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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Nov 05. 2024

허브티 내음

상념에서 신념까지

뇌를 재촉하여 신념에 대한 추억이나 관련된 사건 사고를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딱, 가슴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올려준 것은 노래 ‘카지노 게임’이다.

그것도 완전 옛날 노래. 꼬마 때 뜻도 모르고 흥얼거리던 ‘뚜와 에 무와’라는 듀엣이 부른 노래 ‘카지노 게임’ 말이다. 어쩌다 그 노래가 떠 올랐을까? 이것 참, 옛날 사람이라는 게 들통이 난다.


가사 첫머리부터 약~~속! 약~~~속! 이다.

대놓고 카지노 게임 노래임을 밝힌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둘이 만나자는 게 아니라, 그 언젠가 만나자던 너와 나의 카지노 게임이라고 한다.

나 같으면 콕 집어 카지노 게임을 할 텐데.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에 통기타 연주의 감미로운 옷을 입어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필원 박인희 씨 듀엣이 소박하고 기교 없이 참 담백하게도 불러 더욱더 애잔하다.


나는 시간카지노 게임을 중요시한다.

우리는 사람과 부대끼며 인생살이를 해나간다.

직장이든 모임이든 어느 울타리에서든 사람끼리 만난다.

그러니 사람 간에 시간 카지노 게임을 잘 지켜야 도리이고, 이런저런 교제에도 친분과 신뢰가 쌓이지 않겠는가?

시간 카지노 게임 개념이 있고 없고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척도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수리품을 맡겨놓고 찾는 시간, 병원이든 미용실이든 방문 예약 시간, 주문한 상품을 찾는 시간 등 사소하더라도 서로 정한 카지노 게임이니만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도 없거니와 운전이 겁나서 손을 못 대는 나는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한다.

카지노 게임이 있는 날은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언제 오는지, 몇 분에 나가면 될지에 민감하다.

버스와 지하철 환승 사정이 어떤지 수시로 시간을 확인한다.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더러 있게 마련이다.

버스 시간이 촉박할 때는 빨래를 너는 중에도 중단한다. 식구들 밥도 어떨 땐 외면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려움이 있음에도 무시하고 급히 집을 나설 때가 있다.

상대방에게 시간 카지노 게임을 안 지키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싫어서이다.

마음 불편해지는 게 싫다.


지각은 정말 어지간해서 안 하게 되지만, 지각을 면하려고 깔끔하게 끝내지 못하고 두고 온 내 일에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한 사람 됨됨이를 재는 나의 잣대에 들어맞고파서, 품위를 지키느라, 아니, 체면을 차리느라 식구들과 내 할 일을 뒷전에 두고 아무 일 없는 척하는 내가 부끄럽고 식구들에게 미안하다.

조금 늦어도 이해해 줄 자리라면 식구들 식사 준비만큼은 끝내고, 빨래도 다 널고 나온다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뭐가 맞는 것인지 자신이 없다.

과연 어떤 것이 ‘시간 카지노 게임’에 대한 올바른 처신인지 혼란스럽다.

옛날 노래 상념에 잠겼다가 ‘카지노 게임’에 대한 내 신념을 발견했달까? 어쩌다 여기까지 확장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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