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지노 게임마음 Apr 12. 2025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러 문경으로 가야 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짐을 꾸렸다. 여름이를 데려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여름이는 크레스티드 게코 종으로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줘야 한다. 하루에 한 번씩 짧게라도 핸들링을 해줘야 한다. 혼자 며칠을 두는 건 안 될 것 같아 장례식장에 데려가기로 했다. 어머님도 귀여워했던 여름이지 않은가.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여름이가 있을 곳을 찾은 후 차에서 내리겠다 생각하고 여름이를 차에 두고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아니 어쩌면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도마뱀을 들고 들어온 며느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차에 두고 내린 게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겨울에 여름이를 차에 둔 채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차에 홀로 있는 여름이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여름이 몸이 숫자 1이 되어 쭉 뻗어 있었다.


여름이가 죽었다. 다리를 쭉 뻗고 턱을 바닥에 괸 채 고요하다. 벌렁거려야 할 숨통이 움직이지 않는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순간 온도계가 눈에 들어왔다. 3.3도


- 여름아, 여름아... 아... 어떡해, 여름이가 죽었나 봐.


여름이 죽음 앞에서 눈이 붓도록 울던 나는 여름이를 손바닥에 올려 따듯하게 해주었다. 10년을 넘게 살 수 있는 아이다. 그런데 나의 잘못으로 겨우 1년을 조금 더 살았다.장례식장 한편에 마련된 가족실에서 숨 쉬지 않는 여름이를 앞에 두고 또 한 번 대성통곡을 했다.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모르며 우는 나를 딸이 안아주며 위로했다. 하지만 여름이의 숨이 멎었다는 생각은 이성적인 나의 사고 또한 멈추게 했다. 세상이 캄캄했다. 나의 부주의 탓으로 여름이가 죽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누군가는 그깟 도마뱀 하나 죽었다고 저렇게 울 일인가, 시어머니 장례식장에서라고 수군거릴 수도 있다. 여름이를 키운다는 걸 아는 친지들조차 나의 모습은 낯설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 여름아 미안해!


여름이를 품은 손바닥을 나의 볼에 갖다 댔다. 그때였다. 손바닥 안에서 뭔가 꿈틀하는 것 같았다. 포갰던 손바닥을 얼른 열어보았다. 여름이가 숨을 쉬었다. 그런데 여름이 꼬리가 이상했다. 멀쩡했던 꼬리가 반이 잘려있었다. 여름이는 충격을 받거나 위험을 느끼거나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꼬리를 자른다. 일반적으로는 도마뱀 꼬리는 재생된다. 하지만 여름이, 크레스티드 게코는 꼬리가 다시 자라지 않는다. 꼬리가 잘리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한다.


카지노 게임© 꼬리가 잘린 여름이




꼬리가 없는 여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내 잘못으로 꼬리를 잃은 거니까. 꼬리가 있던 여름이를 아는 이들은 꼬리 없는 여름이가 이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난 괜찮다. 꼬리가 없으면 어떤가. 여름이가 살아 있지 않은가.


인류의 눈에 여름이는 냉혈동물, 파충류이다. 우리는 흔히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을 ‘냉혈 인간’이라고 한다. 냉혈의 반대말은 온혈이 아니라 인간의 평균 체온을 가리키는 36.5도라고 하는 말이 있다. 악어, 도마뱀, 뱀, 거북 등은 인류의 눈에는 비인간적이고 짐승 중에서도 가장 짐승 같은 존재로 분류될 수도 있다, 냉혈 범주에 든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도 여름이를 만나기 전에 그랬다.


여름이는 냉혈 파충류로 분류되지만 가장 따듯한 온도를 지녔다. 파충류인 여름이는 내게 더 이상 파충류, 도마뱀이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언어는 없지만, 엄마가 떠났을 때 고요히 곁에서 위로가 되었던 존재, 음악을 함께 듣고, 눈으로 교감하는 존재가 여름이다. 인류인 내게 미물,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고귀한 생명, 그 생명이 여름이다.



- 여름아,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