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부부가 서로 절대 놓지 못하는 음식
나는 어릴 적에 그런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머리가 쌍가마네~ 나중에 결혼 두 번 하겠어!"
물론, 지금은 쌍가마를 떠나서 있는 머리도 잘 지켜야 하는 흔한 중년의 탈모 걱정인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가마 두 곳에서 솟아오르는 풍성한 머리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결혼을 두 번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실없는 상상도 자주 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나는 결혼을 두 번 했다. 정확히는 한 여자와 결혼식을 두 번 했는데, 나의 아내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우리는 2018년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이듬해 2019년 한국에서 두 번 결혼식을 했다. 한국 혼인신고는 식전에 했으니 벌써 결혼한 지 7년. 이제는 신혼부부 자격도 나가떨어진 상태다.
국제결혼을 한 이후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물론 아내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다. 나는 우리의 연애 이야기가 꽤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들에겐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한 편의 서사를 듣고 나면 다들 눈을 반짝이곤했다.
그다음으로 많이 듣는 질문은 음식은 어떻게 해결하냐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은여전히 우크라이나를 소련으로 알고 있고 우크라이나 요리라는 게 생소한 것도 사실이니까.
다행히 이제는 한국에도 고려인 및 러시아인이 많이 유입된 덕에 안산 같은 도시에선 러시아어로 쓰인 간판을 단 현지 음식점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고, 보르시나샤슬릭, 블리니같은 유명 현지 음식들은 소소하게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아내도 가끔 고향 음식이 생각날 때면 집에서 자기가 요리해 먹기도 하지만, 이제 현지 음식점이 많이 생겨서 때때로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샤슬릭이랄지, 양고기 요리 같은 걸 먹고 싶을 때는 주저 없이 현지 식당으로 외식을 나가곤 했다.
물론, 아내는 웬만한 요리를 모두 집에서 만들 수 있었고, 식당 밥보다 집밥이 더 건강에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아내의 소울푸드인 '사워크림' 때문이다.
사워크림은 일반적으로 크림에 유산균을 통해 발효시킨 크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신맛이 나는 크림이라 하여 'Sour Creme'으로 불린다. 주로 보르시나, 뻴메니 또는 바레니끼 등에 얹어 먹는데 사실 나로서는 그 신맛이 익숙해지지 않아 즐겨 먹지는 않는다. 요거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독특한 그 무언가가 있는 맛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느새부턴가 홈메이드 사워크림 만드는 법 등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아내는 그런 레시피들을 보고 단언적으로 '가짜' 라며 일축했다. 우리로서는 기무치를 보며 이게 한국의 김치 같은 거야~라고 말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기분인 걸까.
나도 어릴 때는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차가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양식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내 위장은 어느 시기마다 적절한 매운맛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김치찌개나 김장김치를 찢어 먹는 간단한 밥 한 끼가 큰 힘이 되곤 했다.
국제결혼을 한 다문화가정의 큰 장점은 양국의 식문화를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은 우리도 양쪽 음식을 따로 차리지 않지만, 때때로 서로가 힘든 날이 겹쳐 각자의 소울푸드를 원하게 되면 우리 식탁엔 김치와 사워크림이 동시에 올라오는 날이 생기곤 한다.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 이날만큼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음식으로 삶을 이겨내게 한달까.
아마 곧, 아내는 또 사워크림이 먹고 싶다고 할지도 모른다. 용인으로 이사한 이후 한 가지 단점은 질 좋은 사워크림을 파는 식당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뭐, 여차하면 다시 안산으로 차를 내달려야 하겠지. 소울푸드란, 우리 모두가 힘들 때 삶을 다시 살게 하는 원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