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쿠폰 (션 베이커 감독, 2024) 리뷰
이번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은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라 확신했는데, <카지노 쿠폰의 마이키 메디슨이 받는 쾌거를 올렸다. 데미 무어를 응원하던 나로서는 좀 아쉬웠지만, 막상 <카지노 쿠폰를 보니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노라의 서사는 간단하다. 스트립 클럽에서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성 노동자 아노라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러시아 금수저와 눈이 맞아 애정 행각을 벌이다 결혼이라는 이벤트로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러시아 금수저 부모의 노발대발로 ‘럭키 걸’로 도약하려던 아노라의 새로운 삶은 일장춘몽이 된다. 이 일장춘몽이 되는 과정에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올올이 새겨져 있다.
영화는 아노라가 어떻게 성 노동자가 되었고 살 수밖에 없는지의 구구절절은 작파한다. 대신 그녀가 지금 무엇을 감당하며 살고 있는지로 직진한다. 그녀가 신혼여행으로 디즈니랜드에 꼭 가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퍼뜩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어린 무늬가 떠올랐다.
성매매를 해서라도 무늬를 키워보려던 엄마와 디즈니랜드 앞 모텔에 살며 단 한 번도 그곳에 가보지 못한 어린 무늬 말이다. 해서 감독은 카지노 쿠폰 같은 젊은 여성이 어떻게 성 산업에 유입되었을지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앞서 전달했으니 각설하고, 다음 진도를 빠르게 빼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 마피아의 아들 이반은 무용하고 지질하다. 하고 싶은 게 없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술, 마약, 섹스에 중독된 유흥과 향락이 전부인 삶이다. 이런 철딱서니가 일주일 계약 연인 관계에서 “그냥 장난”으로 결혼이라는 해프닝을 벌였으니, 횡재했다고 믿지만 결혼에 진심인 아노라가 상처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장난으로 결혼한 이반에게 아노라는 어떤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이 결혼을 잘 해내고 싶지만 같이 설계할 미래 따위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남편과 어떤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녀의 결혼 전 성 노동자로서의 삶이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안정된 삶은 아니었을 테니, 갑자기 도래한 결혼이라는 공식적 삶에 대한 문화적 규범을 습득할 틈도 없었다.
카지노 쿠폰는 아내로서의 언어도 몸도 아직 가질 수 없다. 그 부재를 채울 건 섹스밖에 없다. 결혼을 하고도 이들의 관계가 거의 섹스로 점철되는 것은 이반뿐 아니라 카지노 쿠폰도 결혼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메시지와 별도로, 영화에 너무 많은 섹스 신이 나와 카지노 쿠폰를 연기한 배우 마이키가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반이 “사고를 쳤다”는 소문이 돌며 카지노 쿠폰의 결혼은 예정된 파탄으로 접어든다. 러시아 마피아의 미국 본부쯤 되는 하수인들은 이반의 결혼을 무효화하라는 보스의 명을 받고 즉각 조치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창녀’ ‘매춘부’라는 멸칭은 이것이 카지노 쿠폰의 현실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합법적 결혼조차도 성매매 여성의 결혼은 꽃뱀의 조작극이 되고 함부로 짓밟고 침탈해도 되는 법외 영역이 된다. 법이 보장한 공적 영역인 결혼은 정상적인 삶을 사는 여자들만을 보호한다는 듯이 말이다.
성매매 여성 혐오의 화룡점정은 전용기를 타고 나타난 러시아 마피아인 이반 부모가 찍는다. 아노라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입을 함구시키면서, 순진한 아들 이반이 사특한 꽃뱀에 의해 사기를 당했다고 우긴다. 대놓고 가하는 무시와 차별과 혐오는 성매매 여성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인 것이다. 마약이나 유통하며 벌어들인 자신들의 부가 무슨 대단한 신분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다. 사회주의 마피아도 웃기지만 그 수준이 처참하게 천박하다.
마침내 결혼을 무효화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카지노 쿠폰에게, ‘이반에게 사과는 받아야지 않냐’고 착하게 항의하는 이고르. 그제야 ‘대체 저 남자는 이 영화에 왜 있는 거지’했던 그의 쓰임새가 드러난다. 카지노 쿠폰가 걸친 스카프조차 그악스럽게 빼앗는 부자 엄마와 철딱서니 없는 장난질로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금수저의 대척점에, 인간적 사회적 선의 마지막 보루를 놓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 당신과 나는 이고르인가, 아니면 최소한 이고르가 될 여지가 있는가, 자문해야 할 터다.
“성 노동 산업에 오직 낙인만 있을 뿐, 이들의 삶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 남아 있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낙인에 관하여 인간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빌려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이들과 더 연결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칸 영화제 사전 인터뷰에서 베이커 감독이 밝힌 영화를 만든 의도다. 이는 관람자에게 얼마나 곡진하게 전달되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어떻게 보는가는 사실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다. 감독의 손을 떠나 스크린에 걸린 영화는 이미 관객의 영역으로 넘어가기에, 보는 이 제각각 자신의 삶과 역사와 계급과 문화와 취향 등에 의해 판단하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명백히 법조인의 비리를 폭로하는 영화를 보고, “이래서 검사가 돼야 하는 거야”라며 내 머리를 가격했던 어떤 기함할 감상처럼, 영화를 만든 이의 의도가 적중되기는 매우 어렵다.
<카지노 쿠폰가 칸의 황금종려상까지 받으며 선전해서인지 영화에 대한 평이 매우 우호적이었다. 문득 이 영화를 내가 사는 파주 시민들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다 그만 한숨을 쉬었다. 지역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폐쇄 정책이 성매매 종사자들의 애타는 호소를 깡그리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되어도, 이를 나무라는 어떤 시민이 없다는 것에 무력하고 슬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처럼, ‘아노라들’이 어떤 취급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든, 내쫓기든 말든, 불법추심업체가 성매매 사실을 SNS에 폭로해 한 성 노동자를 자살로 내몰든 말든, 사람들은 관심 없다. 그들의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을 아무리 호소해도, “음란해서 그런다”, “쉽게 돈 벌려 한다”, “사치하려고 성매매한다”, “차라리 쿠팡 뛰어라” 등 지면에 옮기기조차 서러운 인격 말살 의도를 가진 처참한 반응이 돌아온다.
이토록 참혹하게 성매매 여성을 혐오하는 세상에, <아노라의 ‘성 노동자 인싸 영화’(한 성 노동자의 감상)적 현실 반영으로 감독이 바라는 공감과 연대가 가능할지 낙관하지 못하겠다. 눈 밝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의 기계적 공감과 연대가 부유한다고 우리가 괜찮은 세상에 산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혐오와 차별이 덜한 세상은 사회 약자적 타자의 존재에 대한 관심과 인정, 그리고 그들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만드는 것이지, 그럴싸하게 온라인에 떠도는 논평과 지적인 상찬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나의 우려와 별개로, 결혼으로 업소를 그만둔다는 아노라를 만류하는 업주에게 사회보장 보험이나 제대로 해주면서 사람을 잡으라고 일갈하는 성 노동자의 재현은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초미의 관심사는 성 노동자 당사자들의 반응이다. 탄핵 시국에 부산 서면 성 노동자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용감히 발언했듯, 성 노동자들의 당당한 발언이 줄기차게 나오길 기대한다. 이런 사회여야 ‘아노라들’에 공감하고 연대할 준비를 시동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