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카지노 게임이 중요한 법이다. 카지노 게임이 없다면 할멈도 없는 게 아니라 의미가 없어진다.
의미가 없으면 읽는 사람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한다. 만족하지 못한 독자는 그를 다시 찾지 않는다.
십 대 때 프로야구에 한창 빠져 있었다. 야구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던 중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알루미늄 배트가 바닥에 뒹굴면서 쨍그랑 소리만 나더라도 엉덩이가 들썩이면서 글러브를 끼고 바깥으로 곧장 뛰어나가곤 했었다.
그런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께서는 '쟤는 야구는 좋아하지만 진득하니 끝까지 앉아서 게임을 보지는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덕분에 나는 근성이 없는 아이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읽어오진 않았다. 아 물론 지금도 내 꿈은 출간작가가 되는 것이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작문을 목적으로 독서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고전작품들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표현하는 방법이라든지 문체 등을 배우곤 있지만 단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아니다.
쓰기 위해 읽는다와 읽다 보니 쓰게 되었다는 정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쓰기 위해 읽는다는 제목으로 책을 내놓았을 때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헤르만 헤세도 글을 쓰기 위해 무언가를 억지로 경험하는 일은 무위에 그치고 만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 시절 야구를 좋아했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다는 데에 있다.
쓰기 위해 읽기 시작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전작품을 몇 페이지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작은 씨앗 같은 카지노 게임이 피어올라서 뭔가 말을 하고 싶어 지게 된다. 그래서 이럴 땐 독서에 방해가 되곤 한다.
이런 상태가 그저 단순히 집중력이 흐트러진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다행스러운 것은이러한생각이순전히나만의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헤르만 헤세가 말하길 독서에는3단계가 있다고했다.
간단히 말하면, 초보자적인 독서와 집중적으로 몰입하는 독서 그리고 몰입의 차원을 넘어선 초연의 독서로 나누어진다.(물론 헤르만 헤세가 차용한 표현과는 조금 다르다) 헤세의 독서론을 처음 읽었을 때 이 세 번째 단계의 독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독서의 삼단계는 상호보완적인 성질이 있다. 다시 말해서 세 번째 단계를 해야만 고차원적인 독서가가 된다는 것이 아니고 또한 숙달된 애서가는 세 번째 단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없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에는 애서가라도 초심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그것을 대하며, 어느 정도 적응한 결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오르내린다.)
보통 사람들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 또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헤세가 말한 초연의 독서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이해해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헤세가 말한 세 번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쓰디쓴약처럼 삼켜버렸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 올초에 다시 헤세의 독서론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 비로소 초연의 독서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헤세가 말한 초연의 독서는 실제로 어떤 글자를 읽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이 단계에까지 독서가 이르게 되면 책등에 쓰인 제목만 보더라도 본인만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그 속에서 흠뻑 지적인 희열에 빠져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진 커피 컵에 쓴 커피집 이름이라든가 문구 등 단순히 한 문장만 보더라도, 그게 아니면 오래된 벽에 있는 얼룩진 무늬만으로도 공상의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아마 어떤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미 책의 범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헤세가 말한 세 번째 단계의 독서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으로의초대장이 바로 카지노 게임이다. 그리고 이 카지노 게임은 작가가 독자에게 선사한 것인데 작가가 스스로 의도했던 바도 아니다.
그저 지적인 삶에 익숙해진 두 사람 간에 벌어지는 우연적이면서도 동시에 우호적인 것일 뿐이다.
오늘 아침 출근을 서두른 덕분에 업무를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몇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어떤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책을 보고 있던 시선을 멀찌감치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러고선 마음속으로 어떤 말을 미지의 누군가에게 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이 한 10초쯤 흘렀을까? 하나의 작은카지노 게임을 받게 되었고 이 소중한 작은 씨앗을 하얀 밭에 옮겨 심을 생각으로 기억속에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읽고 있던 책을 덮어버릴 순 없어서 머릿속에 저장해 둔 채 그대로 책을 읽어 나갔는데 책을 덮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쨍그랑 소리에 바로 뛰쳐나갔던 어린 시절처럼 작은 씨앗을 발견한 순간 책을 덮고 글을 썼어야 했나 싶었다.
하지만 그 뒤로 책을 읽으면서 위대한 지성에게서 따듯한 위로를 받았기에 그리 큰 손해는 아니카지노 게임. 그 위로는 다름아닌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모범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손수 남긴 미덕의 청사진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놓쳐버린 카지노 게임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얼룩진 무늬만 남은 오전의 잔상을 틈틈이 옮겨 쓰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바로는 아마도 그때 당시 얻은 작은 씨앗들이 이 글 어딘가에서 아이의수줍은미소처럼 작고 푸른 이파리를 살짝 내밀고 있지 않을까.
모름지기 작가라면 카지노 게임을 주는 그 무엇에라도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하는 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