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커피 Jan 02. 2025

초단편소설 2.

선글라스

여름은 카지노 게임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카지노 게임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제일 비싼 선글라스의 본전을 뽑을 수 있는 계절이니까. 카지노 게임은 물욕이 없는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선글라스만큼은 욕심이 났다. 몸이 지닐 수 있는 물건 중에서도 높은 곳에 자리하면서 눈에 바로 띄는 것이 선글라스라고 카지노 게임은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


또 같은 꿈을 꾸다가 또 그 목소리에 깼다. 4년 전 천명이 했던 말이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함께 자란 세 살 터울의 언니. 긍정보다 부정에 가까운 나에게 세상살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선입견은 무서운 거라고 누누이 말하던 언니.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니 쥐뿔도 없는 우리 주제에 웃긴 소리 아닌가. 어쩌면 그때부터 선글라스 욕심은 예정되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언니의 죽음보다 얼마 되지 않는 보험금을 더 슬퍼하던 부모라는 인간들이 괘씸했던 카지노 게임은 얼마 되지 않는 보험금을 몽땅 훔쳐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백화점으로 향했다. 명품관이 모여있는 1층 코너에 진열된 선글라스가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을 보고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숨을 못 쉬다가 죽을 뻔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냥 죽는 게 나았을까. 백화점 명품관에서 죽은 귀신은 때깔도 명품이었을 텐데. 하지만 죽지 못해 명품을 샀다. 언니의 죽음값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던 언니는 이제 없고 카지노 게임에게는 진짜 색안경이 생겼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추운 계절을 나는 동안 브랜드 로고가 박힌 선글라스 케이스를 고시원 책상 서랍 안 쪽에 고이 모셔두었다. 혹여 발이라도 달려서 도망이라도 갈까 봐, 아니 사실은 지하철 역에서 20분이나 걸리는 허름한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못 믿어서 자물쇠를 채웠다. 자신도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탐탁지 않은 기분에 '이것도 언니가 말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그런 건가.' 생각하며 다음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겨울과 봄을 지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산책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드는 하루를 반복하며 보냈더니 여름은 금세 찾아왔다. 드디어 개시다.


몰래 금고라도 여는 것처럼 조심스레 자물쇠를 풀고 선글라스 케이스를 열었다. 검은색의 선글라스일 뿐인데도 반짝반짝 황금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카지노 게임은 자신의 명품 색안경을 장착하고 고시원을 나섰다. 고시원에서 편의점까지 거리는 꽤 돼서 선글라스를 뽐내며 걷기 적당한시간이었지만 명품 선글라스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를 바 없었다. 똑같은 길을 걸어 또 같은 편의점에 다다랐다.


카지노 게임이 일하는 시간대의 편의점은 보통 한가한 편이었다. 물건 정리와 매대 청소 등 할 일이 끝나면 포스기 앞에 앉아서 멍 때리기 일쑤였다. 멍하니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계산을 하고 반복. 반복. 반복. 그러다 갑자기 선글라스가 떠올랐다. 카지노 게임은 선글라스를 꺼내어 다시 장착했다. 그와 동시에 딸랑하고 입구에 걸려있는 종이 울렸다. 손님의 등장에 도둑질이라도 한 듯 놀라서 벌떡 일어섰는데 그 순간 렌즈를 통해 보이는 손님의 목에 1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오래된 컴퓨터 화면에서 깨져 보이는 픽셀처럼 희미했지만 숫자 1이었다. 매일 시간이면 오는 단골손님이었다. 매가리없는 표정과 구부정한 자세로 들어와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가는 사람. 어제 왔을 때만 해도 목에 그런 타투는 없었다.


오늘 남자가 고른 것은 전주비빔 삼각김밥이었다. 계산대로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얼른 선글라스를 벗었는데 숫자가 보이질 않는 거다.


'이상하다. 분명 숫자가 있었는데.'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 남자를 카지노 게임도 모르게 불렀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저기요."


힘없이 뒤돌아보는 남자의 목에 다시 숫자 1이 보였다.


"아... 안녕히 가세요."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만 꾸뻑 숙이며 인사를 하고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카지노 게임은 '진짜 이상하네.' 속으로 생각했다. 뒤이어 손님이 오고 또 손님이 오고. 카지노 게임이 일하기 시작한 뒤로 그렇게 바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이어 손님을 받다가 남자와 숫자 1을 잊어버렸다.


다음날도 카지노 게임은 전날과 같이 선글라스를 뽐내며 출근하는 길이었다. 편의점에 도착할 무렵, 편의점 맞은편 집 앞에 서있는 경찰차와 구급차를 보았다.


'무슨 일이지? 누가 다치기라도 했나?'


들것에 실려 나오는 누군가를 볼 수가 없었다. 하얀 천이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의 머리끝까지 완전히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왕좌왕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과 서서히 다가서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경찰들 사이에서 카지노 게임의 귀가 열렸다. 지하방에 혼자 살던 남자가 목을 매 죽어있었다는 소리. 밀린 월세를 받으러 찾아갔다가 유리창을 통해 서있는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는데도 대꾸가 없어 화가 난 집주인이 가지고 있던 비상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목을 맨 남자가 축 늘어져있었다는 소리. 그 남자의 혓바닥도 축 늘어져 나와있었고 발아래로는 밥풀 하나 김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먹은 삼각김밥 포장비닐이 깨끗하게 접힌 채로 놓여있었다는 소리. 교대 시간이 다가온 카지노 게임은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얼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부랴부랴 편의점 유니폼 조끼를 껴입고 나와 돈통의 돈을 세어보고 있을 때 교대하는 근무자가 카지노 게임에게 말했다. 앞집 남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에 들른 곳이 편의점이라 사장님을 불러 CCTV를 확인했다는 소리. 카지노 게임이 일하던 시간에 왔었던 사람인데 전주비빔 삼각김밥을 하나 사서 나갔다는 소리. CCTV로 봤을 때 달리 이상할 건 없어서 확인하고 금방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아마 카지노 게임을 한 번 더 찾아올 거라는 소리.


'그럼 어제 그 남자란 말이야?'


인계를 마치고 오전 근무자를 보낸 뒤 카지노 게임은 편의점 창밖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때 경찰 한 사람이 편의점으로 다가오는 것 아닌가. 잘못도 없는 카지노 게임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딸랑. 문에 걸어둔 종소리와 함께 등장한 경찰은 인사를 하며 어제 남자에 대해서 물었다. 이상한 점은 없었냐고 물었고 남자가 나가다가 한번 돌아보던데 이유는 뭐냐고 물었다.


"인사를 했더니 돌아보시더라고요. 그분이 인사를 받아준 게 처음이었는데... 그게 이상한 점이라면 이상한 점이었겠네요."


잘못도 없는 카지노 게임이 거짓말을 했다. 카지노 게임은 알고 있었다. 근무자를 향한 카메라는 근무자의 머리 아래쪽 뒷모습과 금고나 돈통이 열리는 모습만 찍고 있다는 것을. CCTV의 각도는 사장님의 색안경이었을까. 사장님이든 누구든 카지노 게임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는 걸 적어도 CCTV를 통해서는 알 리가 없었다. 선글라스에 대해 말하면 숫자 1도 말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번거로워지고 카지노 게임이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본인조차 이상해서 거짓말을 했다.


경찰은 그 이상을 묻지 않고 돌아갔다. 동네 일이라면 참견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앞집의 옆집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서 나중에 들어보니 유서는 없었지만 타살의 흔적도 없었다고 했다. 경찰이 카지노 게임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만하고 넘어간 이유가 그거였구나. 명백하게도 자살이었다.


퇴근을 한 카지노 게임은 고시원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을 돌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교로웠고 이상하기도 했다. 그 숫자는 뭐였을까. 남자는 왜 자살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열 바퀴쯤 돌았을 때 다리도 아파왔고 배도 고파왔다. 고시원으로 가려고 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카지노 게임 옆에 어떤 할머니가 바짝 붙어 섰다.


'이 더운 날에 너른 자리를 두고 왜 사람한테 붙어서는 거야.'


짜증이 난 카지노 게임은 바로 옆의 할머니를 보았다. 체구가 작아 마치 깔보듯이 내려보게 됐는데 할머니의 목에 숫자 0이 보였다. '뭐야. 이번엔 0이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할머니가 앞으로 걸어갔다. 신호등을 보니 아직 빨간불이었다. 어르신이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카지노 게임이 잡을 새도 없이 쿵! 빠르게 지나가던 SUV 차량에 치여 1미터쯤을 날아가서 떨어졌다. 할머니 주변이 금세 피바다가 됐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며 난리가 났다. 운전자는 스마트폰을 쥔 채로 차에서 내려 넋을 놓은 듯 입을 벌리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119!!! 누가 전화 좀 해주세요!!!"


한 사람이 다급하게 소리쳤고 몇몇은 폰을 꺼내 전화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카지노 게임은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앞만 보고 무작정 걸었다. 다른 길로 돌고 돌아 고시원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숨기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선글라스를 빼서 집어던졌다. 카지노 게임은 할머니의 사고를 코앞에서 보고 깨달았다. 선글라스 렌즈를 통해 보이던 숫자는 그 사람의 카지노 게임이었다는 것을. 카지노 게임이 다한 사람들의 남은 카지노 게임이 보였다는 소름 돋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밤 카지노 게임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언니의 죽음값으로 선글라스를 샀다고 저주가 내려진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누운 지 네 시간 만에 겨우 잠드는 카지노 게임의 입에서 모기가 지나가는 듯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명품은 무슨 명푸움. 씨이발."



잠이 든 줄 알았던 카지노 게임은 고시원의 공용 욕실 거울 앞에 서있었다. 맨몸으로 거울을 보고 서있는 카지노 게임의 얼굴에는 선글라스가 있었다. 기이한 모습이었다. 선글라스로부터 시선을 조금 내리니 거울 속 자신의 목에 숫자 4가 보였다. 카지노 게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선글라스를 벗으려고 하는데 가위눌릴 때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고함을 치는데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끙끙대다가 겨우 소리쳤을 때 눈이 번뜩 뜨였다. 눈앞으로 보이는 건 알몸의 카지노 게임이 아니라 고시원 방의 천장이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었고 꿈이었는지 모르겠다. 카지노 게임은 침대에서 크게 숨을 내쉬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살았다."



카지노 게임은 선글라스를 다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이번엔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다. 색안경을 벗어야 할 때였다.

출근을 한 카지노 게임은 할 일을 끝내고 계산대 안쪽에 서있었다.


딸랑.


매가리 없는 그 남자가 들어왔고 당연히도 삼각김밥이 있는 냉장 코너 쪽으로 갔다. 남자는 고민도 없이 삼각김밥 하나를 골라 계산하러 왔다. 카지노 게임이 바코드를 찍으려고 집어 들었다. 참치마요 삼각김밥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카지노 게임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남자는 꾸뻑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편의점을 나갔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남자는 삼각김밥을 사갔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본 뒤로 4일이 지났지만 카지노 게임은 살아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