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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Apr 21. 2025

한국 현대 경제사가 소외시킨 ‘카지노 쿠폰'에 대하여

<카지노 쿠폰의 탄생 (김미선, 2025, 마음산책) 서평 에세이

내가 사는 동네의 한 상가를 둘러보면 이렇다. 분식집, 미용실, 네일숍, 애견숍, 수선집, 문구점, 치킨집, 세탁소, 편의점이 있다. 이 중 치킨집, 세탁소, 편의점을 빼면 모두 여성 상인이 ‘사장님’이다. 동네의 다른 상가도 비슷한 양상인데,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요즘은 인터넷 쇼핑이 대세고 거래자 간 직거래가 유행이지만 상행위 전반은 점포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60-70년대만 해도 보따리를 이고 지고 가가호호 방문해 상품을 판매하는 여성 상인들이 많았다. 어릴 적 내 기억에 선명한 방문 판매 여성 상인은 ‘신앙촌 아줌마’라 불리던 옷 장사 아주머니와 ‘쥬단학 아줌마’라 불리던 화장품 판매 아주머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했는데(아마도 외상 수금일에 오셨던 것 같다) 이분들이 오시면 가내 쇼핑으로 한바탕 신바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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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아줌마’의 큰 보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옷들은 다양했다. 속옷부터 각종 옷들이 가득했는데, 새 옷을 실컷 구경하고 드물게는 입어보기도 하며 소란을 떨었다.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태산만 한 옷 보따리를 어떻게 이고 다녔을까 싶다.

아주머니는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열심히 키웠는데 당시 좋은 대학을 갔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분은 꼭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당시는 매식이 쉽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점심값을 절약할 수 있어 그랬을 것 같다. 종종 우리 집 점심 먹을 때 오시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따뜻한 집밥을 드려도 꼭 본인 도시락을 꺼내 드시곤 했다. 근검하고 성실했던 여성 가장이자 ‘여사장’의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점포만 없다 뿐이지 어엿한 자영업자 ‘여사장’이었을 텐데, ‘보따리장수’로 불렸다.


그 많던 ‘카지노 쿠폰들의 비가시화된 서사


김미선의 <여사장의 탄생을 보다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던 여성 상인들이 생각났다. 위에서 말한 방문 판매 ‘여사장’들은 물론이고, 초중고를 다닐 때 학교 가까운 문방구 등에서 마주쳤던 상인들도 거의 여자분들이었다. 지금은 학교 근처에 문방구가 사라졌지만, 내 어릴 때만 해도 학교 앞에는 경쟁적으로 문방구가 몇 개씩 있었다.


이뿐인가. 엄마와 시장에 갈라치면 시장의 상인은 정말 대개가 다 여성 상인이었다. 야채, 고기, 생선, 건어물, 젓갈 하다못해 순댓국집까지 여성 상인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 상인들이 가족의 생계와 부의 증식을 위해 더 나아가 나라 살림 증대까지 일구느라 살림과 장사를 병행하며 고생했을까. 저자의 주장처럼, “자영업은 여성의 경제적 행위이자 활동이며 실천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영업 여성들의 노동의 가치와 가정과 나라 경제에 미친 기여에 지나치게 박한 평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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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학자 이종현은 자영업이 “한국 경제의 성장사 전반에서 실패의 비용을 흡수한 거대한 저수지의 역할”과 “잉여 노동력을 흡수해 실업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으며 “국가 주도의 시기에 제도권 밖에 방치된 시장에서 이들은 국가 경제의 모세혈관 기능”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여성 자영업자는 1950년대 전후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여성들이 뛰어들었기에, 저자는 ‘한국전쟁이 낳은 여사장’이라 정의했다. 이 말은 이들이 원해서 장사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생계가 막막한 이들을 흡수할 노동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방 딸린 점포에서 자녀 양육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진입했다는 의미이다.


여성에게 일자리가 없었고 가사와 일을 분리할 수 없었던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야기한 결과이지만, 이렇게라도 살길을 찾는 ‘여사장’들에게 사회는 ‘여성답지 않다’며 배제와 차별로 대했다. 여성 혐오적 차별 속에서도, 1980년대 급속한 산업화로 여성들이 임금노동자로 대거 포섭되기 전까지, 여성의 자영업이 임금노동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생계와 경제적 자립을 꿈꾼 ‘여사장’을 부정적이고 문제적으로 바라본 가부장적 시선은 50-60년대 신문이나 영화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콘텐츠에 나타난 ‘여사장’의 이미지는 돈만 밝히는 탐욕스런 문제적 여성으로 재현되었고, 물질적 탐욕을 성적인 욕구와 기이하게 연결해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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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경제적 능력을 가진 여성을 남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긴 가부장이 주조한 이미지로 ‘여사장’들을 사적 공적으로 옭아맨 이데올로기였다. 장사로 돈을 벌더라도 ‘여사장’은 현모양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성별화된 주체로 담론화한 것이다. 꽤 성공한 한 ‘여사장’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는 회한은, 당시 ‘여사장’들이 겪은 불평등한 젠더 규범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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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를 지나 어언 70년이 지난 지금 ‘여사장’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이는 내가 사는 동네의 상가 ‘여사장’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영세한 1인 사업자로 살아가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다. 이 ‘여사장’들 한가운데 “사장이 ‘되고픈’ 요즘 청년 여성”이 있다.

나는 책방 투어를 좋아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눈에 띄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방문했던 많은 책방은 대부분 여성이 꾸리고 있었고 또한 절반 이상이 젊은 청년 여성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책과 여성은 매우 밀접히 연관된다. 책을 읽는 주체 대부분이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들이고,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주체도 대부분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이다. 책이나 MZ 문화에 일가견이 있는 여성들이 책방 등을 운영하는 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책방에 가보면 젊은 청년 여성들은 각각 개성 있는 감각으로 책방을 꾸미고 운영하고 있다. SNS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며(디지털 이민자에겐 어려운 점이다) 이 공간을 통해 나름의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일’은 고전적 개념의 ‘노동’과 조금 다른 결일 수 있다. 사업자라는 정체성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결합시켜, 조직의 부속으로 몸을 빡세게 굴리고 남는 게 부서진 몸밖에 없는 ‘노동’과는 다른 차원의 ‘일’로 의미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을 사는 소비자가 적은데다, 책값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소수이긴 하지만 SNS를 통해 성장한 “사장이 ‘되고픈’” 청년 여성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도 있다. 많은 청년 여성들의 ‘워너비’겠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MZ인 딸애를 통해 살펴본 바로는 SNS를 통해 창업을 했다 실패한 친구도 있고, 장사를 하고 싶어 자본금 마련을 위해 묵묵히 인내하며 일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소품 숍, 미용 관련 숍이나 카페를 창업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작은 카페 ‘여사장’이 젊은 여성인 경우도 많이 눈에 띈다.

저자는 젊은 여성의 “사장이 되고픈” 욕구를 구조적으로 해석한다.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일상, 미래, 가족 등이 자본, 권력, 국가와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되거나 통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강하며” 페미니즘, 환경, 생태, 돌봄 등 대안적 삶의 방식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젊은 여성들이 대안적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실행하게 된 데는 양극화와 젠더불평등이 만든 노동시장 내 차별이 선행했을 것이다.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노동판에서 착취당하듯 일하며 영육을 방전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취미와 취향 나아가 삶의 방식을 일에 반영”하고자 하는 반동의 반영일 것이다.


젊은 여성들의 고민과 대안 추구는 이해된다. 그럼에도 노동 시장의 소외를 ‘여사장’이라는 자발 선택적 이탈로 극복할 수 있을지, 이 선택들이 대안 경제의 우뚝한 주체들로 거듭나게 할지, 그리고 이러한 대안 경제가 위기의 한국 경제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여튼 비가시화된 앞선 여성 세대의 몰평가된 ‘여사장’의 위상을 청년 여성이 진일보한 경제 주체로 탈각시키려는 도전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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