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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Apr 23. 2025

삼촌 카지노 게임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거다.
갑작스러운(이건 밝히기 좀 그렇다;;) 일로
집이 매우 곤궁해졌다.
그로 인해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을 다니셨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오후 1시쯤 모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잠깐 놀다가 집에 갔고, 그 후 오후 내내 혼자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땐 연락할 방법이 따로 없었기에, 동네 공터에 가면 또래 아이들이 구슬치기, 오징어게임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 섞여 함께 놀곤 했다.

그 시절, MTB 카지노 게임가 처음 등장했다.
기어가 달린 카지노 게임—5단, 7단… 나중에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모두 기어가 달려 21단까지 나왔다.
하필 친구들 모두가 그 카지노 게임를 갖고 있었다.
함께 놀 때면, 나는 주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페달을 밟고 바람처럼 질주했지만,
나는 언제나 그 뒤를 헉헉거리며 뛰어야 했다.
어느 순간, 함께 놀던 자리를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다.
부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에게 고가의 MTB 카지노 게임를 사달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짐이 될지를, 고작 초등학교 5학년 짜리가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사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외삼촌이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며 엄청난 부자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늘 같은 상상을 하곤 했다.
‘혹시 오늘, 삼촌이 집에 와서 MTB 카지노 게임를 사다 놓진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 상상은 참 실감 났다.
그래서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기대에 한껏 부풀어 대문을 열었다.
하지만 삼촌이 사다 놓은 카지노 게임는,
당연하게도 없었다.

그렇게 MTB 카지노 게임가 갖고 싶지도,
그 카지노 게임를 타는 친구들이 부럽지도 않은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매일 같은 상상을 반복했다.
꽤 오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허황된 상상을 할 땐
늘 한마디 주문처럼 그 말을 꺼낸다.

“삼촌 카지노 게임네.”

로또를 사고 금요일 밤 잠자리에 들면
‘1등 되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에휴, 삼촌 카지노 게임.’
하고 중얼이면 거짓말처럼 모든 상상이 흩어진다.

최근에는 글을 제법 쓰고 있다 보니
‘이러다 진짜 작가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역시 이렇게 정리한다.
“응, 삼촌 카지노 게임.”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충분한 노력을 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 일들—
예를 들면 공무원 시험, 승진 시험, 자격증 시험,
혹은 중요한 발표나 강의 같은 것들 앞에서는
그 주문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불가능하거나 허황된 일에 대한 과한 기대,
엉뚱한 상상 속에서만
그 주문은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

그리고 오늘
그 주문을 여러 차례 외웠다.

주문이 자동으로 나오는 걸 보니,
오늘 내가 품은 이 생각들도
허황된 기대와 상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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