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7)카지노 게임 요코하마(横浜) 여행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오늘은 동경 관광을 하기로 했다. 요코하마는 대도시이지만, 도시의 크기에 비해서는 그다지 볼 것이 없다. 요코하마의 명소라는 것들이 요코하마 역 중심 1킬로미터 반경 안에 거의 몰려있다. 어제 찾았던 산케이엔이 시내 중심에서 떨어진 유일한 명소라 할 수 있다. 이전에는 한산한 어촌이었다가, 19세기 후반 일본의 개방과 함께 갑자기 커진 도시라 그럴 것이다.
그런데 오늘 동경 관광이라곤 하지만 어디로 갈지 전혀 생각해 둔 것이 없다. 10여 년 전 집사람과 후쿠오카 관광 갔을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하카타 역에 도착한 후 역 관광안내소에 비치되어 있는 관광안내서를 보고 행선지를 급히 결정했던 일이 떠오른다. 일단 카지노 게임에 왔으니 벚꽃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급히 동경의 벚꽃 명소를 찾아보았다.
정보를 보니 지금 날씨는 초여름같이 더운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벚꽃 명소가 아직 개화 전이거나 꽃몽우리 상태이다. 계속 찾아보니 유일하게 코이시가와고라쿠엔(小石川後楽園) 카지노 게임의 벚꽃이 만개했다고 한다. 좋다. 그리로 가자. 벚꽃 구경을 한 후는 료코구(兩國)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요코하마 역까지 지하철로 가서, 거기서 JR로 갈아타고 동경역에서 다시 한번 갈아탄 끝에 고라쿠엔 역에 도착하였다. 이전에 고라쿠엔 앞을 여러 번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차에서 내려보기는 처음이다.
코이시카와고라쿠엔 공원은 도쿄돔 바로 옆에 있다. 도쿄돔은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으로서, 이전에는 고라쿠엔 구장(後楽園球場)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완전히 도쿄돔으로 부르는 것 같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전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일본 프로야구의 최고 인기 팀이었다. 10명의 팬이 있다면 2명이 한신 타이거즈, 1명이 기타 팀, 나머지 7명이 모두 자이언츠의 팬이었을 정도였다. 고라쿠엔 구장은 1960~70년대 우리나라 야구인들에게도 정말 선망의 구장이었다. 어릴 때 고라쿠엔 운동장에서 야구시합을 하는 만화를 여러 권 본 적이 있어 그때부터 알게 된 구장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도쿄돔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코이시카와 공원이 나온다. 입장료는 300엔. 그런데 얼른 보니 경로요금이 눈에 뜨인다. 그런데 나이를 증명할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매표소 여직원에게 경로요금 적용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말하며 몇 년생이냐고 묻는다. 나는 1954년생, 집사람은 1958년이라 하니 웃으면서 경로 티켓을 준다. 반값이다.
이 공원은 한쪽은 도쿄돔, 다른 쪽은 상업용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 속의 섬과 같은 곳이다. 공원에 들어가니 가운데 연못이 있고 주위는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아주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그런데 만개했다는 벚꽃은? 이럴 수가!. 벚꽃이 만개하긴 했는데, 공원에 벚나무라고는 달랑 한 그루뿐이다. 화려한 벚꽃 아래서 봄의 정취를 즐기고 싶었는데, 이럴 수가!!
비록 벚꽃은 실망이지만 정원은 아름답다. 그렇지만 면적이 좁아 연못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천천히 걸어도 5분이면 충분하다. 산책로를 따라 연못을 한 바퀴 돌고 카지노 게임을 나오려는데, 옆으로 작은 숲길이 보인다. 숲길을 따라 들어갔다. 키소강(木曽川)이라는 표찰이 붙어있는데, 숲 속을 흐르는 폭이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도랑이다. 도랑의 시작점에는 높이 50센티 정도의 낙차를 가진 수로가 있다. 시라이토폭포(白糸の滝)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키소강은 일본 알프스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이며, 시로이토폭포는 후지산 산록에 있는 웅장한 폭포다. 정말 대단한 허풍이다.
짧은 숲길이 끝나니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온다. 새로운 넓은 정원이다. 지나온 정원에 비해 몇 배나 더 넓은 정원이다. 역시 가운데에는 큰 연못이 있고, 주위로는 역시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정원 이름에 카지노 게임(後楽園)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렇게 뒤가 넓은 정원이 있기 때문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 뒤쪽의 얕은 언덕이 있어 올라가니 그곳에는 조그만 백의 숙제(伯夷ㆍ叔齊)의 사당이 있다. 이것은 미도 미쓰쿠니(水戸光圀)가 이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곳은 고산케(御三家)의 하나인 미토 도쿠가와(水戸徳川) 가문의 에도 저택이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10여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은 오다 노부나가(職田信長)의 사위였으나, 노부나가의 미움을 사 자결하였다. 그리고 둘째는 다른 가문의 양자로 주었다. 그래서 셋째 아들 히데타다(秀忠)가 실제로 장남 역할을 하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주고, 그 아래 아들 셋에게는 각자 영지를 주고 다이묘(大名), 즉 영주로 삼았다.
히데타다의 집안은 쇼군가, 나머지 세 아들 가문을 고산케라 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유언으로, 앞으로 막부의 쇼군 자리는 쇼군 가에서 잇도록 하되, 만약 쇼군 가에서 후사가 없을 경우 고산케에서 쇼군 자리를 잇도록 하였다. 미토 도쿠가와는 고산케 가운데 하나이며, 도쿠가와 미쓰구니는 2대 번주로서, 미토 코몬(水戸黄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미도 코몬은 학문에 관심이 많아, <대카지노 게임사(大日本史)라는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대카지노 게임사는 카지노 게임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되고 있다. 미도 코몬은 일찍 은퇴하여 번주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준 후 자신은 카지노 게임 전국을 주유하였다. 미도 코몬의 유람기는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실로 그는 대단한 풍류남아였던 것 같다. 에도 내에 이렇게 넓은 터에 화려한 정원을 가진 저택을 지은 것을 보면, 과연 고산케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