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98
2025. 3. 26. 수.
문득 달력을 보니 D-398이다. 그렇다. 나는 다가올 상실의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1년만 채우고 끝낸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오늘은 D-33이 되시겠다. 퇴근 후 원래 했어야 할 일들을 내팽개치고, 이렇게 한심한 상상을 하며 우두커니 앉아있는 저녁이다. 봄꽃처럼 팡팡 터지는 내면의 충동. 점심시간에 산수유가 노랑의 진액을 모아 모아 마구 부려놓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 겨우내 씨앗 속에 품은 건분노였을까? 고작 퇴사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었을까?
퇴근 무렵 나는 강박적으로 책상과 서랍을 정리하고 물건들의 줄을 세웠다. 그요란한 행동은 분명 거식 또는 폭음을 하던, 대문을 박차고 나가 남미를 방랑하던, 암막 커튼 아래 틀어박혀 얇은 볕뉘에도 온몸을 웅크리던 나들과완전히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다시한번 불안과 갈애, 자기혐오에 잡아먹힌 것이 틀림없었다. 최근 기록해 오던 (비공개)일기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빨리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태의 나는, 반복되는 취업과 실업, 이사와 계약, 만남과 이별, 가난과 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어릴 적 거대한 불안에 잠겨 있던 그 아이의 출몰이라는 것. 내 한몸 먹고 살기 바빠 외면하고 방치하다 보니 기억 속에서 정말로 사라져 버린 아이. 내가 한때 몸으로 살았던 아이. 나를 절망 속으로 던져 넣은 것은해도 해도 너무한 현실이 아니라, 나였다.언제나 그랬다. 나는 마치 제대로 모시지 못한 과거의 나에게 강력하게 빙의된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한동안 벽장 속에 감춰 두었던 술잔을 꺼냄으로써 다시 나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아아, 다 소용없어.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때려붓기 시작한다. 통점을 향해 정확하게 가격한다. 지금까지 잘 버텨온 회사 생활도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러나 곧이어 차오르는 취기로써 이 모든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 잊는다. 잊어버린다. 그렇게'한잔만 더'를 갈구하는 나. 내가 그토록 통제하려 했던 나. 이 모든 건 내게 너무도 익숙한 중독의 수순이다. 제멋대로 굴고 싶은아이의 폭주. 술기운이 차오르면 그 아이가 내 몸으로, 내 시간으로, 드나든다. 깔깔거린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나를차지한다. 그렇게 또 한번 나를 방기하고 만다. 과거의 나를 내가 지워버렸듯, 현재의 나를 나로부터 폐관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500일 후를 대비하고 준비하기 위하여 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쓰다 보니 500일을 낱낱이 버티기 위해서, 중간에 탈선하지 않고 완주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 있을 때가 많아진다. 감히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 500일을 버틸 거라고 확신했단 말인가?오만하다!휴가라고 여긴 500일 또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실로 나는 1년 혹은 2년의 기간조차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진 빈약한 인내심을 최대치로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비정규직이라든지 열정 페이라든지 하는 세상의 탓을 하기에도부질없고알량할 따름이다. 일? 그건 차라리 문제가 아니다! 나는 프로페셔널이니까. (역시 오만하고 재수없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어쩔 수 없이 가까워지는인간 관계의 복잡함, 그속에서종종 불거지는갈등과그것에 대처하는 나의 나약함…… 휘청휘청 흔들리는 나…… 그것이야말로 문제로소이. 역시 나는 구제 불능인가? 나는 역시, 안 되는 건가?
출근길에는 만원 버스 안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망치처럼 내려쳤고, 퇴근길에는 버스 앞유리 부분에 꽉 끼여 기사 아저씨의 반말과 쌍욕을 들어야 했다. 아무도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모든 건 좀 억울했고, 다들 우연이고 실수였을 텐데 나 혼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문젠 거지. 다 내가 잘못한 거지. 여기서 더 화 내 봤자 나만손해지. 안 그래? 그렇게 반항적이고 편벽진 마음으로 500일의 윈터에서 365일을 홀랑 까먹어 보는 봄밤.왜, 그러니까 왜!
봄은 왜 기어이 오고야 말아서는.
(백수 시절 고독과 절망 속에서 매일매일 홀로 돌아다니던 숲이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