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려다 지친 너에게
숲에서 악명 높은 구렁이 미르는 또다시 사자가 숲 속 왕이 된 데 분노해,힘없는 생쥐를 붙잡고 괴롭힙니다.죽음이 코앞에 닥친 생쥐는 기지를 발휘해“미르 님은 잃어버린 여의주만 찾으면 용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꾸며냅니다.미르는 그 말에 속아 넘어가,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고,바다 깊은 곳까지 헤엄치며,끝내 불길 속 아궁이로까지 들어갑니다.
『초등 문해력을 부탁해』중「생쥐와 구렁이의 지혜 대결」
엄마가 기억하는 참 행복했던 시간이 있어.
그중 일부는,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카지노 게임들을 돌보던3년의 시간 속에 담겨 있단다.
카지노 게임들의 말과 표정을 매일 마주하던 그 시절,
엄마는‘순수함’이라는 게 어떤 감정인지,처음으로 깊이 느껴봤어.
그 카지노 게임들 중에 한 카지노 게임가 유독 마음에 남아.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표정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단다.
그 카지노 게임는‘이무기 이야기’를 참 좋아했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이야기.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였는데도,계속 들려달라고 졸랐지.
“선생님,이무기 그림도 보여주세요.”
그래서 나는 이무기 이미지를 하나 찾아 보여줬단다.
그걸 본 카지노 게임가 갑자기 말했지.
“나,이무기 되고 싶어요!”
순간 엄마는 웃음이 나면서도,마음 한편이 조금 걱정됐어.
‘이무기보다는 용이 되고 싶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이 말을 부모님이 들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지.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어.
‘이건 지금 이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니까.’
굳이 카지노 게임의 마음을 고쳐 잡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자기가 이무기를 좋아했던 일도 잊어버릴 텐데 말이야.
그래서 그냥,그 순간 그 카지노 게임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싶었단다.
하지만 예상대로,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카지노 게임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부탁하셨어.
“앞으로 제 아이한테 이무기 이야기는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그 안에 담긴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
왜 하필 이무기일까.
왜 우리 카지노 게임는 용이 아니라,용이 되지 못한 존재에 끌리는 걸까?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를 나이인데,벌써부터 뭔가“되는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마음을 주는 게 불안해.’
엄마도 카지노 게임를 키워본 부모로서,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어서,조심하겠다고 한 적이 있어.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더라.
왜 우리는 아직‘되는 중’인 존재를 불편하게 여길까?
왜‘성공’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끼게 되는 걸까?
「생쥐와 구렁이의 지혜 대결」동화에 구렁이‘미르’라는 캐릭터가 나와.
매번 숲의 왕이 되지 못한 미르는 결국 가장 약한 생쥐에게 분노를 쏟으며 이야기가 시작되지.
그 모습은SNS속'이미 용이 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괜히 작아지고,초조해지고,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모습을 떠올리며 구상했어.
이어서,화풀이 대상이 되어 죽을 위기에 놓인 생쥐가 살기 위해 내뱉은 거짓말.
“너도 용이 될 수 있어”
구렁이 미르는 그 말을 믿고 모든 걸 걸고 달려들지.
구슬을 물고 높은 나무에 오르고,바다로 헤엄쳐 들어가고,
심지어 아궁이 속 불길에까지 몸을 던지지.
옆에서 방울뱀 친구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어.
‘지금 이 고통만 견디면 언젠가 용이 될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스스로 아궁이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물론 현실에서는 누구를 직접 원망하진 않겠지만,
그 불편한 감정이 자꾸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일이 많지 않니?
나는「생쥐와 구렁이의 지혜 대결」이야기를 통해 내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
왜 구렁이 미르는 초등학생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시도를 하면서 스스로 고통을 쌓아가는 걸까?
만일,독자가 동화 속 미르에게‘너는 왜 그토록 용이 되고 싶었냐’고 인터뷰를 한다면,구렁이 미르는 그 이유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말하지 못할 거야.
처음부터 용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가 꿈꿨던‘용’이라는 존재도 사실 생쥐가 불어넣은 허상의 이미지였으니까.
돌이켜보면,나 조차도 내가 만들어낸 구렁이 캐릭터 미르처럼 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하고,자격증 따고, SNS도 해보면서
남들처럼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적이 많았지.
그런데 요즘은 문득,
그 카지노 게임가 왜 이무기를 좋아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돼.
어쩌면 그 카지노 게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용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카지노 게임는 이무기를 좋아했던 건지도 몰라.
그 카지노 게임가 지닌 순수함이 오히려 진실을 꿰뚫어 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되레 어른인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카지노 게임들의 순수함과 지혜를 잃게 만들고, 자신을 혹사하라고 부추겨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해.
그래서 이제는 엄마도,
그 카지노 게임처럼 이무기를 좋아해 보려고 해.
용도 멋지지만,
이무기나 구렁이도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충분히 괜찮은 존재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