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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Feb 08. 2021

카지노 게임의 용, 정말 필요한가

<공정하다는 착각


먼저 살기 좋은 카지노 게임을
만들어야


최근에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다. 이 책은 시효가 다한 개천용 신화를 상기시킨다. 그에 따르면 용이 되지 못한 기타 생물들의 박탈감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이 분노를 자극한 트럼프 같은 표퓰리스트들의 등장으로 개천은 흙탕물로 변했다. 물론 미국처럼 넓은 땅을 개천으로 표현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개천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낮은 계급의 은유다.

태어난 신분에 따라 용을 꿈꿀 수 없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대로 살았다. 용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은 지위가 아니므로 수염을 휘날리며 거들먹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분제가 사라지고 누구나 트렌스포멀한 변신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자 각자의 입장에서 마음의 독소들이 자라났다. 오직 나의 능력으로 용이 되었다는 오만과 나의 무능력으로 용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세계를 병들게 했다.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민주당을 포함해 어느 정치인도 이들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용이 될 수 있는 공평한 기회와 개인적인 노오력만을 강조했다. 그 정점에 오바마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교육과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애썼고 그렇게 하라고 사람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무시당한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트럼프라는 이무기를 미국이라는 거대한 강 카지노 게임운데로 끄집어냈다.

샌델은 그동안 대학 졸업장이 변신의 자격증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꼬집는다. 부모의 부와 카지노 게임 지위 때문에 신분제가 사라진 곳에서도 그 자격증이 대물림되고 있다. 그는 보다 못한 나머지 해결책으로 대학 입학 추첨제까지 제안한다. 용이 되는 데는 노력뿐만 아니라 일정 부분 행운이 기여하게 하자는 것이다. 성공한 자들이 더 이상 오만해지지 않도록 그래서 낙오한 자들도 자책하지 않도록 만들자는 주장이다.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서 배달노동자의 카지노 게임 기여도는 월가의 파생상품 기획자보다 크다. 비록 학위가 없어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고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하지만 공리주의를 앞세운 자본주의적 성과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카지노 게임 기여도를 무시한다. 샌델의 주장에 따라면, 끊임없는 경쟁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고 그 파이를 나누면 된다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일의 가치를 논의하는 장마저도 매몰시켰다.

샌델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사회적 상승에 목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실패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일의 존엄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선(common good)’ 을 바탕으로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시민의식이 카지노 게임하다. 급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나눠지고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에서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언급한 공동선은 그가 추구하는 철학적 지향점이다. 공동선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의 입장에서 합의되어야 한다. 소비가 아니라 생산으로 공동선에 대한 기여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적 위치와 급여가 곧 일의 가치라는 등식이 허물어지게 된다. 바로 흙탕물을 제거하고 모두가 살기 좋은 깨끗한 카지노 게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곳에서는 모든 이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이 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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