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별하며 살아가는, 서른 즈음에
[얘들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위시 리스트에 적어두었던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어떤 것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러 간다든지, 새해맞이 일출을 보러 간다든지 하는 ‘특별한’ 시작을 위한 나름대로 의미 있는 행위들로 새해를 맞이했던 것도 같은데, 날이 갈수록 새해에 대한 감흥이 없어진다. 설렘은커녕 일말의 기대감도 없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 영상을 보다보니, 벌써 새해임을 알리는 카톡이 몇 개 와 있었다.
[얘들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여전히 1월 1일의 덕담을 잊지 않는 K. 그녀의 덕담 톡이 정말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실감케 한다.
[삼땡 안 넘기고 올해에는 결혼해야겠어ㅋㅋ]
[유부의 세계로 오는 걸 환영한다 ㅋㅋ 나도 올해에는 임신 계획 좀 세워볼까]
K의 톡에 대한 답으로 결혼 결심을 밝히는 W와 아이를 갖겠다 말하는 Y. 올해의 새로운 다짐을 선언하는 그들의 언어들이 왠지 이질적이다. 괜스레 센티한 감정이 차올랐다 가라앉나 싶더니 급격하게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서른셋이다.
서글프게도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데 서른셋이 되었다.
책이라도 몇 권 사 읽어야지 싶어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 ‘30대’를 검색해보니 카지노 게임 대와 관련된 수많은 리스트들이 나온다. 왜일까. 그 책들이 묘하게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30대가 꼭 알아야 할 재테크’, ‘30대가 알아야 할 내 집 마련법’, ‘부자는 30대에 결정된다.’ ‘건강한 삶을 위한 30대의 재무설계법’, ‘30대의 성공학’ ‘30대의 리더십’
낯설다.
결코 내가 타깃이라 볼 수 없는 공감가지 않는 제목들.
책 속엔 왜 이리 현실적인 어른의 카지노 게임 대만 있는 걸까.
하긴. 나 역시도 카지노 게임 대가 되면 재테크라든지, 승진이라든지 하는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성공에 대한 고민을 하는 위치에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나의 서른이 그 전과 완벽히 다른 삶일 것이라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이십 대의 고뇌와 방황에서 벗어나 안정과 여유가 당연한,확실하고 단단한 세계를 살 것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긴 했다.
그러나 나의 카지노 게임 대는 전혀 거창하거나 성숙하지 않았다.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내게 있어 여전히 너무 먼 일로 느껴졌고,재테크에 신경을 쓸 만큼 통장의 잔고가 받쳐주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직장에서의 커리어가 위로가 되느냐 하면 사실상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모든 카지노 게임 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카톡의 프로필 리스트를 쭉 훑다 보면 반 정도는 웨딩사진이나어린아이의 얼굴을 프로필로 지정해놨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새 가정을 이뤄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SNS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 타인의 카지노 게임 대는 좀 더 구체적이었다. 나와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어떤 누군가는 안정의 상태를 넘어 워너비의 삶을 살고 있기도 했고, 누군가는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도전과 모험을 실제로 하고 있었으며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나는 없었다.
나는 자꾸만 어정쩡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것들이 계속되었다.우리의 세계를 이루던 친구들은 점차 하나둘씩 새로 만든 자신들의 세계로 떠났고, 사랑도 그랬다. 낭만의 사이를 비집고 현실이 고개를 쳐들면서 내 사랑도 빛을 잃었다.
단지 체념하는 건 사랑과 사람만이 아니었다. 거창했던 목표들이 점차 소박해졌다. 확신을 가졌던 신념들이 시들었다. 떠밀리듯 결혼하지 않으리라, 사회의 규정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를 지키는 자유로운 삶을 살리라 생각했는데, 생애주기에 충실한 보편적 삶과 동떨어진 삶은 그들과의 동질감을 끊어낸 채 내게 외로움과 초조함만을 다정히 건네주었다.
세속적인 것을 좇는 것은 비겁하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보란 듯이 날 비웃으며 서서히 목을 조여 왔고, 타인에 시선에 갇히지 않는 주체성을 견지하자 다짐해왔는데,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자 단숨에 주눅이 들었다. 사회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부조리와 부정의에 맞서지도 못한 채나는 도피하거나 그것에 관대해졌다. 우습게도 나의 퍼스낼러티는 생각보다 단단한 성질이 아니었다.
나의 신념은 어느새 더 이상 무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도 주인공일 수 있다고 믿었던 온갖 드라마와 영화들. 나는 적어도 기승전결이 완벽한 작품 속 주목받는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을, 카지노 게임 대에 접어들면서 깨달았다. 이제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가 되었고, 영화는 그저 영화가 되었다. 꿈도, 가능성도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대가 되면 어때요?’라고 묻던 이십 대의 누군가에게 ‘서른이 뭐 대수인가요.’라고 대답했던 만큼 단지 이십 대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변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대단한 착각이었다.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있었고, 나를 제외한 많은 것들은변화하고 있었다. 가능성과 자신감의 시기, 확실했던 신념의 이십 대의 세계에서 어느새은밀히 달라진 카지노 게임 대의 세계는불안감과 초조함, 그리고불확실함만을 남긴 채수많은 것을 내게서 앗아갔다.
내가 짊어져야 할 카지노 게임 대의 무게는 전혀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단지 흰머리의 등장이나 ‘리즈시절’의 퇴장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사랑과, 사람과, 꿈과, 신념과, 그리고 청춘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룬 것은 없는데 잃어가는 것들은 계속되었다. 허전함과 카지노 게임감이 매일 조금씩 덮쳐오고 습관처럼 이별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조금씩 무력해졌다.
“우유가 없네.”
소파에 누워 오른손엔 여전히 리모컨을 쥔 채 눈을 감고 있는 아빠가 아직 깊은 잠에 빠지지 않았을까, 나는 들리라는 듯이 짐짓 크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파카를 걸쳐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편의점에 가는 척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라도 피우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아주 어두운 곳에 자리를 잡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러고 있으니 나 자신이 더욱 가엾게 느껴졌다. 새해 첫날 새벽부터 후줄근한 상태로 담배나 피우고 있는 신세도 신세지만, 서른셋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에게 들킬세라 몰래 기어 나와 이러고 있는 꼴이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지 몰랐다.
씁쓸한 마음과는 달리 오늘따라 담배 맛은 달았다. 공중에 희미하게 흩어지다 곧 소멸해 버리는 담배 연기가 쓸쓸해 보였다.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았던 냥 사라지는 것이 마치 내 인생 같아 처량했다.
카지노 게임 연기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김광석의 노래가 떠올랐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김광석도 어쩌면 이렇게 담배를 피우다 노랫말을 떠올렸을까. 이십 대 내내 머금고 있던 청춘의 갈망이 서른의 어느 즈음엔가 담배연기처럼 허공에 날려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어쩌면 그 역시도 느꼈을지 모른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자만하던 시절, 나의 신념이 무결하다고 느끼던 시절, 청춘이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잃어간다는 건지, 카지노 게임을 모르던 그 시절엔 이 노래가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가사 한 줄, 단어 하나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채 그저 가끔 센티함이 차오를 때마다최대한 멋스럽게 불러 젖혀보곤 했다.
그만큼이나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는 완전한 이상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낙관적 인생관을 품었던, 결핍을 모르던시절이었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생각처럼 녹록하던가.
내 사람임을 의심치 않았던 관계의 카지노 게임, 무결하다고 믿었던 신념의 카지노 게임, 완전하다고 여겼던 이상의 카지노 게임, 꿈꿔왔던 ‘나 자신’의 카지노 게임이 내 삶의 필연적숙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느덧 나는 카지노 게임 대가 되어있었다.
단지 그렇게 불완전하게하루하루를 살아왔을 뿐인데 어느새 ‘서른 즈음에’는 나의 카지노 게임 대를 관통하는 주제가가 되어있었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에 와 박혔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왜 이리 나 자신이 초라한지, 왜 그런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는지, 왜 서른은 유독 방황하고 아픈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말보다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 혼자만 외로이 고독에 젖어있지 않다는 것, 이별과 결핍에 방황하는 것이 비단 나 혼자 만은 아니라는 것, 카지노 게임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그 사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이 노래가 왜 아직도 수많은 이들의 입술에 머무는 걸까. 아마도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소박하고평범한이들 또한제각기의 카지노 게임에서 오는 아픔의 공감과 함께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안, 내 삶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를품고살고 싶기 때문이리라.
물론카지노 게임 대의 통과의례같은 이 지독한 카지노 게임 아픔이온전히치유된다는 것은사실상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로또 당첨이나 백마 탄 왕자의 등장과 같은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리 없고, 더 이상 내가 어렸을 적 꿈꿔왔던‘이상적 나’의삶을 살 수 없는 것처럼말이다.
그러나 왜일까. 사람과, 사랑과, 꿈과, 이상과, 신념과 그리고 청춘의 카지노 게임과 함께나는 이제야 왠지 조금 알 것만 같다.
인생사란 저물어 가는 것, 때가 되어 넘치게 갖고 있던 많은 것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 그리고 그 저물어 가는 세계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또다시 허공에 흩어 사라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살살 누른다고 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아닌데, 아빠가 잠에서 깰 세라 나는 최대한 조심스레 번호키를 눌러 현관문을 연다.
“어디 나갔다 왔냐?”
“어어, 잠깐 편의점.”
현관문을 열자마자 잠에서 깬 아빠의 말에 나는 혹여 담배냄새를 풍길까 싶어 얼른 주방으로 향한다. 편의점에 다녀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부러 바스락대는 봉투 소리를 크게 내며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다. 정말 잠시 편의점만 갔다 온 듯, 담배 연기에 짧게나마 인생사를 생각했던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듯,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삽십 대가 되어 깨달은 또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언제나 그랬듯이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확 변한다거나 내가 갑자기 성장하는 일은 없다는 것.
내일의 나는 여전히 찌질하게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몰래 담배를 피울 것이고, 꼰대 민 부장의 무례한 오지랖에 단지 관대한 미소만을 지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이렇게 서른셋을 맞이했다.
김광석의노랫말을 이해할 것 같은 나이, 매일 이별하며 산다는 것을 아는 나이, 인생의 다른 말은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 아는 나이, 그렇게 그저 담담히 카지노 게임을 마주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 서른셋을.
[관대한여자] 직장, 은근한 폭력의 세계. 예민함은 죄악인가.
[절교] 절교. 영원하리라 믿었던 우정서약의 파기
홍마담쌀롱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nnel/UCMVI-WRQYPQFToxaq4Nn0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