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2
나는 왜 카지노 가입 쿠폰가 되었나 3
공정성 논란으로 신구 얼룩커가 한번 대차게 붙은 뒤, 공정이라는 가치가 이론과 실재 모두 도달하기 어렵다는 철학적 논쟁까지 벌인 뒤, 얼룩소는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습니다.
그것도 잠시, 얼룩소에 글 하나가 올라옵니다. 그 글에는 한 얼룩커의 글이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는 표절 글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얼룩소는 또 한번 발칵 뒤집힙니다.
얼룩소에서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 표절이 웬 말이냐, 당장 신고해라, 해당 글은 엄청난 수의 좋아요를 받고 수십 개의 답글이 달립니다. 다들 한 목소리였죠.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글과 사람은 얼룩소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
그런데 며칠 뒤 한 얼룩커분이 자신의 글을 표절로 의심한 게 아니냐며 자진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처음 그 글을 보고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던 날을 선명히 기억합니다. 또 한번 피바람(?)이 불겠구나 싶었던 주말이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보니, 이 얼룩커님이 최근 하나의 글을 쓰셨는데 이 글이 사실 어떤 얼룩커님 글의 답글로 달았던 적이 있는 내용이었다는 겁니다. 답글이다보니 많이 내용을 축약해 썼고, 그게 좀 아쉬워 다시 새글로 내용을 보완해 글을 작성한 것이었죠.
문제를 제기한 얼룩커님은 워낙 여러 공간에서 많은 글을 읽은 터라 자신의 글을 옮겨 적은 사실을 몰랐던 것이죠. 게다가 얼룩소를 애정하는 마음에, 문제를 제기한 분뿐만 아니라 답글을 단 분들까지 한 목소리로 익명의 누군가를 은연 중에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죠.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건을 두고 왈가왈부 했다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카더라 통신의 정보를 사실 확인 없이 마구 받아 쓰는 언론과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아직 가려지지 않았는데도 유죄로 낙인 찍는 여러 사건이 오버랩되죠.
얼룩소는 하나의 사회였던 것입니다. 언제든 이런 마녀사냥이 벌어질 수 있는. 인간 역사에서 마녀사냥은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집단 지성인 줄 알았지만 그 집단 지성은 때로 이렇게 무고한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던 것이죠.
관련 글은 직접 링크 걸진 않겠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쓰신 글 중에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왔습니다.
우리는 '가짜사연' 이슈로 일종의 '마녀사냥'을 경험 했습니다. 대상은 '저'였습니다. 겪어보니 정말 무서운 일이네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습니다. 팩트체크가 안 된 글에 얼룩커는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됐냐고요. 제가 당시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문제제기 글을 올린 사람이 말도 없이 얼룩소를 탈퇴한다.
관련자들이 서로 욕을 퍼붓다 둘다 나간다.
남은 사람들은 없었던 일인양 다시 글을 올린다.
그런데 제가 간과한 게 있습니다. 여기는 욕을 못합니다. 얼룩소입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연락해 욕할 방법도 없습니다. 얼룩소에는 쪽지 기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건은 아주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문제제기를 하신 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의 글을 올립니다. 심지어 논란이 된 글을 지우지 않고 박제하듯 그대로 남기십니다. 그 글에는 이런 머릿말이 달립니다.
글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이것 또한 제가 진실이라 믿고 적었던 글이었고
제가 한 말들에 대해 글로 남겨 이런 일이 없도록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밑에 글들은 저의 오해로 인해 한 카지노 가입 쿠폰님을
상처받게 한 글입니다.
위 얼룩커님 뿐만 아니라 답글을 달고 동조했던 얼룩커들 중 많은 분들 또한 정중히 사과를 합니다. 피해자분은 사과를 받아들이고 재발방지를 위해 모두 각성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시죠.
위 사건을 지나면서 제 예상과 달리 아무도 얼룩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사자 두 분은 심지어 서로 상당히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카지노 가입 쿠폰가 된 세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열린 공간이 가진 힘입니다. 모든 문제는 양지로 끌고 나와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얼룩소에는 숨은 공간이 없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습니다. 숨은 공간이 있었다면 누군가는 욕이나 하고 나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툼이 있더라도 드러내놓고 해야 하기에, 게다가 혐오 표현을 쓸 수 없기에 이런 아름다운 봉합이 가능했습니다.
진정한 사과보다 더 어려운 건 다시 함께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사과는 했더라도 다시 이 공간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죠. 개인적으로 어떻게 다시 활동할 수 있었는지 문제제기를 했던 얼룩커님께 여쭌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실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남아서 다시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진정한 사과라는 걸 아셨던 것이죠.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p176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p176
반복을 하는 건 잊기 때문입니다. 반복을 끊어내는 노력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사건을 또 반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치 반복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이 글처럼요.
얼룩소는 계속 커져야 하고 그때마다 얼룩소의 지난 날을 모르는 분들이 들어올 테죠. 남아있는 얼룩커 또한 과거를 잊을 겁니다. 그래도 얼룩커라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경험을 통해 가까스로 배웠으니까요. 경험을 통해서만 간신히 나아지는 게 인간이니까요. 글로 쓰는 건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얼룩소는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점 안정(?)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안정을 찾아가는 동시에 얼룩커들은 깨닫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얼룩소에 심한 중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요. 얼룩소는 중독을 부르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중독증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