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포스터,마이클 포스터,레다 해더디 공저
공을 들여 읽은 것은 아니고,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지는 귀차니즘의 대두로 말미암아 오랜 시간을 끌어들여 읽은 책이 되었다. 하지만 호기심을 충분히 만족시켜주며, 동시에 사랑, 연애, 섹스, 이성에 대한 대부분의 도덕적 죄의식을 일거에 해소시킬 수 있는 꽤나 건조한 보고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혹여 현재 자신의 사랑이 보편적 사회 정서와 잘 맞지 않는다, 라며 머리를 쥐어뜯는 카지노 게임들이 있다면 필독을 권한다. 어지간한 불륜 쯤은 어린 남자 아이가 어린 여자 아이의 성기에 관심을 갖는 정도로 귀여워지게 될 것이다.
책은 세 명의 공저로 되어 있다. 이들은 '삼각 연애는 상상력과 공동 분배의 필요성이 전제된 사랑, 즉 의무가 뒤따르는 사랑을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여기며, 자신들의 삼각 연애가 형이상학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이고, 또한 이러한 연애의 형태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점이란 생각에 역사 속에 숨은 삼각 연애의 모든 것을 끄집어 낼 작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서 속의 인물들에서 예술가, 정치인, 영화 속의 인물들을 망라하는 삼각 연애의 버라이어티 쇼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는 하되, 사랑에 대해 획기적인 의식의 전환 같은 것을 기대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그들이 애초에 형이상학적인 삼각 연애라고 했던 것은, 자꾸 읽다 보면 그저 예술가들의 애정 편력이나 변덕스러운 그들의 성격에 부합하는 연애의 방식이었을 뿐, 그것이 뭔가 전범으로 삼을만한 삼각 연애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책에 등장하는 삼각 연애의 패턴을 살펴보자면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1.나는 A를 카지노 게임한다. 그러던 어느날 B가 나타난다. A는 결국 B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래서 A와 나와 B는 사이좋게 지낸다.
2. 나는 A를 카지노 게임한다. 그러던 어느날 B가 나타난다. 난 이제 B를 더 카지노 게임한다. 그런데 어느날 C가 나타난다. B는 결국 C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래서 B와 나와 C는 사이좋게 지낸다.
3. 나는 A와 B를 동시에 카지노 게임하고 있다. 누군가를 더 좋아하지 않고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A와 B 사이를 오고가고 둘은 처음엔 서로를 질투하지만 결국엔 서로를 인정한다.
4. 나는 A와 B를 동시에 카지노 게임한다. 그리고 A와 B도 서로를 카지노 게임한다. 그렇게 우리 셋은 서로를 모두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삼각 연애를 기초로 사랑은 사각이 되기도 하고 오각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그저 평행선의 양쪽에 자리 잡게도 된다. 물론 이러한 사랑의 패턴이 우리들 주변이라고 없을까마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러한 카지노 게임의 패턴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는 조금 힘겹다, 싶은 일들을 스스럼없이 진행시키면서도 유유자적이다(때때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마음 같아서는 아내에게도 필독을 시켜, 우리들 내면의 가치를 높이고 예술가적 성취의 도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각자 애인이라도 만들어서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마 힘들 것이다.
우리는 이들이 아니니까.
역사 속의 눈여겨 볼만한 삼각 연애 커플들.
실비아 플러스-테드 휴즈-자넷 말콤, 로브터 슈만-클라라 슈만-요하네스 브람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에리 번즈-리찌 번즈, 루 살로메-니체-폴레, 루 살로메-안드레아스-릴케, 헨리 밀러-준 밀러-아나이스 닌, 갈라-폴 엘뤼아르-막스 에른스트, 갈라-폴 엘뤼아르-살바도르 달리, 미테랑-다니엘-안 팽조, 에밀졸라-알렉산드린-잔, 유진 오닐-루이즈 브라이언트-잭 리드, 에즈라 파운드-도로시-올가, 레논-크룹스카야-이네사 아즈망, 에드위나-디키-네루...
아, 뭐 이렇게 길어지냐...
그리고 밑줄 그은 곳들을 찾아 적어본다. 아래는 그것들에 대한 단상이다.
"...질투는 삼각 연애의 주된 장애물인데, 일단 우리 세 사람은 질투를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여긴다. 하지만 질투에서 비롯된 분노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런 분노를 병적인 강박관념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을 '녹색 눈의 괴물'(셰익스피어작 『오셀로』에 등장하는, 질투를 상징하는 괴물)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와 달리 삼각 연애는 자유로운 선택과 상호간의 의견 합의를 전제로 한 관계이다."
- 자유로운 선택과 상호간의 의견 합의를 전제로 한 관계, 라고 하니까 무지하게 쉬운 일 같지만, 그게 어디 쉽나. 질투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것이므로 책에 등장하는 그들조차 쉽게 어쩌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건만.
"간통은 당신이 누구와 자느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속이고 있는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이다."
- 알듯 모를듯.
리슐리외 공작 "서로를 지나칠 정도로 카지노 게임하는 일은 삼가하도록 하라. 그래야 카지노 게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며칠 연인으로 지내는 것보다는 일평생 친구로 지내는 쪽이 한결 낫다."
- 적극적인 동감의 가능. 난 지나칠 정도로 카지노 게임하지 않음으로써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는 여자가 한 명 있다.
카사노바 "기회가 올 때마다 기꺼이 사랑을 나눌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카지노 게임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 카사노바의 저 맹렬한 카지노 게임의 기개에 갈채를...
"...카사노바는 자신이 여자를 유횩하는 일류급 색마(色魔)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자신은 늘 상대로부터 유혹당하는 경우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쉽게 카지노 게임에 빠져드는 성향, 이는 그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런 성향은 그가 욕망의 대상을 공격하는 데 진지한 태도를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정말이지 가슴이 뜨끔했다. 하늘이 나를 향해 천둥과 벼락을 치고 내리는 것이 아닐까, 상상될만큼...
"...이따금 그는 두 여자를 상대로 도미노 이론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 결과 두 여자를 상대할 때 한 여자가 자기에게 빠져들면 곧이어 나머지 한 여자도 그 뒤를 따르게 되어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 주변의 몇몇 자칭타칭 연애 빠끔이들에게 의견을 구한 결과, 내 생각처럼 이 이론은 대부분 딱 맞아 떨어지는 이론임을 확인. 실천에 옮겨들 보시라...
"...이 시점에서 루는 이미 '욕망이 강할수록 상대에게 종속되는 정도도 깊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살로메는 한 사내에게 종속되는 일을 피하려면, 자신에 대해 동등한 애정을 품고 있는 두 사내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고 믿었다."
"루 살로메는 모든 인간은 인생의 반려자를, 남편이나 아내를, 피난처이자 지지자, 내조자이자 형제이며 고독의 수호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사랑의 힘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는 그녀의 원칙은 자신을 중심에다 위치시킨 삼각 연애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피카소 "손에 넣고 싶은 욕구를 마구 자극하는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구태여 멀리할 이유가 뭐가 있겠소?"
"...24살의 사르트르는 그의 동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본질적이고 불가결한 카지노 게임이야. 하지만 일시적이고 우연한 카지노 게임은 얼마든지 해도 좋아. 그들의 계약에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털어놓고 얘기한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먼저 2년간의 계약에 동의했다..."
보봐르 "나는 운좋게 남자와도 여자와도 완벽한 관계를 누릴 수 있었다."
- 갑자기 며칠전 한 친구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남자와 한번 사귀어 보지 그래요? 내가 말했다. 응, 그럴 뻔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허벅지를 만지는 남자의 손이 내게는 애무로 느껴지지가 않았어. 결국 난 헤테로 섹슈얼인 것 같아. 호모 섹슈얼을 위해 노력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흥미롭기는 하네. 할 수 있을까?
바바라 포스터,마이클 포스터,레다 해더디 공저 / 욕조 속의 세 사람 / 세종서적 /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