가는 뱀을 어쩌다 만나게 되면 경기를 일으킬 것처럼 소리소리 질렀다. 뱀은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파충류, 뱀은 이유 없이 싫었고, 공격하지 않아도 위협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파충류 도마뱀과 아니 여름이와 오순도순 사랑에 빠져 산다.
여름이.
우리 집 도마뱀 이름이다. 얼떨결에 알게 된 여름이의 존재에 나는 거품을 물었다. 파충류, 도마뱀은 나의 보금자리에 살 수 없다고 고성을 질렀다. 엄청 귀엽다며 한 번만 보라는 아들 말을 무 자르듯 단칼에 잘랐다. 아들의 말은 그저 정신 나간 소리로만 들렸다. 여름이는 나에게 미물, 아주 사소한,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여름이가 우리와 살겠다고 자기 발로 스스로 우리 집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들은 여름이를 당당히 대접하면서 고이 모시고 왔다.
반려도마뱀. 인간으로 태어나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소리다. 반려강아지, 반려고양이는 들어봤어도 반려도마뱀이라니. 국어사전에 찾아봐도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있어도 반려파충류라는 말은 없다. 그럼 그렇지.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개, 고양이, 새 따위의 동물을 말하는데, 파충류한테 무슨 정서적 의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기가 차다 못해 숨이 막힌다. 강아지 고양이 안 된다고 하니까 어디서 뱀을 데리고 와. 파충류를. 여름이를 향한 나의 거부반응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아들은 여름이는 파충류도 뱀도 아니란다. 파충류도 뱀도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 뭐 또 다른 종이 생겼나.
파충류, 도마뱀이라는 낱말에서 이미 나는 오류투성이의 편견을 장착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파충류는 공격적이고 지능이 낮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맹신했다. 실제로 포유류나 조류보다 상대적으로 지능이 낮다. 그럼에도 모든 파충류를 미물 취급하면서 일반화시킬 수 없다. 아니 그리해서는 안 된다. 여름이는 나와 함께 음악을 듣는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는 여름이는 분명 음악을 듣고, 나와 눈을 맞추며 교감을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난가을, 그 누구보다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존재가 여름이다. 여름이는 나에게 정서적 위안 그 자체였다. 여름이는 감정을 가진 파충류이다. 전기세 폭탄이면 어떤가. 여름이가 내 곁에 있고, 발랑발랑 숨 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