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라고 불리는 아이
"아빠, 학교 선생님들이 나 발표시킬 때 내 이름 안 불러."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가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
내가 묻자 딸아이는 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카지노 게임! 라고 부른다니까? 내 원래 고향은 서울이라고 서울에서 살다가 7살 때 내려갔다고 아무리 말해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다 카지노 게임라고 불러."
미안하다. 다 아빠의 잘못이다. 용서하렴.
딸아이는 지금 서울 생활에 푹 빠져있다. 6살까지 서울에 살았지만 그때는 대한민국 어디가 좋은지도 몰랐을테고 카지노 게임에 끌려 내려갔을 때는 부모가 카지노 게임가 좋다니까 좋았을테고, 더군다나 어렸을 때는 바다며 들판이며 놀러다니기 바빠서 아무런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14살 사춘기 청소년이 되어 다시 와서 본 서울은 환상 그 자체였다. 걸어가면 올리브영, 마트, 다이소가 나오고 각종 브랜드 옷가게가 있고 배달 음식을 시킬 때면 카지노 게임에서 '텅~~'하고 비어있던 배달앱이 이제는 고를 음식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플 정도이다. 아침에 시킨 택배가 저녁에 와있지를 않나,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옆동네에서 열리고 롯데월드가 지하철 한 번이면 갈 수 있으니 이런 신세계가 또 있을까? 실제로딸아이는 카지노 게임에서 서울로 올라온 후 단 한번도 카지노 게임에 내려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카지노 게임의 '제'자 한 번 이야기 하지 않았다.딸아이는 하교후 친구들과 예쁜 교복을 입고 손잡고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는 재미로 살고 있다.
지난주 경기민요 전공자인 가수 송소희 공연 유튜브촬영 현장에 다녀왔다. 이 공연이 일반 공연과 다른 것이 전국에서 국악전공자 70명, 그것도 초중고대 여학생만 뽑아 고민을 나누고 공감하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강남 한복판의 스튜디오에서 열린 공연, 딸아이는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자신의 롤모델과 같은 송소희의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야 뭐 딸아이 매니저로 살고 있기에 당연히 그곳까지 딸아이를 모시고 가고 공연시간 동안 대기했다가 다시 모셔와야 했다. 다행히도 공연 관계자들이 야박하게 보호자를 쫓아내지는 않아서 스튜디오 구석에서 송소희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점은 다행이었다.예술을 하는 아이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나는 그정도의 울림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공연을 보고 감동에 울고 나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반면에 생글생글 웃고 나오는 딸아이,
"공연 어땠어?"
라고 묻자 딸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 사니까 너무 재밌어. 이런 것도 보고."
나야 카지노 게임에 내려가기 전까지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했고 서울여자를 만나 서울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이곳에 대해 커다란 감흥은 없는데 인생의 절반을 카지노 게임에서 보낸 딸아이에게 서울은환상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그런 딸아이를 보며 나는 다시 느꼈다.
'이 아이는앞으로 서울을 떠나는 일이 절대 없겠구나.'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도 확고하게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딸아이를 볼 때면 반대로 내가 혼란스럽다. 딸아이는 이렇게 자기 길이 확실한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매일 고민이니말이다.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운명이 있다는데 딸아이를 보면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모르는 6살 여자아이를 데리고 카지노 게임로 내려갔는데, 세월이 지나반대로 아빠를 서울로 올려버린 딸아이! 이 아이는애초에 카지노 게임에 살 팔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학교에서 언제까지 딸아이를 "야, 카지노 게임!"라고 부를 지 모르겠지만 난 오히려딸아이만의 확실한 시그니처가 생긴 것 같아 나쁘지 않다. 전교생 중 카지노 게임 출신이 딸아이 혼자인 서울의 학교에서 '카지노 게임!'만큼 확실하게 각인되는 별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딸아이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다. 이 제주 소녀는 오늘도 10시까지 학교 연습실에서 친구들과 연습하고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밤늦은 시간이라데리러 가서 딸아이손을 꼭 잡고 집으로 오는 밤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참 나도 행복한 사람이구나. 세상 어느 아빠가 이렇게 딸아이 인생에 많은 부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남들은 나를 딸바보라고 자식바라기라고 놀릴 지 모르지만 그러가나 말거나!딸아이의 인생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버팀목이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걸로 행복하다.
제주 가야금 소녀와 딸바보 아빠의 서울살이는 오늘도 한창 진행중이다.
국악 전공자 70명 앞에서 부르는 Not a Dream l 송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