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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pr 30. 2025

복을 짓다

누군가의 앉을카지노 게임를 준비하는 일, 나를 위한 일.

담마 코리아에 윗빠사나 열흘 코스를 다녀온 지 일 년 반 만에, 다시 진안으로 향했다. 이번엔 짧은 카지노 게임였다. 기간은 3일. 카지노 게임을 위한 일정은 아니었고, 그래서였는지 마음도 가벼웠다. 생각해 보면 진안으로 향했던 발걸음은 무섭고 두려웠다. 세상과의 단절은 언제든 어려운 일이었다. 첫걸음에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짐을 쌌지만, 이번 역시 ‘진짜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도 조금은 가벼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번엔 통신이 가능했고, 일도 언제든 병행할 수 있었다. 마침 협업하는 동료들도 인사이트 트립을 떠난다는 소식에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나를 가로막은 것은 요즘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언제든 도망가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도. 케어하는 사람과 도망을 꿈꾸는 사람, 그 두 마음이 뒤섞인 채로 함덕리로 향했다. 초겨울에도 양지바르던 그 자리는 새 잎이 돋은 푸르름으로 나를 맞았다. 오는 길에 도반과도 이야기했지만,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늘 평온하다.


이번엔 늘 부러워 힐끔거리던 구수련생 숙소에 머물 수 있었고, 방마다 개인 화장실이 있는 호사스러움도 덤으로 있었다. 고귀한 침묵을 유지해야 했던 공간에서 마음껏 대화도 할 수 있었고, 휴대폰도 쓸 수 있었다. 식사 역시 함께 만들고 나누는 자리였다. 카지노 게임를 이렇게 재미나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첫날은 숙소 세팅을 하고 나서 저녁 카지노 게임에 참여했다. 카지노 게임로 노동할 생각만 했지 내가 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본격 앉는 일은 종종 단체카지노 게임을 참여했던 것을 제외하면 실로 오랜만이었다. 서울에서는 15분 앉는 일이 억겁의 시간처럼 무겁고 느리더니 어쩐 일인지 멧따에 대한 가이드가 흘러나올 때 ’벌써 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몸에 남은 감각들을 따라, 나와 타인을 향해 자애의 파동을 보내는 그 순간은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부드러웠다.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별이 쏟아지는 하늘에 북두칠성도 헤아려보는 낭만이 있었다. 모든 것이 기대하지 않아 더욱 값진 순간들이었다.


둘째 날은 눈뜨자마자 담마홀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주변도 둘러보았다. 새삼 이렇게 봄날에 다시 올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앉으니 바로 한계를 만났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끊어질 듯 강한 감각은 조바심이 나게 한다. 그간의 불성실을 반성했고, 한편 정말 여지없이 만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 카지노 게임 뒤로 나는 식사 준비 당번을 하기로 했다. 물론 숙소를 점검하는 일은 계속했지만, 고정 역할은 식사였다. 좌충우돌, 매 끼니 시간에 쫓겨가며 간 맞추기에 실패해 같이 준비한 도반과 남몰래 큭큭거리기도 하고, 사뭇 진지하게 10인분의 식사에 대해 골똘해지는 순간도 좋았다. 내가 언제 누굴 먹이려고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을까. 시키는 일에 쓸데없을 정도로 진지해지는 나도 만났다. 단순한 반복의 노동으로 생각을 지우자는 마음이었는데, 모든 순간 자꾸 나를 만났다. 마음이 불편하고,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고질병. 그렇게 일을 하다 하루 세 번 앉는 동안에는 무수한 생각을 만나고 감각으로 돌아오고, 사라지는 걸 목격하고, 다시 일하는 것. 모든 순간이 카지노 게임이었다. 실전 트레이닝이었다. 오히려 카지노 게임실 밖에서 더 또렷이 알았다. 왜 담마가 카지노 게임의 이로움으로 하루 세 번 앉을 수 있다고 말했는지, 나는 마지막 날에야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 아침, 눈을 뜨니 6시 8분. 나는 늦었다. 새벽녘 일어나 잠을 설쳤어도, 7시 알람을 맞추면 6시 58분에 일어나는 나를 너무 맹신했다. 며칠 육체노동이 고되었다고밖엔 핑곗거리가 없었다. 차라리 여유 있게 일어날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전날 공용화장실에 뿌려 둔 곰팡이 제거제를 겨우 대충 씻어내고 담마홀 바깥에 앉았다. 끝나고 식당으로 가니 AT 선생님(*AT 선생님은 Assistant Teacher의 약자로, 수행 중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서 안내해 주는 조력자다.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질문을 받고 카지노 게임을 다독이며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다.)이 계셨다. 늦잠 자서 밖에 앉았다고 하니,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늦더라도 들어와 앉으세요. 그래도 됩니다. 자신을 우선하세요.”


카지노 게임 기간 중, 두 번의 비디오 시청이 있었다. 하나는 최초로 인도 교도소에서 진행된 윗빠사나 코스. 각종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자기 안의 고통과 마주하고, 그걸 견뎌내는 내용, 다른 하나는 자발적 카지노 게임로 전 세계로 확장된 카지노 게임코스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자리를 깔고, 음식을 만들고, 코스를 준비한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수행을 위해 묵묵히 준비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다나’라는 말을 들었다. 받는 사람을 알지 못한 채 주는 일(*다나(Dāna)는 대가 없이 주는 마음, 조건 없는 나눔을 뜻한다. 받는 이도, 주는 이도 머물지 않는 보시의 연습이다.). 그리고 주면서도 그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 빠라미(*빠라미(Pāramī)는 수행자가 길 위에서 닦아가는 열 가지 덕목을 말한다. 인내, 정진, 자애, 내려놓음 같은 것들이다.). 그 모든 단어가 그날따라 유난히 선명했다. 그건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에 앉았다.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여전히 도로에서 깜빡이 없는 차선 변경에는 화가 난다. 할 일은 여전히 많고, 시간은 여유롭지 않다. 그래도 나는 안다. 카지노 게임이란 대단한 수행이라 뻗댈 것 없는 일이라는 걸. 완전무결하게 앉지 못하더라도, 때로 늦었더라도, 언제든 자리에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경험한 것은 어디 가지 않으니, 믿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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