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준 Dec 21. 2024

제니스 카지노 쿠폰

(큰어머님과 작은 아버지 청해 선생을 추모하며)

큰댁에 심부름 가는 일은 언제나 소년의 몫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누문동에서 큰댁이 있는 계림동까지 왕복 십리 길은 10살 소년이 보자기에 싼 메주만 한 물건을 한 손에 들고 혼자 걷기에는 좀 먼 길이다.

집을 나서서 큰길 건너 학교까지 익숙한 동네 길을 지나면 이내 철도 굴다리가 나온다. 굴다리의 침침한 내부에는 볼거리 많은 극장 포스터, 서커스를 알리는 벽보들과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런저런 크고 작은 광고 딱지가 빼곡히 어지럽게 붙어 있다. 선생님이 절대 가지 마라고 당부하는 철길이 굴다리 위에 있다. 이 굴다리 옆으로 철길에 올라갈 수 있는 좁은 오솔길이 나 있다. 나와 동네 악동들은 자주 놀러 와서 철길과 열차 바퀴를 요긴하게 애용했다. 보통 여기까지가 우리 동네 애들이 일상에서 진출하는 경계이다.


굴다리를 지나면 개천을 따라 거무튀튀한 진흙이 드러난 찻길이 죽 이어진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길인데, 군데군데 구운 유리가 반짝이며 섞인 자갈도 깔려 있다. 근처 도자 공장에서 나오는 뭔가의 찌꺼기를 길에다 깔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드문드문 그리고 줄지어서 튀김가게, 찐빵과 만두 냄새 고소한 가게, 연탄가게,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개천을 마주 보고 길가에 길게 이어지고 어슬렁거리는 강아지들, 장기 두는 아저씨들, 리어카 장사 좌판 위에는 희한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다. 구경할 것은 끝이 없이 많다. 굴다리를 지나 한 십 분쯤 가다 보면 개천을 건너는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심부름은 대략 절반 정도 온 셈인데, 이어서 커다란 방죽이 나오고 갑자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 방죽*은 정말 크다. 그런데 정작 길에서 방죽을 볼 수는 없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방죽 둑방 길 양 옆으로 거적을 덮은 가축우리 같은 빈민굴이 하염없이 이어진다. 방죽 쪽 스러질 듯한 집들 사이로 보이는 물 위에는 수초 사이사이에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가 가득 떠있다. 언젠가 아기 사체도 떠있는 채로 있었다는 무서운 방죽이다. 카지노 쿠폰이 사는 동네와는 너무도 다르고, 소란스럽고, 멀끔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무섭다.

카지노 쿠폰의 눈엔 차림새가 거의 비렁뱅이 같은 이들이 오고 가는 곳인 데도 거기에 풀빵 장사도 있고, 설탕과자를 파는 좌판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으스스한 동네다.

엄마도 매번 단단히 이른다. 그곳을 지날 때는 앞만 보고 부지런히 가고 누가 불러도 대꾸하지 말고 그냥 가라는 다짐이다. 소년은 무서워도 날쌔게 지나가며 볼 것은 다 본다. 집집이 울타리가 없으니 대문도 있을 리 없다. 날 더운 날 활짝 열려있는 방문이 이렇게 산다는 속을 그대로 다 보여준다. 어떤 집에는 카지노 쿠폰를 크게 틀어 놓아 노랫소리가 한참 멀리 쫓아오기도 한다. 소년은 ‘우리 집은 네모 반듯한 방이 두 개라 참 부자다’ 생각한다. 구불구불하면서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방죽길을 잰걸음으로 걷다 보면 결국 그 무서운 동네의 끝이 나온다.


다시 도시가 나오고 길은 아스팔트이고 방죽은 등뒤에 있다. 어른들은 시청에서 이 방죽을 곧 메울 거라는 얘기를 한다. 이렇게 엄청나게 큰 방죽을 메운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가지만, 메우면 심부름 가기 좋겠다고 생각한다.

좀 반듯한 집들로 들어찬 골목 넓은 동네가 나온다. 계림동이다. 그 동네 가운데 대문 넓은 집이 바로 소년의 큰댁이다. 그런데 큰댁은 그 넓은 집의 한편에 있다. 송정리에서 사시던 멋진 이층 집이 소년의 눈에 선한데 웬일인지 어느 날 큰댁은 이 동네로 이사 왔고, 그는 벌써 여러 번 이 집에 심부름 왔다. 심부름 올 때마다 큰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카지노 쿠폰이 마당에서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면 큰어머니는 그를 보고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고 방으로 올라오게 한다. 방안 가득 바느질 감이다.

심부름 보자기를 전해 드리고 나면 소년은 줄곧 생각해 두었던 숙제에 몰두한다. 주머니에서 열차바퀴가 납작하게 잘 눌러준 못을 꺼낸다. 큰어머니 바느질 소쿠리에는 바늘과 옷핀이 잔뜩 붙어있는 말굽자석이 있다.


엄마가 큰댁 심부름을 얘기하면, 무서운 방죽 길 동네의 밀어내는 으스스한 힘과 이 말굽자석이 이끄는 속삭이는 힘 사이에서 그는 일순간 갈등한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시시하게 얇은 말굽자석과는 비교가 안된다. 두께가 손가락 세배는 될 굵직한 쇠막대가 이쁘게 구부러져 있고, 모래 속을 한번 휘저으면 마술같이 쇳가루를 찾아내어 흑염소수염처럼 붙여 내는 막강한 놈이다.

손으로는 부지런히 자석에 못을 비비며 큰어머니 물음에 답해드리고, 또 카지노 쿠폰은 그가 보았던 영화나 학교 앞 문방구 가게 텔레비전에서 본 영상들을 세세히 얘기해 드린다. 그의 총총한 기억과 장면 묘사는 큰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려서 좋고, 얘기하다 보면 그도 그 영화를 공짜로 한번 더 본 것 같아 좋다. 얘기해 드려야 하니 카지노 쿠폰은 주인공의 이름과 중요한 역할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

한 편의 영화 상영이 끝날 무렵이면 납작한 대못은 자석이 되어 있다. 한쪽에 붙여 놓은 클립 세 개도 어느덧 자석이 되어있다. 큰어머니의 자석을 대못에 묻혀오는 것이 소년의 낙이었고 심부름 값이었다.

그 말굽자석은 언제나 탐이 나는 물건이지만, 또한 큰어머니께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만큼 카지노 쿠폰은 철이 들었다. 어디서 파는 곳도 없다. 몇 번이나 그는 큰어머니께 여쭈었다.

‘큰엄마, 그거 어디서 나셨어요?’

대답은 언제나 같다.

‘몰라 그냥 있었지’

언제나 이해가 안 되는 대답이다. 물건이 그냥 있을 수 있겠는가? 손으로는 쇠못에 큰어머니의 자석을 덜어 내가면서 입으로는 큰어머니께 그가 본 것들을 이야기로 전해드리는 무형의 교환 작업을 마치면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더욱 여유 있게 한눈을 팔아가며 그 방죽길을 걸어서 돌아온다.


카지노 쿠폰은 학교에서 제법 똘똘한 녀석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다들 그런 막강한 말굽자석을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라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녀석들의 반응이 겨우,

‘그렇게 큰 게 어디 있어’라든가 ‘있으면 어디 가져와봐’ 라면 더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 큰 자석은 틀림없이 미제(美製) 물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좋은 것은 거의 미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었다.

형들에게 자석 얘기를 하면 약간 돈 놈 취급했다. 질문이 많은 녀석이었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자석도 쓸데없이 많은 놈이었다. 큰어머니의 말굽자석은 그의 모든 자석의 어머니였다. 자력의 원천으로서 그 말굽자석의 탄생 근원을 밝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어려운 탐구였다.


어느 날 카지노 쿠폰의 한눈파는 좋은 습관은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학교 오전반이 끝나고 평소 학교에 오가던 길보다 훨씬 먼 길을 돌아서 이곳저곳 구경하며 집에 오던 날씨 좋던 날, 전파사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엎어 놓고 분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라? 전선에 칭칭 감겨 있는 가운데에 말굽자석 같은 게 엎어진 스피커에 떡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레카!

소년은 집에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었고 지금 낮 밥을 먹어야 할 만큼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아저씨 옆에 쪼그려 앉았다. 카지노 쿠폰의 노랫가락을 따라 부르며 감긴 전선을 천천히 벗겨 나가는 아저씨의 손에는 분명하게 큰댁의 말굽자석이 들려 있었다. 침이 넘어가고, 눈은 이글거렸다. 저것을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판다면 얼마나 할까?

조그만 녀석이 쪼그려 앉아 스피커를 분해하는 과정을 익히듯이 들여다보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아저씨가 노래를 그치고 카지노 쿠폰을 보았다.


‘인마 이 구리선 다시 쓸 거야’

‘저 자석 보고 있어요’

‘인마 다시 감을 거야’

‘얼마예요?’

‘너 팔아도 못 사 인마’

‘그거 스피커마다 붙어 있어요?’


소년의 머리에 순간 떠올랐다. 셋째 숙부님 댁의 미제 카지노 쿠폰 – 참 멋진 놈이었다. 혼자 들기 어렵게 묵직한 데다 결이 좋은 나무 상자 안에 스피커가 붙어있는 놈. 그는 그놈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 작은아버지 댁에 가게 되면 반드시 뜯어보리라.


소년의 집에서 한참 먼 무등산 자락 동네에 있는 숙부님 댁에 놀러 갔다. 카지노 쿠폰 뒤편의 구멍을 통해 작지만 더 이쁜 말굽자석이 보였다.

‘작은아버지, 이 카지노 쿠폰 고장 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고쳐야지’

‘고쳤는데 또 고장 나면요’

‘또 고쳐야지’

‘또 고장 나면은 요’

‘이 녀석 참 고약하네… 또 고쳐 써야지’

‘진짜 못 고치게 고장 나 불면은 요?

‘… 그땐 고물장수한테 넘겨야겠지?


‘작은아버지’

‘왜?’

‘고물장수한테 넘길 때 안에 자석은 나를 줘요’

‘자석만?

‘네’

‘그러마’


미제는 고장도 잘 안 났다. 그 제니스 카지노 쿠폰 고장 나기를 기다리며 소년은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갔고 그리고 까맣게 잊었다.


자상하게 소년의 얘기를 들어주시던 큰어머니, 제니스 카지노 쿠폰의 자석을 주실 작은 아버지 모두 아득한 동화 속에서 뵈었던 그리운 어른들이다.





*그 방죽의 이름은 지금은 메꾸어져 흔적이 없지만 15세기에 축조되어 유서 깊은 경향방죽이다. 인조 임금의 아들인 왕자의 태를 옮겨 묻었다는 작은 야산인 태봉산을 깎아 나온 돌과 흙으로 경향방죽을 메웠다.

도시 팽창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광주의 역사적인 자연 명소 두 곳이 동시에 사라진 것이다. 이때가 글쓴이가 국민학교 4학년에서 5학년이던 1967년에서 1968년 무렵이다. 태봉산을 깎아 새로 생긴 광활한 평지로 광주역을 이전하였다. 역을 이전하면서 도시를 가로지르던 철도도 철거하여 카지노 쿠폰의 추억 어린 굴다리도 사라졌다.


** 셋째 숙부님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낚시를 즐기고 꿀벌을 기르는 목가적인 생활을 하셨다. 어른들의 결정으로 동생이 작은 아버지댁에서 귀염둥이로 지내고 있었는데,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 나는 으레 동생을 만나러 갔다. 숙부님은 무등산 자락 지원동 골짜기 집에 사실 때도 취미를 겸한 부업 삼아 꿀벌을 기르셨다. 마당에 늘어놓은 꿀벌통의 개수도 상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꿀벌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던 숙부님은 양봉에 필요한 연기 피우는 풀무 같은 소소한 도구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통을 돌려 원심력으로 꿀을 짜보게 하셨다. 통에 120도 각도로 꽂아 넣은 3장의 꿀벌집이 돌면서 달콤하게 끈적이는 꿀이 빠져나와 통의 벽면을 따라 흘러내리던 기억, 그리고 맛보던 꿀맛이 남아 작은 아버지 청해선생을 추억한다.


*** 카지노 쿠폰은 커서 자석이 만드는 신비한 자기장 안에서 구리선이 회전하며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설계하고 짓는 일을 평생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