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결혼
아드님이 나서면 나는 그냥 미운 년에서 아주 죽일 년이 되는 거야
요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푹 빠져있다.(이후 폭싹) 이 드라마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관식이 애순에게 보여주는 순애보적 사랑때문이다. 관식은 그 시대의 남자들과는 다르게 아내가 먼저다. 장손 제일 할머니, 고생한 엄마가 먼저가 아니라 나와 결혼한 아내가 먼저인 남자. 그 시대에 어떻게 저런 남편이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지금 소파에 누워 배를 긁적이고 있는 저 80년대생 남편을 보니 50년대생 관식을 가진 애순이 부럽기 그지없다.
"엄마, 애순이 나랑 살러 왔지 이 집 며느리 살러온 애 아니야. 다시는 애순이 볼 생각 마요. 이 집 며느리 내가 안 시켜"
폭싹에서 제사를 지내다 시어른들에게 구박당하고 있는 애순을 보고 관식이 애순의 손을 잡고 집을 뛰쳐나오며 내지르는 소리다. 헉.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 앞에서 아내를 편드는 남편이라니. 뉘 집 남편이냐. 박보검이 아니라 확씨 아저씨가 관식역을 했어도 난 관식을 사랑했을 것이다. 반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저 놈의 남편을 보자니 시댁에서의 나의 첫제사가 울컥하고 떠오른다.
"너 위해준다고 내가 주방에 들어가면, 엄마가 더 싫어하실 수 있어. 내가 너 위해서 눈치껏 행동하는 거야"
말인가 똥인가.확 씨. 며느리가 처음인 초보며느리는 얼굴조차 모르는 조상님을 위해 기름 다 뒤집어써가며 일하는데 남편이란 놈은태연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의 행동이 하도 기가 막혀 "오빠, 와서 설거지 좀 해"라고 하는 나에게 남편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이 저것이다. 아드님이 나서면 내가 미운 년에서 죽일 년이 될까 봐 깊은 숙고 끝에 나를 배려하시는 중이란 말인데. 80년대생 신여성(?)인 나는 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간인데 왜 여자만 동동거리며 음식을 해야 하는 것이지? 남자는 왜 유치원생도 코웃음 칠 '콩나물 다듬기'만 시전해도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기세가 등등한 거야? 그럼 온갖 전과 튀김을 다 부쳐낸 며느리는 시금치를 무칠 줄 모른다는 이유로 어쩔 줄 몰라하며 죄인처럼 죄송하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종 나물들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 모르는 난감 며느리에게 경상도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물어보셨다.
"집에서 나물은 무쳐 봤나?"
나물이 대명사인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나물 무치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친정 엄마는 딸을 천둥벌거숭이로 키운 무심한 엄마가 되었고 회사에서 올해의 우수 사원상을 받은 딸은 맹꽁이 며느리가 되었다. 나물이 이렇게 무서운 음식이었다니. 그럼 댁의 아드님은 나물 무쳐본 적 있을까요? 무치는 법 가르쳐주셨어요? 요망지게 되묻고 싶었지만 나는 며느리이니까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폭싹에서 애순의 딸 금명의 상견례하는 장면이 있다. 누룽지를 잘 못 푸는 금명을 보며 예비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엄마가 다 해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며 핀잔을 놓는다. 예비 시모에게 딸이 구박당하는 모습에 속이 상한 애순은 그 자리에서 "제가 못 가르쳤습니다. 너무 귀해서 너무 아까워서 제가 안 가르쳤습니다."라고 한다. 작가님이 우리 엄마를 인터뷰하고 가셨나. 딸에게 설거지도 시키지 않던 나의 엄마는 내가 할게 병 딸에게 시집가면 평생 할 텐데 벌써부터 시키기 싫다며 나를 아껴 키우셨다.(그렇다고 애지중지 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였으니 금지옥엽일까 걱정은 하지 마시길) 나의 세대부터였던 것 같다. 신여성 어머니들이 등장했고 자신의 딸은 자신처럼 키우지 않겠다며 아들 못지않게 딸을 키워냈던 것은.
헌데 신여성인 나의 엄마도 애순처럼 상견례에서는 그리 구여성일 줄이야. 상견례 내내 "예예 사돈 말씀이 다 맞으시죠. 제가 많이 못 가르쳐서 애가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부족한 딸 잘 부탁드립니다."였다. 그에 반해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우리 아들은 크는 내내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었어요. 착하고 성실하고 어디 가도 이 만 한 애 없습니다."였다. 서로가 반대말만 하는 모습이 우스워 참고 있기가 어려웠다. 상견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 밤 난 지금의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런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내가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좋은 회사에 다니는데 왜 우리 엄마가 자꾸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께 잘 부탁한다고 쩔쩔 매야 하는 것이냐,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가진 거라곤 성실함 밖에 없는 아들을 두고 어찌 그리 유세를 하는 것이냐. 지금에야 못난 생각인 줄 알지만 그때는 속상한 마음에 가시 돋친 말로 남편에게 상처를 주었다.
첫제사 이후로 10년이 넘게 우리는 제삿날과 명절만 되면 부부싸움을 해댔다. 제삿날은 하루니 차라리 낫다. 명절은 최소 1박 2일. 차리고 치우고 차리고 치우고. 음식은 음식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정리는 정리까지. 내가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시집을 왔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마다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내 남편은 관식이 아니라서 제사 음식을 해주지도 내 손을 잡고 뛰쳐나가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10년의 전쟁 끝에 내가 얻어낸 것은 그래도 주방을 얼쩡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는 것, 내가 부친 전을 저 입에 먼저 넣지 않고 내 입에 넣어준다는 것, 시댁을 나서는 차에 타자마자 고생했다는 말을 제일 먼저 내뱉는 것. 그 정도 인간으로는 만들었다는 것이다.
폭싹에서 금명은 첩첩산중 시월드에서 아빠가 엄마를 지켜내는 모습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빠는 아빠의 전쟁을 해냈다. 엄마를 절대 혼자 두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싶다.
"남편은 남편만의 전쟁을 해냈다. 엄마도 혼자 두지 않고 아내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도록"
여기 눈치 봤다 저기 눈치 봤다 박쥐가 따로 없었다. 헌데 10년 넘게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겪다 보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오해했다면?'
'남편이 오버한 거라면?'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대장부다. 시장 바닥에서 드세기로 유명한 시할머니를 40년 넘게 모시며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다 하셨다. 시아버지는 한량이셨다. 책이나 읽을 줄 알지 경제력 한 푼 없는 남편에 서슬 퍼런 시부모, 어린 시동생들까지.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시집온 이후로 거친 시장 바닥에서 하루도 쉬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가 아들은 못내 애달팠을 것이고 장가갔다고 냉큼 아내 편을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 딴에는 엄마도 섭섭하지 않고 아내도 기분 나쁘지 않게 "내가 너 위해서 눈치껏 행동하는 거야" 란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 말이 화근이 되어 며느리는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아들바라기로 보았다. 아들만 둘인 무뚝뚝 경상도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하듯 툭툭 던지시는 말씀이셨는데 나는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말에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가장 문제는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남편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독립하면 엄마가 외로울까 봐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그래서 아내를 불안하게 한.
시간이 가장 큰 선물이다.
명언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 어머니도 알겠고 남편도 알겠고 나도 알겠다.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문제보단 남편의 죄를 깨닫고 나니 이젠 뭐 어머니가 툭툭 던지셔도 내가 탁탁 받아친다. 상처는 받는 사람이 받을 의지가 없으면 새겨지지 않는다.
며칠 전 나의 생일에 무뚝뚝한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전화를 주셨다. 흔한 생일 축하한다라는 말씀도 없다. 다짜고짜.
"뭐 필요하니?"
"어머니~필요한 것 없어요"
"와 필요한 게 없노. 그게 정상이가"
"그러게요.ㅋㅋㅋ. 아, 있어요. 있어. 말 잘 듣는 남편이요."
"니 한 번의 선택이 중요한 거 알제? 이번생에는 날아갔다. 니도 참, 세상에 그런기어딨노"
이제 마 고마 하고 싶다. 40년 넘게 했으면 이제 고마 해도 안 되겠나
어김없이 돌아온 음력 1월 1일. 역시나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내가 노동을 갈아 넣으며 차례상 준비를 하는데 무쇠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어깨를 떨어트리시더니 명절 제사는 이제 그만 지내고 싶으시단다. 이런 행사가 있을때마다 내가 식모로 왔구나 하는 생각에 내가나를 참 많이 괴롭혔다. 다른 집은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커피숍에 가서 우아하게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어 올리던데 우리 집은 끝도 없는 음식과 손님들. 시집와서 10여 년 동안 연휴에 여행이라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헌데 명절 제사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는 십여 년이지만 어머니는 사십여 년이었다. 시아버지가 떠나시고 지난겨울 감기를 독하게 앓으신 이후로는 다 싫으시단다. 힘드시단다. 무섭기만 했던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깨가 저렇게나 작았나.
그렇게 하기 싫다고 툴툴댔었는데 괜히 섭섭해지는 건 왜인지. 조상님들이 노하실까를 왜 걱정하는지. 아이들 건강하게 큰 것, 양가 어른들 크게 아프시지 않은 것, 먹고 살만큼은 궁핍하지 않은 것이 왜 갑자기 제사를 잘 지낸 탓으로 돌려지는 것인지.(저는 철저히 무교입니다.) 80년대생 며느리는 이 불합리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상을 차릴 때마다 입이 툭 튀어나왔었는데 막상 합리적이 되려고 하니 멈칫 해진다. 시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런 마음이셨나.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마음.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제사 그냥 지내면 안 돼요?
왜 불쑥 내가 그런 말을 꺼냈을까. 그렇게도 지내기 싫어했는데. 아마도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약해지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제사가 어머니의 기력인 것처럼. 놓으면 어머니가 바람처럼 흩어지실까 봐.
"어머니, 그래도 애들 안 아프게 큰 거, 어른들 다 건강하신 거, 저희가 밥벌이는 하고 사는 거. 저는 잘 모르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조상님들 잘 모셔주셔서 살펴주시는 것 아닐까요. 저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하시는 일 거드는 것 밖에 없지만 저희 조금만 더 지내면 안 될까요? 제가 더 많이 할게요. 제 며느리한테는 안 시킬 거예요. 그러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랑 저랑 조금 더하면 안 돼요?"
결혼이란 무엇인지. 믿음직스럽기 그지 없던 그 오빠는 눈치 코치 없는 박쥐가 되었고 무섭기 그지 없던 그 아줌마는 같은 여자가 되었다. 다시 돌아가 결혼을 하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철없던 풋사과는 가족의 일이라면 무서운 그 아줌마가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