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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베를리너 Jul 17. 2023

책방 카지노 게임

어린 소녀가 늙기를꿈꾸다

누가 내게 꿈이 뭔지 묻는다면 대답은 항상 같았어.
난 서점 카지노 게임가 될 거야




장래희망은 항상 바뀌었다. 그 중 내가 스스로 찾은 장래희망이 몇이나 될까. 귀가 얇던 나는 항상 어른들에게 설득 당해 보기 좋은 직업을 내 꿈으로 삼았다. 외교관, 의사, 바이올리니스트(부모님이 내게 클래식을 하길 바랬던 때가 있었다), 연출가 등....


지금 나는 연극 연출을 전공했고 공연을 하고 싶어한다. 물론 이 직업도 내가 혼자 찾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 부모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았던 것 같다. 내가 찾고 바라는 이 일이 여전히 싫지 않다. 그건 어른들이 흔히 추천하는 직업군은 아니다. 배고파서 안정적이지도 않고 유명해지지도 않는다. 빛나는 무대를 더 빛나보이게 하려면 주위는 빛이 없는 암흑이어야 하기에 늘상 그 암흑속에서 혼자 소리지르는 존재다. 여하튼 난 그게 되고 싶다.


장래희망이 수없이 바뀔 동안 변하지 않은 꿈이 있다. '책방 카지노 게임'. 그 꿈은 어떤 어른도 말리지 않았고 어떤 어른도 추천한 바 없다. 아무래도 책방 뒤에 붙은 한 단어 때문일 거다. '카지노 게임'. 늙어서 책방하나 차리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어쨌든 그 나이 먹어서 책방을 차리게 된들 그 어른들은 보지 못할 확률이 높을 거다. 카지노 게임가 되었을 때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꿈이 좋든 좋지 않든,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아무도 간섭하거나 말릴 이유가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원하는 책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다. 자식이 책 읽는 걸 마다하는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우리집은 화면이 달린 것들은 허락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 컴퓨터, 핸드폰 등... 그렇다고 허락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건 끔찍한 아이디어였다. 1주일치 학습지, 숙제, 일기, 독후감, 시험공부... 불가능한 그 모든 것들을 끝내고도 다른 것보다 화면 달린 기계가 도움이 된다는 걸 납득시켜야 했다. 어른들이 집에 없을 때 몰래 하는 게 나았다. 즉, 엄마가 집에 있을 땐 컴퓨터게임이나 텔레비전은 안 하는 거다(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집을 제일 좋아한다) . 그 덕에 나는 이 시대에 화면과 친하지 않은 20대가 되었다. 내 컴퓨터 게임 실력은 재앙에 가깝다. 텔레비전도 2시간 이상 앉아서 보기 힘들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코딩도 할 줄 안다 던데 나는 워드나 파워포인트도 오래 못한다.


어린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공부 이외의 재미있는 거라곤 책읽는 거 밖에(!) 없었다. 시작은 어느 초등학생이나 가지고 있던 명작동화 시리즈였다. 그 동화책을 지겨워질때쯤 수준이 조금 올라간 명작소설 시리즈가 생겼다. 그 시리즈 이후로는 부모님이 다른 시리즈를 사주기가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명작 시리즈들끼리는 한 두 작품이 겹치기 때문에 다른 명작 시리즈를 사기엔 애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게 책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어린 내게 책방은 신나는 쇼핑 플레이스였다. 책장 2-3개 정도면 끝나는 어린이 구역을 누비며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조건 겉 표지였다. 나는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표지를 골랐고 대부분은 모험을 담은 소설이었다. 부모님을 찾아서 친구를 구하러 악당을 무찌르는 아이들의 이야기. 차원을, 시간을 넘나들며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들. 나이가 들 수록 글자크기는 작아졌고 책은 두꺼워졌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가족이야기에서 과학 소설에서 판타지소설로 그리고 탐정소설로(셜록홈즈는 사랑이다) 계속 변화하긴 했지만 그래도 난 소설이 좋았다.


책이 좋았고 읽어보고 싶은 표지를 가진 책은 서점에 항상 많았다. 그리고 그 책을 모두 내 것으로 할 수는 었었다. 그 동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 사람들은 그냥 계산대에 앉아서 전부 다 읽을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서점 주인을 꿈이라고 하기에는 꿈이 너무 소박하게 들렸다. 뭐랄까 너무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같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믿었기에 내 꿈은 평범하게 들리면 안됐다. 그럼에도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때 카지노 게임라는 조건을 붙여 봤다. 다른 직업으로 어른의 세상을 살다가 노인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을 때 서점을 하나 가지면 난 특별한 카지노 게임가 되는 거였다.


책방은 내 것이어야 하고 나는 카지노 게임어야 한다. 그 모든 조건이 내게 들어맞아야 내 꿈이 이뤄진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찬 책방을. 둘째, 멋있는 카지노 게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가득 실은 책방을 하는 거다. 당연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를 우선으로 삼고 그리고 나서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방을 차릴 거다. 당연히 그때 난 멋있는 카지노 게임여야 한다. 희고 풍성한 머리에 크고 듬직한 포스 있는 카지노 게임. 내키가 153cm에서 더 커지길 멈춰서 크고 듬직한 카지노 게임가 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쿨한 카지노 게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아 아늑함을 풍기는 앤틱한 서점. 목재로 된 서가에 향긋한 꽃내음이 풍기는 서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들만 모아놓은 허세없는 곳. 아무도 책을 추천해주지 않아도, 아무 책이나 꺼내 읽어도 후회 하지 않는 곳. 내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곳.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하고 쿨한 카지노 게임가 지키고 있는 아주 스타일리쉬한 서점. 그 서점 주인이 내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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