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읽는 시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카지노 게임 사이트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만히 적셔준다
작년 이맘때쯤 100일 동안 시 쓰기 밴드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다.예쁜 공책 한 권과 술술 쓰이는 펜 하나를 샀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시와 아는 시들을 써서 사진을 찍고 밴드에 올렸다.
꼬박꼬박내가 올린 시에 댓글을 달던 분이 계셨다. 50개 정도 올렸을 때였다."레마누님의 시는 너무 어둡고 읽기 힘듭니다. 마음이 복잡하신가 봐요. "라는댓글이 달렸다.
가슴이 출렁거렸다. 속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한참 동안 글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올린 시들을 모두 훑어봤다.
나도 사랑 시.
좋아한다. 예쁘고 말랑말랑한 시..
술술 읽히는 시.
좋다.
세상에 예쁜 걸 싫어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울리는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어두워서 그리움, 두려움, 걱정, 연민 같은 감정은 아무리 내려가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
시인들은 그 바닥을 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다. 애매하게 겉돌지 않고 파고 들어간다. 대상을 앞에 놓고 집중한다. 숨이 막힐 때도 있고, 가슴이 아플 때도 있고, 눈물이 절로 흐를 때도 있다. 그래도 건드린다. 그래야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언젠가 나도 나태주시인처럼 모든 것을 통달하고 예쁜 글로 마무리를 지을 때가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니다. 이런 시들이 끌린다. 문태준의 <가자미 같은.아프고 아픈데 아프다고 말도 못 하는 그런 시들이. 지금은 좋다. 상처와 아픔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비극의 여주인공이 되는 걸 즐겼다. 불치병에 걸려 동정을 받고 싶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날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 후회하겠지. 내가 불행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행복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불안했다. 곧이어 닥칠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며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행복할 자격이 없는데, 이렇게 좋으면 벌을 받을 거야. 내 안의 불안과 공포가 자라고 있었다.
내면에서 부정적 감정에 매달리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왜소함이다. 왜소함은 심술궂고,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경쟁심 많고, 인색하고, 나약하고, 죄책감 많고, 떳떳하지 못하고, 자만심 강한 측면이다. 왜소함에는 에너지가 별로 없어서, 자존심만 고갈시키고 낮춘다. 자기혐오와 끝없는 죄책감, 벌을 받고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 안의 왜소한 측면이다. (주 1)
내 안에 있는 왜소함이 나를 잡아끌고 있었다. 내 마음이 끄는 대로 몸이 움직인다. 내가 아프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를 고치는 것 역시 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책을 읽다 말고 일어나 백팔배를 했다. 이십 분 동안 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참회하고 감사하고 발원하는 동안 나를 들여다본다. 못나고 부족하고 왜소하고, 그러나 안쓰럽고 가련하고 사랑스러운 나를 본다. 애쓰고 있는 나를 본다.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것도, 나를 빛나게 하는 것도 나뿐이다. 시인은 병실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며 가자미를 떠올렸다. 시인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산소호흡기에 숨을 의지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세상이고 전부였던 사람이다.
나는 이 시가 좋다. 누워있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를 본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온 생을 통째로 보고 있기에 어머니는 그에게 세상이다. 가자미처럼 가만히 누워 눈만 움직이지만, 시인에게는 그녀가 살아온 생이 보였고, 가만히 옆에 누워 그의 생을 나눠가졌다.
나를 본다. 직시한다. 시를 읽으며 내 안에 꽁꽁 숨어있는 뭔가를 꺼낸다.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그것, 가슴을 탁 쳐서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그것. 때론 아무말도 못하고 주르륵 흐르는 그것을 느끼고 싶어 시를 읽는다. 이른 아침 어제와 다른 내가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1일이다.
(주1)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판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