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전의 카지노 게임 (베티나 슈탕네트, 2025, 글항아리)
‘12.3’ 사태를 겪는 동안, 무도한 계엄령 실행 집단에 대해 ‘악의 평범성’을 논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나 아렌트의 이 테제는 납득 불가하고 규명하기 힘든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교조적 관료성을 비판할 때 불려 나오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는 게 더 맞겠다. 그날 밤, 거악의 무능한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주변의 참모들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자발적이고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국가 폭력의 선봉에 섰는지 국민 모두가 목격했기 때문이다.
거악의 폭력은 거대한 반동을 낳았다. 이 또한 지금껏 볼 수 없는 극치의 조작과 선동을 통해 발아되고 육성되고 동원되었다. 어디에도 평범한 악은 없는 듯 보였다.
한나 아렌트가 몰랐던 카지노 게임
우리가 아돌프 카지노 게임을 생각하는 방식은 한나 아렌트에 의존한다. 그녀가 예루살렘 재판을 방청하고 3564페이지의 심문 기록을 샅샅이 뒤진 후 찾아낸 카지노 게임의 죄는 허무하게도 ‘사유 없음’이었다. 톱니바퀴같은 관료제의 체계가 ‘사유 없음’을 만들었고, 이 시스템 하에서 그는 기계적 관료로서 명령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결론이었다. 당시 학살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이 따랐음에도 이는 오랜 시간 유대인 절멸의 테제로 자리 잡았다.
유감스럽게도 아렌트의 결론에는 중대한 것이 빠져 있다. 그녀는 ‘예루살렘 이전의 카지노 게임’을 알지 못했다. 통제된 심문 기록만으로는 예루살렘 이전의 카지노 게임을 알 길이 없었고, 이 정보의 공백은 교활하고 지능적인 ‘유대인 학살 최종 해결사’를 ‘악의 평범함’에 머물게 했다.
이는 문제적이다. ‘비범’한 카지노 게임을 ‘평범’함에 묻어둔다면, 악은 지속적으로 사유하지 못한 무능한 엘리트라는 이미지로 달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네오 나치가 준동하는 독일에 특히 더 불길한 징후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부활하고 있는 나치즘에 “지속적인 불안”을 느낀 독일 학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예루살렘 이전의 카지노 게임’을 샅샅이 찾아내 아렌트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했다. 이것이 그가 <예루살렘 이전의 카지노 게임(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을 집필한 이유다. 지식인의 책임감은 무거웠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포착할 단서는 그가 도주했던 아르헨티나에서 작성된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이른바 ‘아이히만의 회고록’으로 불리는 ‘사선 인터뷰’가 그것인데, 여기서 학살 기술자 아이히만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난다. 그는 ‘사유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사유 깊은 엘리트 관료였다. 쉽게 말해 그는 유대인 절멸을 실행한 나치 기계의 톱니 하나가 아니라 톱니를 작동시킨 주체적 확신범이었다.
‘사선 인터뷰’를 이끈 빌럼 사선은 나치 친위대 종군 기자였다. 독일 패전 후 나치 확신범들은 아르헨티나로 모여들었는데, “아르헨티나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나치들이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빌럼 사선은 아르헨티나 극우 저널 <길에 활발히 기고하며, “나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나치즘의 부활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1953년 <길은 서독에 1만6천 명, 남미 2천5백 명의 정기구독자를 가지고 있었다.
잡지 <길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치 거점으로 기능하며 도피한 나치들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하는 것을 물심양면 도왔고, 황당하게도 ‘새로운 독일의 건설’을 꿈꾸는 동지회를 구성하게 했다. 카지노 게임이 ‘사선 인터뷰’에서 나치 확신범으로의 진면목을 숨길 이유가 없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멀다. 그런데 어떻게 카지노 게임을 비롯한 나치 확신범들이 남미로 모여든 걸까. 당시 “아르헨티나는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독일인 전문가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독일인들의 도주를 돕는 것은 의미 있는 투자로 여겨졌다.”
이뿐 아니라 독일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이에는 잘 작동되는 연결망이 있었고, 조직적 규모의 조력자들(스웨덴 항구로 가는 도주로, 오스트리아 국경 경비원, 이탈리아 광공서, 적십자, 바티칸, 영향력 있는 해운업자 등)이 나치들의 도주를 성사시켰다. 또한 전후 아데나워 총리가 이끈 독일 정부가 나치 전범의 체포와 처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짚어볼 만하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카지노 게임을 목격했을 당시는 ‘사선 인터뷰’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때였기에 주체적 나치 확신범 카지노 게임을 짚어낼 수 없었다. 카지노 게임이 교활하게 생성해내는 막대한 신문 기록은 그 자신과 나치의 범죄를 축소 은폐하도록 치밀히 고안되었고, 당시 카지노 게임 재판은 그의 죄의 규명보다 숨은 전범을 찾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1979년 이후 ‘사선 인터뷰’인 아르헨티나 문서가 열람 가능해지자, 이를 바탕으로 당시 “아렌트를 비롯한 재판 참관인들이 갖기 어려웠던 시각을 제공했다.”
‘사선 인터뷰’의 카지노 게임은 매우 당당한 나치 학살 기술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나치와 카지노 게임을 지지하는 남아메리카 약속의 땅에서 그는 “자유롭고 떳떳하게 친위대 중령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을 절멸을 위해 카지노 게임 특공대를 운영하며 얼마나 열렬히 활동했는지 자랑스럽게 소신을 밝혔다.
“...개인은 명령이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신념을 가지고 명령을 따라야 한다... 최종 해결 업무는 전체적으로 직업적 살인이었다... 제국의 유일한 좋은 적은 죽은 적이다. 나는 명령을 받으면 항상 사형집행자와 함께 그것을 수행했고 지금까지도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유대인 절멸은) 전후후무한 업적이었다... (덴마크에서) 유대인 수송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게 그것은 정말 죽도록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는 그가 예루살렘 재판에서 “나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고 한 말이 얼마나 기획된 거짓말이었는지, “나 역시 일개 희생자입니다”라는 최종 진술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방대한 분량의 나치 전범 기록을 끝까지 읽은 까닭은 평소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을 나도 무심히 수용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자각 때문이었다. 게다 시국은 반헌법적 계엄 이후 파시스트의 준동이 횡행하며 불안과 긴장을 증폭시켰다. 가짜 뉴스와 역사와 정보를 조작해 선동의 일렬에 선 주체가 무능한데 교활하기만 한 관료, 호가호위하는 몰염치한 국회의원,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타락한 ‘똥별’들인 엘리트 계급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강하게 환기시켰다.
카지노 게임은 기계적 톱니로서가 아니라 극우 민족주의라는 일관된 사고체계로 무장하고 600만 유대인 학살에 기여했다. 저자는 대량학살의 거악은 “개별적인 사디즘의 개별 사례들의 총합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정치적 사유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현 시국과 한반도 학살 역사에도 큰 시사점을 던진다.
명령을 받았다고 그토록 처참하고 계획적이고 일관되게 대량의 민간인을 학살할 수는 없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집단범죄이론은 모두가 공범이고 유죄이므로 결국 모두가 유죄가 아니라는 기만적 결론으로 달아날 구실을 제공해왔다. 이는 악의 노련한 회피 술책이다.
‘12.3’의 밤,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또 얼마나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을까. 한반도의 지나간 학살의 역사는 증명한다.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위기의 한국 사회가 각성하고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