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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Feb 14. 2025

유토피아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유토피아. 책에서만 보던 그 단어를 낯선 곳에서 발견했다. 내가 머물던 공간의 방명록에서. 누군가에겐 그곳이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고 했다. 유토피아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너무도 멋진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단어이기도 했다.


나도 처음에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어쩜 이렇게 따뜻한 곳이 있지? 그래서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비관적인 시각을 품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무결하게 보이는 건 착각일 가능성이 농후하며 웬만하면 그 오해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만. 아름다움만 주고받는 그 선온라인 카지노 게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오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추억을 품고 자꾸 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겁이 났다. 잠시 스치듯 머무는 여행자와 둥지를 틀고 삶을 이어가는 생활자는 다르니까. 섣불리 발을 들여 좋은 기억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다시 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물론 나는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일주일가량 머무는 여행자와 달리 한 달가량씩 그곳에서 삶을 꾸려갔다. 여전히 완전한 주민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유토피아라 불리는 지역, 커뮤니티의 민낯은 슬쩍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역시, 유토피아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고 생각했다. 그곳에도 문제와 갈등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일단 그 커뮤니티가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의 한계가 존재온라인 카지노 게임. 현실적인 인프라가 문제였다. 지역에 머무는 동안 큰 병원에 갈 일은 없었지만 소소하게 병치레가 많은 편이라 이런저런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어마어마한 대기 시간을 다 채우지도 못했을 때 문득 지역이 고향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서울에는 대학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정말 많더라.”

지역 간 의료 체계 불균형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기사에 갇힌 이야기일 뿐이었다. 문자에서 빠져나와 직접 내 생으로 뛰어든 것도, 그 불편을 마주한 것도 처음이었다. 서울에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대학 병원과 대형 병원이 존재했으니까. 그런데 대학 병원이 아니라 그저 작은 동네 병원에서 의료불균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될 줄이야. 문을 여는 순간부터 바글바글한 인원에 깜짝 놀랐고, 아무리 기다려도 줄어들지 않은 대기 시간에 당황스러웠다. 결국 예약을 한 뒤 업무를 모두 끝마치고 다시 병원에 들렀고, 그제야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 이주를 고민하는 입장에선 멈칫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바로 안전. 의료와 같은 필수 시설은 서울에 모여 있는 반면, 송전탑과 원자력 발전소 같은 위험 시설은 지역에 유치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치안과 관리도 걱정이었다. 경비원과 경비 시스템을 갖춘 아파트, 오피스텔과 달리 빌라나 주택은 그 관리가 허술한 편이니 말이다. 가로등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 어둠도 짙게 깔리고 인적도 드물어 위험 상황에 대비도, 대처도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주변에서도 ‘지역에서 젊은 여자 혼자 사는 건 너무도 위험한 일’이라며 불안에 부채질을 했다.


주거지 간 거리가 널찍하지만 사람 사이 간격은 좁은 편인 경우가 많았다. 같은 지역 사람들은 딱 어딘지 알만한 '시내'에서 만나기 일쑤였다. 아무리 행정구역 상 땅덩이가 넓다 한들 사람들이 갈만한 곳이 모인 시내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소위 말해 힙한 분위기를 내거나 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을 꼽자면 결국 갈만한 곳은 빤했다. 타인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내 영역은 좁아지고 각자의 이해관계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숨기고 싶은 표정이나 날것의 마음도 감추기 어려웠다. 비밀을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누가 어디로 여행을 갈 계획인지, 누가 누구랑 어디에서 밥을 먹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런 다정함도 좋지만 때론 대도시의 익명성이 그리웠다. 이름을 숨긴 채 고만고만한 인간으로 나를 숨기며 살아가는 대도시의 삶이 몸에 깊이 배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쯤이었다. 유토피아 수면 아래서 발버둥 치는 오리의 발을 마주한 건.


그곳도 선과 악을 모두 품은 인간들이 부딪히는 공간이었다. 각각의 선함이 반드시 커다란 선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크고 작은 갈등이 부딪혔다. 룰을 가볍게 어기는 사람도 있었고, 규칙을 잘 지키는 선량한 사람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 존재도 있었다. 열정이 넘쳐 타인을 힘들게 하는 이도 있었고,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고 싶어 종종 대는 사람도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무례와 장난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그런 부분을 조금을 숨기고 드러내다 어느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뾰족함이 서로를 향하는 순간이, 하필 그래서 불꽃이 튀고야 마는 찰나가 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유토피아는 무슨. 그냥 인간 세상이지.


"무슨 일이에요? 말해주세요."

동그랗게 뜬 눈이 바짝 다가올 때 나는 조금 놀랐다. 가십거리에 대한 호기심도, 터져 나오는 불만을 향한 피로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 그거였다. 더해진 다른 감정을 조금 더 찾아보자면 문제를 알아차려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정도랄까. 그리고 덧붙인 말은 더 가관이었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시스템과 시설 문제는 어찌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생활의 위험에서는 살짝 비켜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툭하면 의도를 제멋대로 오해하고 배배 꼰 말을 집어던지는 대화가 아니라 진짜 소통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다름도 잘 맞춰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내가 두려움을 안고서도 계속 그곳을 찾아간 이유가 떠올랐다. 이렇게 다정하게 연결된 사람들이라면 내게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손을 내밀어 주고 함께 고민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믿음이 나를 한 겹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리던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최선은 마련되지 않았을까.


꼭꼭 잠가둔 마음의 빗장을 푸는 순간, 나는 안전지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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