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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an 25. 2025

아무도 날 무료 카지노 게임 못해

<채식주의자


주인공은 철저히 대상화된 상태로 그려진다. 오해 받고, 혐오 받고, 욕망 되고, 동정 받는다. 완벽한 객체로 다뤄진다. 구조 자체가 책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문장마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강연 중에서)



<채식주의자를 세 번 읽었다. 2007년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접했을 때는 난해한 소설로 다가왔다. 작년 초, 지인이 다시 읽어보면 그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거라는 말에 책장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7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나를 파고들었다. 아, 7년 전에는 내가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구나!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고 나서 독서 모임에서 선정한 책으로 다시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시간이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한 종이들이 표지의 색을 닮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작가가 노벨상 강연에서 말한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읽어보자.


무료 카지노 게임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힘으로 가해지는 무료 카지노 게임, 언어나 성적 무료 카지노 게임, 생각을 강요받는 무료 카지노 게임, 무관심의 무료 카지노 게임, 사회적 규범 속에서의 무료 카지노 게임 같은. 이 책에서는 그런 무료 카지노 게임의 다양한 모습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야기는 총 3장으로 이루어지는데, 1장은 ‘나’라는 남편, 2장은 ‘그’라는 형부, 3장은‘그녀’라는 언니의 관점에서 흘러간다. 주인공인 영혜는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남편, 형부, 언니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철저하게 객체로 그려진다. 이것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바가 아닐까. 어디에서도 뚜렷하게 영혜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누구도 영혜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무료 카지노 게임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강연 중에서)



영혜는 가족들로부터 무료 카지노 게임받지 못하고 의사를 강요받는 삶을 지금껏 살아왔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폭압에 노출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가 꿈을 계기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가족은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거나 방관한다.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자 그녀는 점점 침묵을 선택하게 되고 폭력적인 것의 대척점으로 식물이 되고자 갈망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성이란 어떤 특정 사람만 가지는 성향이 아니다. 인간 모두에게 내재한 성향이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1장의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기를 거부하는 그녀가 마지막에 한 입 뜯긴 피 흘리는 동박새를 움켜쥐고 있는 장면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을까. 식물이 되기를 갈구하면서도 여전히 동물적인 성질을 버리지 못한 것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타인의 모습에서 나의 상처를 발견하고 들여다보는 한강 작가 특유의 공식이 이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기를 거부하자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 말로 하는 거부가 통하지 않자 자해를 한 영혜. 그런 처제의 손목을 지혈해서 업고 응급실로 달려온 형부.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나 방관하는 남편, 형제자매 모두가 철저한 타인이자 적인 상황에 놓인 처제의 모습에서 형부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쭉 작업해온 인간의 마모되고 찢긴 일상의 모습에서 느꼈던 미움, 환멸, 고통. 그 감정들의 밑바닥을 직시하기 위해 씨름했던 시간이 일종의 폭력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도덕적인 인간으로 자신을 제어하며 살아오다 영혜를 통해 기침처럼 터질 것 같은 내면의 고함을 듣게 되고 영혜의 몽고반점을 발화점으로 폭발하는 형부. 그는 자신을 억압하는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비디오 작품에서 짧게나마 날아가는 것들을 넣어 표현했던 게 아닐까 여겨진다. 영혜도 형부도 현실의 폭압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어쩌면 형부라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예술적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니인 인혜는 남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삶에 지친 그에게 안식을 주고자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다. 인혜 또한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폭력, 결혼해서는 남편으로부터 성적 폭력, 가정과 육아와 경제적 방임, 무관심 같은 폭력에 시달린다. 삶을 산 게 아니라 버텨왔던 열아홉 살 이후의 숱한 시간들에 지쳐 삶을 놓아버리고자 했던 그녀. 누구 하나라도 그런 그녀를 무료 카지노 게임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의 삶은 버티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 되었을 텐데.


소설 후반부, 퇴원시켜달라는 영혜의 말에 언니는 먹는다고 약속하면 그러겠다고 한다. 그 말에 영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날 무료 카지노 게임 못해 ……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결국 이 긴 소설은 무료 카지노 게임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상대를 무료 카지노 게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221쪽)



이 초록빛의 불꽃은 무얼 의미할까. 인혜가 죽으려 산을 올랐을 때 박명 속에서 일제히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던 나무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생명의 빛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살아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닐까, 나는 해석한다. 곳곳에 무료 카지노 게임과 죽음이 덧대어 있지만, 그럼에도 삶을 이어가라고 말이다. 어떻게, 라는 의문을 안은 채.


느낀 그대로를 글로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느끼고 생각한 것을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언젠가 네 번째로 <채식주의자를 만났을 때 과연 어떤 것을 더 보여주고 어떤 생각을 불어넣어 줄지 기대되는 책이기도 하다.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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