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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다 Jul 15. 2024

카지노 게임과 검색

내 안에서 정답을 찾는 시간

카지노 게임은 남들이 정리해놓은 '팩트'를 찾는 것.

카지노 게임은 내 안에서 정답을 찾는 것이라는 말을 봤다.(사전적 의미보다는 인문학적 해석에 가까운)


카지노 게임.


스마트폰이 있기 전, 사람들은 카지노 게임에 익숙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카지노 게임을 도와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카지노 게임을 하려면 최소한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야했다.

당시의 인터넷 세상은 그마저도 지금만큼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중학교 무렵에 친구 성구네 집에 놀러가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둘이 아침밥을 대충 차려 먹었는데, 성구가 지식in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네이버 지식in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세상 모든 정보가 있다고 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은 그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들에 불과했다. 책과 차이점이 있다면 키워드로 카지노 게임이 가능하다는 정도였다.

그런 세계관에서 양방향 소통 방식인 지식in이라는 신문물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 시간이 좀 필요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ai의 등장을 이해하는 느낌이랄까.

지금이야 모두 알다시피 지식in은 기대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양질의 정보를 얻는 것은 답변을 달아주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운에 맡겨야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고, 이제 인터넷 세상에는 과연 아직까지 소수만 아는 정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보 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나의 노하우를 팔아 돈을 버는 생태계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티끌같은 정보 하나하나 모두 인터넷 세상에 담길 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궁금한 걸 카지노 게임¹⁾하면 3초 안에 정답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카지노 게임을 잃어버렸다.



스몰 토크.


엘레베이터에서 안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시간보다 (흔치 않지만) 조금 이르게 도착한 친구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하필 둘이 있기엔 어색한 사이일 때.

외근가는 차 안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스몰토크를 잘 못한다.

나처럼 스몰 토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제법 많은지 유튜브에는 스몰토크 노하우 영상이 쏟아진다.

노하우라고 하는 것들은 보통 날씨 이야기나 식사 메뉴에 대한 이야기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들이다.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가벼운 대화는 참 건강한 존재임에도 나는 쉽게 익숙해지지 못 한다.

그 존재의 필요성은 깊게 공감하지만 그러기 위해 알맹이가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나는 어색하다.


그렇지만 나는 토크를 좋아한다. 스몰 토크는 아니니까 뭐랄까 미디엄 토크랄까.

(스몰 토크가 있으면 빅 토크가 있겠지만 왜인지 그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

나는 사람 각각마다 고유의 생각이 담긴 토크를 좋아한다.

각자의 생각이 오가는 핑퐁을 통해 서로의 관점을 알아갈 때 미디엄 토크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대화의 과정 전체와 결론이 있다면 그 결론까지도 모두 '카지노 게임'이 동반된다.


스몰토크인 날씨나 음식 이야기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도 내뱉을 수 있는 낱말들이 수북히 쌓여있지만,

미디엄 토크에서는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내뱉을 낱말을 내 안에서 찾아내는 카지노 게임 과정이 수반된다.

또 내 안에 있던 생각이 아니라 대화 과정 자체가 생각의 과정이 되어 그 복합체로서 낱말이 된다.



미디엄 토크.


'카지노 게임은 남들이 정리해놓은 '팩트'를 찾는 것.

카지노 게임은 내 안에서 정답을 찾는 것'


나는 카지노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인가.

저 말을 듣고서야 과연 그래서 그랬던 것인가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스몰토크의 주제에 날씨가 있었다면 미디엄 토크에도 자연스레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주제²⁾에 따라 대화가 이어지고 카지노 게임이 수반된다.

보통은 가벼운 궁금증으로부터 주제가 결정된다. 일단 물음표가 던져진 궁금증에 대한 정답은 모른채로

각자의 생각으로 그 결과값을 추측해보는 것. 그게 바로 가벼운 카지노 게임을 통한 서로의 관점에 대한 공유를 하는 대화 즉 미디엄 토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얄궂게도 이제는 우리 손에 세상의 거진 모든 정보가 있다.

정확히는 우리가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우리가 지금 나누는 대화와 궁금증을 허무할만큼 순식간에 해결해줄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사람들과 제법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즘 한 친구³⁾가 손바닥 안의 팩트(일 가능성이 높은)를 말해준다.

그 친구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탓할 수 있는 근거도 딱히 없다.

오히려 쓸데없는 바보들의 대화를 팩트로 정리해준 똑똑이나 똑순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화는 '아~ 그래?'를 끝으로 거기서 끝난다.

그리고 똑똑이와 똑순이가 알려준 팩트는 과연 내 기억에 남아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건 그 궁금증을 풀기위해 나름대로 카지노 게임하고 토론했던 과정이다.

시간이 흘러 동일한 궁금증을 대면했을 때

'아~ 그 때 우리가 막 뭐라고 추론하고 토론했던 내용은 기억나는데,

결국 마지막에 정답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가 반복이 될 수도 있다.

카지노 게임 결과보다는 카지노 게임 결과가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것이다.


팩트는 중요하다. (ENTP)

하지만 이제 팩트는 언제나 우리 손 안에 있고, 그 팩트를 확인하는 건 5초 안에 할 수 있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머리가 아닌 엄지손가락이 사고 시스템을 좌우하게 되어가는 세상에서,

과정을 사유하고 관점을 나누는 것(ENTP X 100)이 우리에겐 더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¹⁾오히려 카지노 게임 엔진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제는 작은 조각들을 카지노 게임을 하기보다는 ai에 큰 흐름과 목적을 대입하고 결과물을 도출받는 흐름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²⁾여기서 그 주제에 따라 미디엄 토크와 빅토크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인가 싶기도 하다.

그 주제가 100분 토론처럼 거창한 토론이 가능한 주제가 된다면 빅토크로 분류될 것이고,

보다 하찮은 주제(특히 가벼운 궁금증으로 출발한 것들)에 대한 가벼운 카지노 게임들이라면 미디엄 토크가 될지 모르겠다.

³⁾ 어쩌면 이 시대의 새로운 맥커터일지도 모르겠다.

넌센스 퀴즈 문제를 풀고 있는데 정답을 찾아서 말해버리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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