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손가락은 괜찮네
2019년, 4월, 나는 집화장실에서 미끄러져 20L 들통에 끓은 물을 머리부터 다 뒤집어썼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이상하게 한편으론 담담하게 내가 장애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동시에 생각했다.
집에서 목욕을 하려고 뜨거운 물이 든 들통을 뒤집어썼다고 하면 다들
“구축에 사세요?” 하고 묻는다.
우리 집은 모 대기업에서 지은 유명 브랜드 아파트다. 지을 당시도 잘 지은 아파트였고, 10년 이상된 지금도 여전히 요즘 짓는 아파트에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욕실의 온수가 최고 뜨거운 쪽으로 돌려도 원하는 정도의 온도가 되질 않았다. 욕실 바닥에도 보일러가 깔려있지만 목욕을 하다 보면 물이 식어 추웠다.
그래서 간절기나 겨울엔 들통에 물을 데워 온도를 더 높여 목욕을 하곤 했다. 나중에 보일러를 바꾸게 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집 평수에 맞지 않는 작은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날도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욕실 문을 닫아 놓았다.
뜨거운 들통을 들고 슬리퍼를 신었을 때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머리부터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다. 깜빡하고 환기를 누르지 않아 욕실 바닥에는 수증기로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비명에 온 가족은 놀라 달려왔고, 큰딸은 119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그 와중에 자기가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고 나섰다. 남편은 늘 그랬다. 정작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에는 무책임했고, 사소한 일엔 본인이 나서겠다고 했다. 이런 일로 우리는 늘 싸웠다. 큰딸은 아빠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아냐며 나서는 아빠를 말렸다.
나는 어디를 얼마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입으면 열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생각나 욕조 샤워기로 전신에 차가운 물을 뿌렸다. 그러나 곧 체온이 떨어져 추위로 덜덜 떨게 되고 계속할 수가 없었다. 바깥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 얼굴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자국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딸에게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가져오게 하고 손수건으로 감싸 얼굴에 대고 열을 뺐다.
119가 도착하고 나를 한일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한일 병원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내 상태를 본 의사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범위가 넓다고 했다. 늦은 저녁에 응급실로 들어왔기 때문에 다음날에야 내 담당 의사를 만났다.
나는 오른쪽 무릎 아래와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을 제외하고 온몸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입었다. 심지어 귓속에도 뜨거운 물이 들어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귀를 테스트하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온몸에 붕대를 감은 내 모습은 마치 미라와 같았다. 얼굴에도 붕대를 감고 양파망 같은 것을 씌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병동이지만 나만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입은 사람이 없어서 사람들은 나를 대놓고 쳐다봤다. 그런 시선이 불쾌했다. 그 표정에는 연민보다는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심지어 같은 병실을 쓰던 할머니는 내 사정을 듣고도 누군지 모를 사람과 통화하며
“집에서 들통을 뒤집어썼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며 마치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듯 통화를 했다. 도대체 어떤 상상을 하는 걸까?
다음 날 침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그게 땀이 아니라 등에서 나오는 진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나에게 많은 부분 이식이 필요하고 이식 수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나중에 이 이식 수술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흉터보다 흉해 여름에 난 왼쪽팔에 팔토시나 붕대로 흉터를 가리고 다녀야 했다. 이식 수술은 더 신중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입원한 다음 날 그 두 번째 손가락으로 학부모에게 일일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문자를 보냈다.
입원한 후에 매일 아침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소독을 하고 다시 붕대를 감았다. 병원에서는 감염에 우려가 있는 순서로 소독을 하는데, 아기가 제일 먼저 하고 그다음 순서가 나였다. 나는 소독을 하고 오면 온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그 증상은 감염이 되어서 그렇다고 했고 다음 날부터 멸균된 수술실에서 소독하게 되었다. 살갗이 벗겨진 곳에 소독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소독한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입원한 후에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었지만 당상 생활비 걱정을 해야 했다. 남편이 사업 실패로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가 달마다 내는 돈과 아파트 대출금과 대학생이 2명인 우리 집 사정으론 나도 벌어야 했다.
어느 날 병원에 온 남편은 자신의 이 치료로 1천4백만 원를 결제했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내 병원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이 일로 나중에 남편과 크게 싸웠다. 자신의 이 치료는 많은 부분 라미네이트를 했기 때문에 1천4백이라는 금액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입원한 나에게 병원비를 어떻게 할 거냐니… 나중에 현금이나 카드 중에 어떻게 결제할 거냐는 질문이었다고 궁색한 대답을 했다.
1년도 안 되어 코비딕으로 남편의 이 치료비도 나에게 빚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