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놀라면 애가 끊어져 단절되듯 ‘악’ 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좀 과장인 듯하지만 자고 일어나 “여름아” 하고 불렀는데 여름이 집이 텅 비어 있을 때는 순간 머리가 하얘진다.어느 해 여름 아침,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여름이를 부르며 일어났다. 그런데 여름이 집이 텅 비었다. 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여전히 빈 집이다. 여름이는 어디 갔을까.
유리 문이 통풍이 잘되지 않아 여름이 더울까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방충망 망사를 쫙 붙여준 게 화근이었다. 여름이는 똑똑한 도마뱀이었다. 방충망을 붙이고 그 틈으로 여름이를 넣고다시 붙였다는 걸 기억했나 보다. 그 틈으로 탈출을 했나. cctv를 설치한 게 아니니 어떻게 나갔는지 정확히는 모르니 추측이 사실인 양 생각할 수밖에.
그나저나 어디를 갔을까. 트윈 침대 매트리스를 낑낑거리며 들고 혼자 난리를 쳤다. 은신처를 좋아하는 녀석이니 침대 아래 들어갔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침대 아래 어디도 없었다. 땀으로 목욕하듯 애쓰며 매트리스를 들었던 공은 없었다. 덕분에 동글동글 먼지 청소는 제대로 했다. 그러고보니 사각형 방에 여름이가 숨을 곳은 너무나도 많다. 왜 이리 숨을 곳이 많은지. 물건을 다 버려야할 것 같다.
여름이는 작고 약삭빠르다. 평균 꼬리길이가 10-15cm에 몸통까지 합해도 15-25cm 정도다. 태어난지 1년 정도 지난 여름이는 꼬리 합해 21cm 정도였다. 숨으면 어디에 있는지 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편이다. 움직이면 엄청 약삭빠르지만 움직이지 않을 때는생각하는 로댕이 되어 하루종일 꼼짝하지 않고 가만있는 습성이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숨어 나오지 않으면 찾을 방도가 없다. 큰일 났다. 여름이가 나오지 않아 아무것도 못 먹으면...몹쓸 생각에 눈물이 났다. J한테 전화해서 여름이가 없어졌다며 울먹울먹. 그런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J가 어찌할 수 없으니 그저 어디 찾아봐 거기 찾아봤어 정도밖에.
통화하다 전기 들어오듯 ‘올라갔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여름이는 높이 타고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여름이 집도 넓이보다는 높이가 높은 게 좋다. 왜 애를 태울대로 태우고 이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이제라도 생각나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얼른 방 창문 턱에 올라가 장롱 위를 쳐다보았다. 순간 쥐눈이콩처럼 까만 여름이 눈과 딱 마주쳤다(여름이는 어두우면 눈이 쥐눈이콩처럼 까매진다). 마치 저 아래는 왜 저렇게 소란한 거야? 무슨 일이지? 라는 아주 궁금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빼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다급해졌다. 여름이가 손이 잘 닿지 않는 깊숙한 곳으로 다시 들어가 버릴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증거 사진은 남겨야지. 호시탐탐 탈출을 감행했었다고.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 사진이 희미하다. 하지만 더 이상 사진을 찍느라 놓치면 안 되니 얼른 여름이에게 손을 뻗쳤다.
휴,
잡았다!
내 손 안에 카지노 쿠폰가 들어왔다.
크레스티드 게코 습성
크레스티드 게코인 여름이는 올라타는 것과 숨는 것을 좋아합니다. 크레 습성 중 하나인데요. 호시탐탐 탈출을 노리는 여름이가 장롱 꼭대기에 올라간 것도 타고 오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크레 집(사육장)은 넓이가 넓은 것보다는 높이가 높은 것이 좋습니다. 또한 은신처가 필요한 여름이에게 비눗갑에 키친타월을 깔아주고 덮을 수 있도록 해주고, 코코넛 안에 들어가 숨을 수 있도록 해주었지요. 코코넛 은신처는 문처럼 뚫려 있는 부분이 있어 그런가 잘 들어가는 편은 아니랍니다. 포근하게 잘 수 있는 비눗갑을 애용하는데 키친타월을 이불처럼 폭 덮고 잠을 잔답니다. 아주 귀엽습니다. 탈출을 해서도 책꽂이 책 뒤에 숨거나 쓰레기통과 집 사이 틈에 붙어 있었던 것도 은신처를 좋아하는 크레의 습성때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