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나는 10년이 지난 후에야 진짜로 알게 되었다. 어떤 순간이 촉발되었는지 모르겠다. 올해 봄 방문한 제주 4.3 평화기념관이었을까? 네가 손수 적어준 4.3 사건 유적지에 대한 글이었을까? 철학수업 때 들어온 역사의 반복, 혁명에 대한 이야기였을까? 스승이 현 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분노함과 동시에 눈빛에 슬픔이 번지던 그 표정을 본 시간이 쌓여서였을까? 연극을 하며 만난 1954년생,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운 황승욱 역할을 소화하면서였을까? 너와 함께 본 참사를 다룬 연극이었을까? 뭐가 직접적인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세월호 다큐, 뉴스, 기사를 찾아보며 한참을 울었다. 울고 또 울어도 그 미안함과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은 가슴에서 씻겨내리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내 온몸을 락스로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카지노 쿠폰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다짐카지노 쿠폰. 다시는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나씩 해 보아야겠다고.
그 다짐이 48시간 채 지나지 않아, 2024년 12월 3일 약 밤 10시 30분. 철학 수업이 끝날 때쯤 듣게 되었다. 비상계엄령. 그 단어가 참 생소했다. 분노가 치밀어올 시간조차 없이 참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 한순간이라도, 1분이라도 다르게 살았다면 세월호의 아픔을, 1980년대에 세상과 맞선 사람들의 투쟁을, 느끼지도 못한 채 이 사태를 맞닥뜨렸을 것이다. 난 또 후회할 일만 늘어났을 테니 아찔했다. 무서웠고, 미안했고, 처절한 슬픔이었다.
집에 돌아가면서 아빠에게 전화카지노 쿠폰. 아빠는 윤석열 지지자다. 비상계엄령까지 내린 이 상황에 마음을 돌아서지 않으셨을까? 이제라도 자신만 보는 세상이 아닌, 우리가 보이는 세상으로 돌아서지 않으실까? 하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아니었다. 잘된 일이라고 카지노 쿠폰. '이 기회에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라고 카지노 쿠폰. 처참카지노 쿠폰. "아빠, 내가 시위에 나가서 다치면 어떡하려고?" "안 나가면 되지." 평생 통탄스럽다는 감정이나 형용사를 떠올려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 단어의 뜻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지만 그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까지 내가 누렸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카지노 쿠폰의 삶.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면서도 다 모든 게 작아 보였다. 회사에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가 피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치(시위)의 공간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는 사회자를 보며 울컥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어떤 할머니는 노안으로 인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크게 해 놓았길래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손녀가 할머니한테 고등어 너무 잘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고등어를 구워주고 시위의 장으로 나왔다. 손녀를 위해.
어떤 성소수자는 시민발언을 하러 나왔다. 그 친구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져 부모님, 그리고 함께 다니는 학교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 두렵다고 카지노 쿠폰.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나왔다고 카지노 쿠폰. 다른 시민 발언자들보다 유독 떨리는 목소리였고, 버벅거렸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단단카지노 쿠폰.
며칠 전 수능을 보고 역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던 고3 남학생은 자신이 잘 모르지만 올라왔다는 말에 뒤에 한 아주머니는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고 카지노 쿠폰. 그 친구를 보며 한 없이 부끄러웠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메웠다.
지금까지 카지노 쿠폰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으면서 지금 와서 네가 뭘 하겠냐고 하는 삶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어를 구워 먹고 있는 손녀를 위해, 학교 가서 친구를 만나는 게 좋은 조카를 위해, 지금도 이 세상과 첫 마주침을 하는 대한민국의 한 생명을 위해, 우리를 위해 빨갛게 타버린 당신을 위해 죄송하고 치미는 마음을 가지며 살겠다는 문장을 새겨야만 했다.
또, 어느 날, 내 손에 박힌 가시가 아프다고 할 내가 뻔히 보입니다.
그때 또 괴로워하겠습니다.
어제보다 덜 괴로울 수 있도록 그렇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