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차는 멋있다. “멋” 나는 멋이 서린 것들이 좋다. 기관차는 끄는 힘이 있다. 기관차는 객차와 화차를 잡아끈다. 무겁고 투박한 차량을 떠안아 이끌면서 이곳저곳을 이어준다. 또 기관차는 사람의 마음을 끌기도 한다. 군말이 없다. 제 갈 길을 향해 묵묵히 달린다. 조화를 이룬다. 오래된 기관차라도 선로와 어우러져 어느 풍경과도 잘 어울린다. 사진에 담아 간직하기도 좋다. 오늘을 달리고 추억을 그린다. 기관차도 사람들처럼 다양한 색으로 더해졌으면 좋겠다. 다 같으면 재미없다.
‘대전카지노 게임 추천 승무사업소’에서 멋있다고 생각한 일들을 했다. 잠잠하게 돕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호회와 동문회 그리고 상조회 총무를 십 수년간 했다. 택배가 없고 화장 문화가 익숙지 않던 시절, 상조 용품과 상복 그리고 검은 천을 두른 조기를 챙겨 장례식장으로 날랐다. 힘쓴 만큼 고마워했다. 어렵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회장은 밥을 샀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상조 용품 지급을 노사가 합의했지만, 제때 지급되지는 않았다.
“사망진단서를 가져오셔야 상조 용품을 지급해 드릴 수 있어요.”
“아니, 장례식 끝난 다음에 국그릇, 밥그릇 받아서 어디다 써요.”
직장이 그렇다. 손해는 안 본다. 책임은 떠넘긴다. 일하면서 갑갑함은 잔꾀로 풀었다.
“선배님, 지금 줘봐야 소용없죠?”
뒤늦게 지급된 상조 용품 하나를 구태여 받아왔다. 차 트렁크에 몰래 넣어두고 다음 사람부터는 일이 터지면 돌려막았다. 시간은 흘렀고 후배들이 생겼다. 약고 얕은 내가 끌어가기에 나는 깜냥이 못됐다. 나서서 이끄는 능력이 부족했다.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떠도는 말들은 가슴을 찔렀다. 터무니없이 오르내리는 말들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다. 때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자다가 깨서도 울었다. 하나도 멋이 없었다. 이런 생각만 들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다 그만두자.’
기차는 늘어나는데 일할 사람은 줄고 있다. 노측, 사측을 가리지 않고 부족하다.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 정부는 노동조합을 조폭,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대했다. 우리 ‘대전기관차 승무지부’도 처음으로 아무도 출마하지 않는 ‘사고지부’가 되었다. 생김새와 달리 마음 여린 전 지부장이 연임을 결정했다. 도와달라며 집 앞까지 찾아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때다. 보수정권에 사고지부 그리고 저 불쌍한 표정. 지금 해야 멋있다!’
지부 총무는 총무의 끝판왕이었다. 겨우겨우 임기를 다하고 있다. 노동조합 임원으로 보수정권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다. 실제 일은 동생 차장들이 다 했다. 부장들은 고민하고 생색냈다. 사실 지부 일은 앞장서는 이들과 뒤로 빠지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고민이다. 한쪽은 “왜 안 하냐”하고 다른 한쪽은 “왜 이렇게까지 하냐”라고 그런다. 그 중간 어디쯤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힘들다. 힘쓴 만큼 손가락질과 응원을 함께 받았다. 시달리고 기운 빠질 때면 지부장은 술을 샀다.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부장을 봤다. ‘그래 저기서 저러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뭐’라고 스스로 달랬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하고 생각한 날들은 모여서 글이 되었다. 일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옮겼다. 괜히 그랬나 싶다. 글을 쓸 때마다 직책도 하나씩 늘어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차를 보고 자랐다. 그때 기차를 보며 그렸던 내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기차를 수단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닐까. 가슴 뛰는 일들을 부끄럽지 않게 해낼 수 있을까. 돌이켜 본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걷는 길마다 흔적을 남겼다. 철도라는 퍼즐이 있다면 자그마한 조각을 보태고 싶다. 사측, 노측을 따질 일이 아니다. 누구든 어디든 멋진 일들을 찾아 같이 했으면 좋겠다. 퍼즐은 함께 맞추어야 한다. 기관차가 제아무리 멋있어도 혼자 달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