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강사 강박증 탈출기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었다. 강사라면 학생들을 지켜보고 기다리기도 해야 하는데, 나는 내 생각을 푸시하기에 바쁘니까 더이상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앞자리 친구가 못 참겠다는 듯 툭 뱉었다. “좀 카지노 가입 쿠폰 안돼?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좀 드라이브 하면 안되는거야? 나(학생이었다가 친구가 됨)처럼 그게 잘 먹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거지. 너무 그렇게 언니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지마.”
다음날이 되었다.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거의 반나절을 변기 앞에 앉아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선명하게 메아리쳤다. 특히 여섯글자.“좀 카지노 가입 쿠폰 안돼?”
어쩌면 내가 종종 깊은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못하는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카지노 가입 쿠폰 안된다고 생각해서, 좀 더 정확하게는 ‘이래야만 해’ 라는 생각으로 나를 심판해서 말이다.
일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일주일이 넘도록 우울감이 가시지 않는 탓이었다. 더 가다가는 위험한 생각을 할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상담을 받고 있던 지인에게 상담사를 추천받았다.
상담사는 최근에 우울감을 느낄만한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르겠다고 운을 떼려던 중 한 순간이 스쳤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수업을 시작할 땐 으례 기분을 묻는다. 카지노 가입 쿠폰들의 상태를 파악할 겸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는 연습을 시키기 위함이다. 그날도 그랬다. 지금 기분을 채팅창에 적어달라고 말했다. 한 카지노 가입 쿠폰이 이렇게 썼다. “방금 전까지 수업을 신청한 걸 후회했어요.” 모두가 보고 있는 채팅창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맞아요. 그럴 수 있죠. 막상 실습 해보니 쉽지 않죠? 괜히 도망도 가고 싶고. 그래서 앞으로는 더 밀어부치려고요. 헬스 PT 받을때도 그렇잖아요. 피티쌤이 타이트하게 관리해줘야 억지로라도 가서 운동하고 식단 하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푸시하려고요. 기대하세요.”
글로 옮겨야 해서 어떻게든 쓰긴 썼는데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당황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 노력했다. 카지노 가입 쿠폰나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아팠다. 창피를 당했다고 느꼈다. 학생이 무례하다고도 생각했다. 학생의 말은 내게 ‘내 수업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후회했다고 말할 정도로 별로구나’ 라고 받아들여졌다.
나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상담사가 이어 물었다. ‘근데 그럴 수 있지 않아요?’ 이런 뜻이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잖아요. 선생님이 기분을 물어봤으니까 떠오르는대로 답을 한 거겠죠?‘ 처음엔 뭐 이런 상담사가 다 있나 싶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 내가 물어봤잖아. 카지노 가입 쿠폰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난 뭐 때문에 이렇게나 힘든거지?
학생이 아닌 내가 뱉은 말 때문이었다. ‘그럴 수 있죠’ 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럴 수 없었다. 당시 나의 진짜 마음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였다. 면박을 주고 싶었다. 호통도 치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더 푸시할 거예요.‘ 라고 한 것이었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이를 꽉 깨물고 돌려 한 것이었다. 이것을 알아차리자 발끝에서부터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이마를 여러차례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랬으면 안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사는 학생 편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편에서 학생을 이기려 들었던 것이다.
상담사는 말했다. ”지연씨가 힘든 건 좋은 강사는 이래야 한다는 믿음 때문 같아요. 강사도 사람이잖아요. 순간 미울 수 있잖아요?<이래야 한다 믿음은 많은 것을 이루게 하지만, 때론 자신을 힘들게도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은 자신을 미워하고 벌하려 들테니까요."
술자리에서 친구가 건넸던 ‘좀 카지노 가입 쿠폰 안돼?’ 는 상담사에게 들었던 '이래야 해 라는 믿음 때문에 힘든 거예요.’와 같은 말이었다. 결국 또 ‘좋은 강사는 이래야 한다’ 는 왜곡된 믿음으로 나를 심판하고 있었다.
이 믿음은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누군가 알려준 것도, 그런 강사를 보며 배운 것도 아니다. 지금에서야 드는 어렴풋한 생각으론 학생들에게 종종 듣는 세 글자, ‘덕분에’가 만든 부담감이자 책임감이다. ‘덕분에 취업했어요.’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감사하면서도 무섭다. 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니, 앞으론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생각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좋은 강사 법전을 만든 것 같다. 이렇게 쓰고보니 되게 영광스런 신념이다. 신념까지 되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영향을 꾸준히 끼쳐왔다는 뜻이니까. 또 대견하기도 하다. 순간의 기쁨에 취하지 않고 나의 본분을 다하려 부단히 애를 썼다니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 믿음이 지나쳐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조절이 필요하다. 다시 상담을 받아야 할까 생각하던 찰나, 친구가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신념의 ‘해야 한다’를 ‘하고 싶다’로 관점을 바꾸면,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보인다. ‘사람은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 대신 ‘배려하고 싶다’ 혹은 ‘배려받고 싶다’로, ‘누구와도 잘 지내야 한다’가 아니라 ‘상대와 잘 지내고 싶다’로... 신념을 바람으로 바꾸어 볼 때,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팽팽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출처 :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
상담사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지금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건 오히려 지연씨가 좋은 강사라는 거 아니에요? 좋은 강사가 되고 싶은데 잘 안 되어서 속상한 거잖아요.‘
좋은 강사가 되고 싶다. 학생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하고, 그들을 지켜보고 기다려 줄 수 있는 강사가 되고 싶다. 이렇게 바꿔말하니 정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제 내가 하면 좋을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어떻게하면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학생들 편에 서서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하니 먼저 정의부터 바로 세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기다린다는 건 뭘까? 학생들 편에 서서 말한다는 건 어떤걸까? 신난다. 이 질문에 나만의 답을 갖게 되면 보다 자유롭고 멋진 강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