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2차 가해 관련 사건에 부쳐
한 시민온라인 카지노 게임 텔방에 <노란들판의 비마이너 사태 2차 가해 관련 사과 요구 연명 요청서가 올라왔다. 깜짝 놀랐다. 비마이너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2023년부터 제기돼왔는데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어왔나 보다.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이 개인의 SNS로 문제를 공론화하며 비마이너의 직장 내 위계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는지,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듯하다.
이 사건은 나처럼 노들야학을 오랫동안 후원해온 시민들에겐 착잡함을 안긴다. 1993년 노들야학에서 시작한 노들이 2006년 장애인자립작업장 '노란들판'으로 확장되고 2012년 사단법인이 되었다. 장애인 지하철 타기 투쟁으로 알려진 전장연의 대표 박경석이 노들야학의 초대 교장이었고, 그는 지금까지 장애인 운동의 산증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투쟁이었던 장애인들이 장애인 야학으로 시작해 사회적 기업이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어낸 그간의 투쟁은 큰 경의를 받아 마땅하다.
노들이 지금껏 견지한 투쟁은 장애인을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인정 투쟁이었고, 이 투쟁의 역사성이나 정치성은 그들의 진정성과 더불어 함부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인정 투쟁이 그렇듯이 투쟁의 어젠다가 정의롭다고 투쟁에 임한 모든 이들이 그 자체로 정의로움을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십 년간 정의로운 투쟁을 이어온 시민온라인 카지노 게임조차 그 자체의 역사성과 진정성만으로 정의로움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아왔다.
나는 이런 정의의 부정의를 목격하면서도 노들을 예외적으로 믿고 있었나. 비마이너(비마이너는 장애인 문제를 집중 보도하는 ‘진보적 장애인 언론’을 표방하며 2010년 창간되었고 박경석 대표가 초대 발행인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불거진 사태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충격은 어리석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어느 곳에서건, 비록 약자들의 집단이거나 곧 죽을 위기에 놓인 수용소에서조차도, 아주 작은 권력도 도구화되어 위계를 세워온 역사가 엄연하지 않던가. 피해자라고 해서, 정의로움을 표방하는 시민온라인 카지노 게임라고 해서, 그 자체로 정의로움을 담지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나 성폭행 문제는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시민온라인 카지노 게임나 정당에서조차도 빈번히 일어났고, 이후 이 폭력 사건의 처리가 정의롭게 진행된 사례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왜 그럴까. 잘못이 있었으면 바로잡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의 문제점을 혁신해 보다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피해자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비대위건 조사위건, 문제가 된 사건에 진지하게 임해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가해와 피해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공동체에 공유함으로써 거듭날 힘은 없는 것인가. 사건 조사의 결과가 비록 그 조직에 큰 치부가 될지라도, 이를 은폐 왜곡하기보다 이를 딛고 도약할 용기나 내부의 힘이 없다면, 과연 진보를 표방하며 구태와 부정의와 불평등과 성차별과 온갖 편향된 사고들을 어떻게 직면하며 싸울 수 있을까. 자신들 내부의 문제조차 직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더 나은 진보적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비마이너는 전장연의 행보를 밀착 보도하며 장애인 투쟁의 선봉에 함께 해왔다. 나는 그들이 지금껏 해내온 역사를 폄훼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들의 문제를 직면하고 개선할 수 없는 언론이 공정한 보도를 한다거나 진보적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앞으로도 믿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윤석열의 망동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차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마치 영화처럼 매일 펼쳐지고 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노란들판이나 전장연 등 장애인 시민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은 계엄의 무도함을 꾸짖음과 동시에 지금껏 견지해온 장애인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계엄 시국의 엄중함 속에서도 전장연 등의 장애인 단체에 후원이 늘었다는 미담도 전해지고 있어 마음이 따뜻했었다. 하지만 혹한의 봄기운 속에서도 어떤 피해자는 엄혹한 고통 속에 처해 있었다. 우리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통 어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구성원이 제기한 문제나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은폐하거나 왜곡할 때에는 그 조직은 이미 관료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관료화된 경직되고 권위주의적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촉발된 진보 운동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관료화되어 있다면 그 본령을 벌써 상실했다고 보아야 한다. 관료화된 조직에 무슨 진보가 있고 혁신이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인간 존엄이 추구되겠는가. 비마이너나 노란들판이 대의를 위해 작은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혹시라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간의 지지를 철회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