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미지를 창조하는 배수아의 실력...
이유가 있어야 하나?
배수아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이야기의 필연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이 배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소설을 밀고 나간다.
소설은 스스로를 카지노 게임 킨트라고 지칭하는 내가 겪은 이야기(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카지노 게임에 취직하기 위한 주인공의 리포트인 셈)이다.
“...카지노 게임이라는 장소는 나에게 평가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거야. 카지노 게임이란, 그 자체로 내가 지도에서 발견한 모든 첫 번째 장소, 그것이야.”
“난, 카지노 게임 킨트야... 카지노 게임을 갖고 싶어하거나, 그곳에 계속해서 있고 싶어하거나, 그곳을 찾아간다거나, 그곳에 속하고 싶어하는 거야. 혹은 그것이 되고 싶어하는 거야. 서서히 말이야.”
그러니까 이러한 설명과 함께 감상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카지노 게임이 왜 등장하고 카지노 게임 킨트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으니 말이다.
이렇게 1. 카지노 게임 킨트, 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 글은 2. 짐승의 눈, 에서는 자신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3. 하마, 에서는 유모차를 몰고 다니며 보모 아르바이트를 하는 하마를 소개하고 4. 보도, 에서는 보도의 상점(점원이지만 그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단다)과 보도를 5. 두스만, 에서는 공간의 명칭이자 남자의 이름인 두사믄을 설명한다.
6. 카챠의 남자, 라는 항목에서는 오랑우탄인 카챠에게 끊임없이 잣니을 사랑하는지 묻는 남자가 등장하며 7. 겨울의 유령들, 에서는 눈 속의 늑대와 실명의 순간이 늘어나는 자신의 눈을 비교하고 8. 1945년 4월 16일의 벙커, 에서는 두스만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벙커에서 발견한 옛 병사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9. 러시아 호프 호텔, 에서는 이 호텔에 근무한 적이 있는 페터라는 친구에게서 하마의 본명이 실은 깐나라는 사실을 주워 듣고 10. 양카지노 게임, 을 통해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양카지노 게임에서 깐나에게 엽서를 쓰고 있음을 알린다.
11. 새로운 슈테피, 에서 나는 슈테피의 두 아이인 릴라와 휴고를 돌보고 12. 모든 친구에게 쓴 절교의 편지, 를 쓰는 동안에는 막스 토마의 집에 묵고 13. West Berlin, 에서는 보도와 합칠 결심을 하고 14. 부다페스트 가街, 에서는 하마와 재회한다.
낯선 이미지를 창조하는 실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배수아는(특히 이 글은 작가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쓰여진 것) 독일, 헝가리, 러시아 등의 나라를 하나의 공간에 묶고 하마, 보도, 두스만, 카챠, 슈테피처럼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명칭들로 사람과 공간, 동물을 일렬로 늘어 놓고 있다.
딱히 고정된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고 그런 이미지들의 지향점도 없으며 그러 막연한 몽롱함으로 초지일관하고 있는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때문에 환상적이면서도 시시콜콜 객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소설 작법은 글의 프롤로그 격이면서도 작가가 모든 글을 읽고 나서 읽기를 요구한 0. 카지노 게임에 간다, 에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그 자체로서의 현실과 그 기준이란, 유행이나 다수결 혹은 파티에 초대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금박 글자의 명함처럼,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나에게는 가장 무시하고 경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글을 쓰는 방법에 있어서 나에게는 대개의 경우 선호하는 몇 가지의 사소한 방법이 있는데, 동일시하거나 비판하거나 개입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배수아 / 카지노 게임 킨트 / 이가서 /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