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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 카지노 게임: 컨셉시온성에서 바라본 풍광. 하단부에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극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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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무서워했던 한니발, 그의 근거지 무료 카지노 게임
가브리엘은 주정뱅이였다. 그를 만난 건 스페인 남부 카르타헤나(Cartagena)에 있는 한 오스탈(hostal)이었는데 그는 볼 때마다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호스텔(hostel)을 스페인에서는 오스탈이라고 부른다. 낯선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필자를 앉혀두고 스페인어를 속사포처럼 구사하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자신은 카르타헤나 출신이고, 이 동네는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로마보다도 먼저 페니키아인들이 정착지를 만들 정도로 카르타헤나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했다. 가브리엘은 침을 튀기면서 열변을 토했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또 필자는 카르타헤나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정이 이러했지만 가브리엘이 민망하지 않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베리아반도는 문명의 십자로였다. 그래서 많은 이민족들이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했다. 서고트족 이전까지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온 대표적인 세력은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였다. 이들 중 페니키아가 큰 영향을 끼쳤다.
페니키아인들은 지금의 레바논 지역에 거점을 두고 지중해에서 활발하게 교역 활동을 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집트로 목재를 수출했고, 파피루스를 수입했다. 레바논에는 레바논 산맥이 있어 중동에 있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나무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나무가 백향목이다. 레바논 소나무로 불리는데 현재 레바논 국기에도 표시되어 있다.
* 로마극장: 카르타헤나의 로마극장의 야경. 카르타고 시절은 물론 로마시대에도 카르타헤나는 무척 중요한 지역이었다.
파피루스는 비블로스(Byblos) 항구에서 배에 실려 그리스로 수출됐다. 이런 점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중계항의 이름을 따서 파피루스를 ‘비블로스’라고 칭했다. 바이블(bible)과 책(book)의 어원도 비블로스가 된다.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문자의 기원이 된 페니키아 알파벳도 비블로스에서 만들어져 그리스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페니키아의 비블로스 항구는 서구 문명의 모태였다고 할 수 있다. 비블로스는 현재 주바일로 불리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경부터 이베리아반도에서 상업활동을 했다. 그들은 향수, 염장(소금에 절인 생선), 귀금속 등을 팔았고, 금과 은 등을 사서 갔다. 페니키아가 쇠퇴하자 그 자리를 그리스인들이 채웠다. 그리스인들은 서남부의 해안선을 따라 정착촌을 만들었고, 이베리아인들에게 제련기술, 건축, 공예품과 같은 문물들을 전수해주었다. 이 당시에 스페인 고대문화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바로 <엘체의 여신상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고는 기원전 814년,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세워진 나라이다. 페니키아 혈통인 무료 카지노 게임고는 작은 도시 국가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차츰 페니키아의 식민지들을 병합해나갔다. 페니키아는 페르시아와 같은 중동지역의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본국과 멀리 떨어져 있던 페니키아 식민지들은 무주공산이 되었고, 그 틈을 타고 무료 카지노 게임고가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무료 카지노 게임고가 지중해의 신흥강자로 등장한 것이다.
* 엘체의 여신상: 출처 위키커먼스
예전에 마피아들이 들끓었던,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은 지중해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더군다나 튀니지의 카르타고와 시칠리아는 불과 20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 시칠리아에 로마인들이 들어와 지중해 무역을 하려고 했다. 카르타고가 느긋하게 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지중해를 두고 펼쳐진 두 세력 간의 대결은 숙명과도 같았다.
기원전 264년, 1차 포에니(poeni) 전쟁이 발발했다. 페니키아인을 뜻하는 라틴어는 Poenicus인데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페니키아의 후예로 보았다. 그래서 카르타고와 로마와의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원전 241년, 23년간의 공방 끝에 로마가 승리를 했고,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에 대한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한다.
카르타헤나 답사는 컨셉시온성(Castillo de la Concepción)에서부터 시작된다. 컨셉시온성은 구시가지의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카르타헤나가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카르타헤나항 입구를 좌청룡 우백호처럼 양 옆으로 산들이 서 있고, 그 가운데로 배가 오간다. 항아리처럼 항구 안쪽은 넓고, 물살은 잔잔하다. 입구를 지키는 산들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르타헤나항은 지금도 스페인 해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잠수함의 모항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린테르나타워(Torre Linterna):9세기 경에 제작된 탑으로 등대로 쓰였다. 또한 항구 일대를 감시하는 망루 역할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을 도시로 만든 인물은 하밀카르 바르카(Hamilcar Barca)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맹활약을 했던 한니발(Hannibal)이 그의 아들이다.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하밀카르 바르카도 1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로마군과 싸워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명장이었다.
기원전 227년, 하밀카르 바르카는 북아프리카를 떠나 이베리아반도 동남부에 카르타헤나의 전신인 카르타고 노바(Carthago Nova)를 건설했다. 새로운 카르타고라는 뜻이다. 이곳은 방어에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에 은 광산도 있고, 곡물 생산에 유리한 경작지도 펼쳐져 있었다. 카르타고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하밀카르 바르카는 자신의 가문, 즉 바르카 가문이 이베리아반도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게 큰 토대를 세웠다. 그는 와신상담하듯, 이베리아반도에서 로마와 맞설 군대를 키워나갔다.
로마 정복이라는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하밀카르 바르카가 죽는다. 권력은 그의 사위인 하스두르발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하스두르발도 대업을 실행하지 못한 채 암살을 당하고 만다. 이제 드디어 한니발이 카르타노바의 최고 권력자로 오르게 됐다. 한니발은 자신 가문의 오랜 염원인 로마 정벌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드디어 진격의 나팔이 울렸다. 한니발 부대가 로마의 보호 아래 있던 사군툼을 공격한다. 이 공격이 시발점이 되어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1)이 시작됐다. 사군툼은 현재 사군토(Sagunto)라고 불리는데 발렌시아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 로마 대 무료 카지노 게임고: 포에니 전쟁을 형상화한 기념품
한니발은 무려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남부 프랑스를 거쳐 알프스산맥을 넘었다. 공격용 코끼리도 동원할 정도로 카르타고 군대는 위력이 대단했다. 이에 로마는 크게 당황한다. 코끼리까지 동원한 대규모의 병력이 이탈리아 땅에 침입했으니 크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물론 카르타고 군은 오랜 기간 행군을 하면서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하지만 로마와 전투가 벌어지자 한니발은 큰 활약을 펼치며 연전연승을 했다. 많은 로마인들은 한니발에 대해서 공포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승리를 거둔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던 로마를 구한 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였다. 한니발이 그랬던 것처럼 스키피오도 허점을 노리는 전술을 펼친다.
이탈리아에 있는 한니발 군대를 제쳐두고 카르타고 노바를 공략한 것이다. 결국 한니발의 근거지이자 자원 줄이었던 카르타고 노바는 로마군에 의해 함락당한다. 이후 스키피오는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카르타고 식민지들을 차례대로 점령해나갔다.
* 포에니 전쟁: 포에니 전쟁을 표현한 디오라마. 스페인 북부 하카에 있는 군 박물관에서 찍었다. 카르타고의 코끼리부대가 인상적이다.
카르타고는 이런 빈집털이(?) 전략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세비야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알카라 델 리오(Alcalá del Río)라는 평원이 있는데 이곳의 옛 지명은 일리파였다. 기원전 206년, 일리파에서 마고 바르카가 지휘하는 카르타고와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가 맞붙는다. 마고 바르카는 한니발의 동생이었다. 그도 풍부한 실전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스키피오에게는 못 당했다. 일리파 전투에서 카르타고는 크게 패배했고, 이베리아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만다.
기원전 202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벌어진 자마 전투를 끝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은 종료가 된다.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은 크게 패배했고, 로마군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삶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당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호명되는 영웅호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컨셉시온성은 그 자체로 훌륭한 전망대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일몰을 감상한 후 숙소에 갔더니, 역시나 가브리엘은 취해있었다. 필자가 아는 체를 하자, 가브리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페니키아인들의 전통 인사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서로 무릎을 들어서 우측으로 한 번, 죄측으로 한 번 부딪히는 방식이었다. 무슨 닭싸움 같았다. 서로의 무릎을 부딪치며 인사하는 방식이 존재하나? 주정뱅이의 취기 어린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짜임새가 있어 보였다.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레바논에 가서 아무나 붙잡고 무릎 인사를 해봐야겠다. 잘못해서 필자가 ‘니킥’을 맞으면, 다 주정뱅이 가브리엘 때문이다!
* 무료 카지노 게임 시청: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카르타헤나 시청 건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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