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에 대한 단상
벌써 10여 년 전부터, 그러니까 대학생 때부터 자주 하던 고민이자 그 결과론적인 가치관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정말 무한한 돈(혹은 무한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돈)을 준다고 제안한다면,
나는 그걸 기쁜 마음으로 받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봤지만, (아직까지는) 결론은 항상 "받지 않겠다'였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제법 많이 던져봤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내 결정이 결코 흔치 않은 결정이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그런 결정을 유지하는(아무도 돈 준다고 한 적 없는데 10년째 고민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돈이 무한으로 있다는 건 결국 돈이 없는 것과 같아진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내게는 큰돈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돈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나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돈이라는 개념은 사라지는 거지. 왜냐면 무한하니까.
그리고 그 말은 곧, 내가 하고 싶은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것들 말이야. (그런데 이건 결국 말장난 같아 보이기도 해.)
이런 내 생각과 느낌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이해시키고 싶을 때,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곤 했다.
이 게임에는 "쇼미 더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치트 코드가 있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플레이어들 중에 이 치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플레이어들이다.
게임을 하다가 자원이 부족하거나 답답한 상황이 생기고, 그럴 때 "show me the money" 치트를 치면 마치 모든 걸 얻은 듯한 희열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게 정말 신나고 재밌다. scv로 미네랄을 채취하고 생산 과정을 거쳐야 했던 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야말로 게임 안에서 나는 무위도식하는 신이 되는 거지.
하지만 '신의 게임'이 주는 희열감의 유통 기한은 참 짧아서, 금세 그런 플레이에 질려버리게 된다.
무한의 돈을 주거나, 적 진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치트키를 치던 친구(류제선, 11세)들은 점차 게임에 흥미를 잃고 그만두거나,
혹은 치트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다시 게임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그를 위해 노력했던 과정 속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성취감과 보람은 없다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물론 원하는 것을 항상 손에 넣는 건 아니다. 실로 실패의 순간이 성공보다 훨씬 많이 우리 삶을 채우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길게 본다면 '점'처럼 보이는 일련의 실패들도 결국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게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쇼미 더 머니를 치겠냐?"는 제안(끝나지 않는 섀도복싱)을 거절한 이유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문득 어제 들었던 생각 때문이다.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이미 '신의 게임'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 치트키의 재화적 가치가 평범한 수준이기에,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누리고 있기 때문에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개중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어제는 요즘 관심이 많은 '영화'가 떠올랐다.
다시 말하자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 포함한 모든 시청각적 콘텐츠이기도 하다.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생각보다 많이 달라졌다.
어릴 적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보기 위해 비디오를 빌리는 것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다운로드했던 시절도 있었다.
보고 싶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정해서 비디오 숍에 갔을 때는 누가 이미 빌려 가지 않았을까 가슴이 두근댔다.
한 편 어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봐야 할지 모를 땐 주인아저씨께 추천도 받았다.
이렇게 당시에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보기 위해 비디오 숍에 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고르고, 돈을 내고, 집으로 가져오는 물리적인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노동이 (작을지언정) 분명히 존재했다.
비디오의 시대를 지나 콘텐츠 불법 다운로드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그 시대 또한 지금 돌아보면 그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어.
다운로드 시간이 영화의 러닝타임에 가까울 정도로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다운로드하면 그 영화가 소중했다.
잠깐 보고 그만두는 일이 드물었다.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다운로드하기 위한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였다.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재미없어도 중간에 자리를 벅차고 나오는 경우보다는,
영화 티켓값과 영화관까지 온 수고를 생각해서 웬~만하면 다 보고 나와서 차라리 욕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하지만 요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보기 위한 과정은 어떤지 살펴보자.
너무나 손쉽게 접근해서 원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오히려 어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봐야 할지 선택 장애에 빠진다.
어영부영 고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 끝까지 보기는 더 어렵다. 왜냐면 난 모든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OTT 서비스는 이런 점에서, 어쩌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의 복권이나 무한의 돈을 얻는 '신의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가 손쉽게 접근 가능한 지금, 우리는 과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더 즐기며 소중히 여기고, 또 그로 인해 더 행복해졌을까?
나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하나하나의 영화가 덜 소중해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비디오를 빌리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를 돌아볼 때의 그런 아련함과 추억들이 비단 오래된 세월 하나로 인해 미화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과정 자체, 그러니까 그 경험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 우리의 감정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어진다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진 영화처럼 흥미를 잃고, 내가 도통 뭘 해야 행복할지 모르게 되는 건 아닐까.
시작했다가 쉽게 그만두고, 싫증 내고, 그런 상황 말이야.
AI가 도래함에도 인간이 인간만의 인간성을 가지는 것은 의미 부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11명씩 팀을 이뤄 네모난 그물 박스에 작은 공을 서로 넣겠다고 아우성쳐야 하는 논리적 이유는 없다.
만약 다른 행성의 외계인이 본다면 얼마나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축구에 열광하고, 세계적인 11명이 있는 팀에 들어가고 싶어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의미 부여'라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진정한 그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과정이라는 가치가 있다.
물론 돈이 많음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으로 성취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내 스스로 그런 성인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이어터의 냉장고에 칼로리 폭탄의 맛있는 음식을 넣어두면 몇 배의 인내심이 필요해지듯이.
나의 이런 가치관은 내가 살아온 ㅡ큰 굴곡과 어려움 없이ㅡ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주변 배경 안에서 내려진 결론이다.
내가 만약 극단적인 부족함과 그로 인한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결정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돈'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마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커다란 타임 라인 안에서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끝에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 로또 당첨의 경우 한 30억까지는 기쁜 마음으로 받는다.
* 20년 동안 한 달에 500만 원씩 나오는 연금 복권이라면 더욱 금상첨화다.
* 즉 내가 이 글에서 내가 거부하는 돈이란 '무한'에 가까운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