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똥철학 시리즈 1
<아버지 똥철학, 카지노 게임은 일생이다.
02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멈춤이 없다. 만족이 없다. 외부요인에 의해 출렁거린다.
행복(幸福)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행복이라고 말을 하는데, 죽는 날까지 행복이 근원(根源)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죽을 둥 살 둥 노력에서 얻은 즐거움을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간뿐카지노 게임.
나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슬픔과 고통으로 변한다. 이게 카지노 게임 법칙인 듯싶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기원이 무엇인지 모를 혼돈이 있다. 덧없는 유혹을 받아 망상과 욕망으로 뒤범벅되어있다.
삶의 본질, 이게 맞나 싶다.
아마도 맞는 것 같다.
아마도 맞을 것 같다고 하는 나는 뭐 하는 놈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죽어 있는 상태라고 하면 카지노 게임에 대한 고민은 필요 없으므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카지노 게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카지노 게임을 추구하고 사는데, 그 공간적 한계가 거의 무한에 가깝다.
카지노 게임을 얻기보다는 환상이 깨져서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에 우울해한다. 살면서 카지노 게임이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영향력에 대해서 별로 고민 없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1년 2년, 그리고 평생을 산다. 그러면서 우리는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이며, 나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무지에 근거한 삶에 대한 수사학적인 말장난이었고, 과장된 오류의 결과였고, 건더기 없는 미사여구였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린다고 하더군요, 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욕망(欲望)으로 살아간다는 대사이다.
욕망에는 충족이 없다.
자극을 받은 욕망은 더 큰 자극을 원한다.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카지노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지속성이 없다. 새로운 욕망이 솟아나고, 또다시 카지노 게임감을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죽는 날까지 갈증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카지노 게임 때문에 불행하게 살다가 죽는다.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는 순간 모든 것이 헛것임을 아는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 나의 정신은 동요한다. 카지노 게임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면 내가 살아온 카지노 게임은 선도 악도 아니다.
잘 준비된 불행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솟는다. 내 카지노 게임에 대한 교활한 대변자로 오만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살아온 것이다.
나 자신을 조롱하는 나를 본다.
<글은 계속 퇴고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