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나이트] 리뷰
마블 마니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 2008년 [아이언맨] 개봉 이후 매년 마블 영화를 챙겨봤다. 페이즈 3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는 참 열성적이었고 개개의 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세계관의 확장과 더불어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부터는 이야기에 영 몰입하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챙겨본 마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교롭게도 [아이언맨]이 개봉한같은 해에 [다크나이트]가 개봉을 했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물론 DC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에 힘을 잃지 않고 끌어갈 수 있는 방법은 감독과 배우의 역량과 탄탄한 시나리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기보다 다소 짧더라도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페이즈 1~3까지는 단독 주연의 작품과 협연인 작품들의 메시지가 명확했다. 적(빌런)의 또렷한 존재감, 영웅이기 이전 개개인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좌절, 화해 뒤 각성(여기에는 조언자 또는 조력자의 죽음이 필수다), 그리고 맺음(에필로그로 다음화를 예고하는 쿠키 영상까지). 이는 소설의 구성인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따르고 있는데, 다소 뻔하다 해도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음은 소시민 또는 일반인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신화를 철저히 따르기 때문이다.
자.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았던 동화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려보자. 디즈니의 원작들은 대개 비운의 결말을 가지고 접근해 왔지만 디즈니는 그것 살짝 뒤틀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게끔 이야기를 만들어 왔기에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었다. 모티브를 따오되 형식을 뒤틀어버림으로써 극적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또한 이 형식에 기반을 두어 다크히어로 물임에도 특유의 철학을 담아 십수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될 만큼의 역작이 되었다.
앞서 말을 했듯이 [다크나이트]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밀도가 높고, 편집이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다.이야기의 아귀가 안 맞으면 아무리 멋진 특수효과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더라도 좀 갸우뚱해진다.물론 B급 영화처럼 관람자가 장르의 규칙을 염두에 둔 채 관대하게 즐겨야 하는 유형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겠지만, 최소한 블록버스터는 그렇게 관객의 너그러움에만 기대어 영화를 만들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들인다. 관객의 시간이 드는 것은 거기에 덤이다.이러한 규칙을 오히려 거꾸로 생각하는 블록버스터들이 있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으니, 이야기는 대충 만들자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그런 영화들은 흥행에 실패하거나, 간혹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돈 못지않게 욕까지 벌어들인다. 근래마블과 디즈니의 경우처럼.
하지만 [다크나이트]는 그러한 점에서 영리하게 굴었다. 이야기의 밀도가 매우 촘촘하였으며, 볼거리를 위한 이야기 전개가 아닌 이야기를 받침 하기 위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다양한 볼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기에도 시나리오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사실[다크나이트]를 보면 전편인 [배트맨 비긴즈]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이다.[배트맨 비긴즈]가 중세 기사의 이야기라면 [다크나이트]는 그보다 100년 뒤쯤의 이야기라 해야 할까.
두 작품 모두 사실적인 느낌의 배트맨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슷했지만, [배트맨 비긴즈]가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물이라면 [다크나이트]는 오히려 스릴러물에 가깝다.영웅물 특유의 멋들어짐은 군데군데 남아있지만, 조커의 음모를 주축으로 나름 각 단계의 아귀를 맞추려고 했던 것이 주가 된 만큼[다크나이트]는 영웅물로는 매우 색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다음 상황을 추측하게 만들어서, 꽤 많은 이야기와 2시간 30분 가까운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또한 배트맨보다 조커가 더 두드러진다는 평이 더러 나오는 것은 오직 히스레저의 좋은 연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 전개의 특징도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다만 레이첼도스 역의 배우가 바뀐 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외모적인 부분이 아니라전편인 [배트맨 비긴즈]를본 사람에게는 몰입도가 살짝 깨지는 느낌 때문에.)
[다크나이트]는 대체로 원근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러한 구도는 규모를 한층 더 웅장하게 느끼게 해 준다. 큼직큼직한 화면은 사운드와 함께 관객에게 엄청난압도감을 주는데 예를 들자면트럭이 곤두섰다가 넘어지는 장면을 들 수가 있다.편집은 대체로 속도감이 있으며 쓸데없는 군더더기는 모두 생략하였다. 인물이 사색에 잠겨 길을 걷는다던가, 달을 보며 회한에 잠기는 질질 끄는 장면 따위는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야기와 감정을 온전하게보전한다는건결국놀란감독의역량이 아니려나.
[다크나이트]는 인간 브루스 웨인, 영웅 배트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위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순수 악 그 자체인 조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가 2019년 개봉해 흥행을 했음에도(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리뷰/@kwon-sseum/1202) 다소 결이 다른 히스레저의 조커는 여전히 매력 있는 빌런이다.역대 조커 배우들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등 최고 수준의 인기를 자랑하는 조커이기도 한데, 이는 단순히 조커 배역을 한 히스 레저의 개인사를 떠나현실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살벌하고 악랄한 악당 그 자체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분명 잭니콜슨의 조커도 강렬했고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도 강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다크나이트]의 전체 분위기는 매우 어두운 편임에도 그를 환기시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조커의 존재였다. 제임스 고든 경위의 진급에 철창 안에서 박수를 치는 모습, 간호사로 위장하고 병원을 나오는 모습, 돈을 탈취한 뒤 유유히 스쿨버스를 몰고 빠져나가는 모습들. 지탄받을 행위를 함에도 많은 이들이 그의 모습에 열광한 것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순수 악의 행위로 말미암은 카타르시스 때문은 아니었을지.
2023년 11월 15일[다크나이트]가 재개봉한다. 이미 대사를 외울 정도로 본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게 한편으론 지루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이 영화만큼은 다시 볼 가치가 있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