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면밀하고 강력한 이미지즘 소설이란...
카지노 쿠폰의 인과 관계를 향해 네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달려가는 소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스펙타클한 소설을 꿈꾸지는 마시라.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지, 실상은 건조하고 침착하며 주도면밀하고 강력한 이미지즘으로 무장한 조금은 껄끄러운 소설이다.
소설은 동물학자이며 중년의 부부인 조지프와 셀리스의 카지노 쿠폰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음 섹스를 나누었으며, 그리하여 결혼을 하고 지금에 이르게 된 최초의 진원지 모래언덕을 찾아 바로 그 시절의 감회를 섹스로 되살리려다 강도에게 일격(은 아니고 여러차례의 가격으로 완전히 망가진)을 당하여 살해된 상태이다. 이것이 소설의 첫번째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는 조지프와 셀리스가 살해당하기까지의 그날의 행적이다. 아침에 잠을 깨서 어떻게 그 모래언덕을 향하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 세번째는 과거 조지프와 셀리스가 처음 만난 이 모래언덕에서의 사건을 전해주는 이야기. 그리고 네번째는 이들의 실종으로 인해 모래언덕이 있는 도시를 찾은 조지프와 셀리스의 딸이 겪는 이야기.
다시한번 말하지만 왠지 지금까지의 설명이 재미있을 것 같다 하여 덥썩 책을 집어드는 우를 범하지는 말기 바란다. 책은 이처럼 다양한 시선과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소설로 응축시켜 놓고는 있지만 그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살해된 두 구의 시체에 대한 건조하고 정밀한 묘사는 치가 떨리고, 시간을 나열하며 보여주는 조지프와 셀리스의 심리는 고개를 저어야 할 정도로 지리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무난히 통과한다면 삶의 속피부처럼 끈적한 카지노 쿠폰, 그 카지노 쿠폰에 대한 또하나의 통과의례를 거친 것과 같은 느낌 정도는 갖게 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책을 읽을만한 심경의 상태가 아닌 탓에(더욱 솔직해지자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열심히 파고들며 독서를 하는 습관이 물에라도 풀어진 것처럼 묽어진 탓에) 책을 덮고 남은 것은 다음의 두 문장뿐이다.
"...섹스가 있는 곳에 카지노 쿠폰이 있다. 섹스와 카지노 쿠폰은 하나의 직선 위에 있는 검은 좌표다. 슬픔은 에로틱해진 카지노 쿠폰이다. 그리고 섹스는 성교 후의 여생으로 곧장 뛰어들기 위해 때가 되기 전에 서둘러 속세의 번거로움을 벗어 던질 뿐이다..."
(카지노 쿠폰을 생각하며 섹스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라고 해버리면 솔직하지 못하다. 섹스에의 몰입과 카지노 쿠폰은 딱히 복상사가 아니더라도 왠지 은근히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매개체로 슬픔을 삼으면 그럴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좋은 표현이다.)
"이것은 너무 많은 남자들이 너무 뒤늦게 발견하는 훌륭한 진리였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있을 때만 젊을 수 있고 어리석을 수 있다."
(얼마전 친구가 덕담삼아 내게 해준 서른 여섯이 넘으면 마누라 치마폭에 쌓여 살 것이라는 저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에 비해 한 수 아래다. 과거에 쇼펜하우어를 인용하며 여자는 머리를 쓸 줄 모르니 농사꾼이 제격이다, 라고 말하고 다닌 것을 반성한다. 하지만 뭐 그때는 여자에게 버림받은 직후였으니 조금쯤 이해되어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짐 크레이스 / 김석희 역 / 그리고 카지노 쿠폰 (Being Dead) / 열린책들 / 2002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