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의 관문 트라파니에서 카지노 쿠폰에 오르다
이번 여행은 혼자 떠나온 나의 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이다. 시칠리아에는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지만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이라 시간 여유가 별로 없다. 오늘은 꼭 가보고 싶은 카지노 쿠폰(Erice)와 세제스타(Segesta)로 가기 위해 팔레르모역카지노 쿠폰10시 39분발 트라파니(Trapani)행 열차를 탄다.열차는 완행열차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호화판(?) 살롱스타일의 객차이다. 승객도 별로 없어 현대적 이탈리아 감성으로 가득한살롱 칸을 혼자독차지하고 즐거워한다.북한에서는 김정은이나 탈 듯한 이런 살롱열차를 시칠리아에서는 서민들이 타다니. 시칠리아는 이렇게 무시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내가 탄 호화열차는 격에 맞지 않게(?) 시골 역마다 서곤 하더니 근 3시간 만에 시칠리아 동북부의 항구도시 트라파니(Trapani) 역에 도착한다. 역사(驛舍)를 나오니 시내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지나가는 행인도 없고 도로에는 차 1대도 보이지 않는다. 역 앞 광장에서 키오스크 문을 닫고 있는 상인을 붙잡고 물어 간신히 에리체(Erice)행 시외버스 정거장을 찾아간다. 그런데 정거장에는 차라고는 1대도 없고 적막강산이다. 마카로니 서부 영화에서나 보던, 황량한 어느 서부 시골 정거장의 졸리는 듯한 오후 풍경 그대로이다. 사무실도 표시판도 아무것도 없다. 콘크리트 담벼락에 덩그렇게 붙여져 있는 버스 시간표만 있을 뿐이다. 자세히 보니 <(festivo, 휴일) 에리체행 4:30 pm이라 쓰여있다. 시계를 보니 지금 1시 30분이다. 아니 그럼 여기서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황당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시골 아낙네 한 사람과 잘생긴 젊은 청년 하나가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며 길가에 앉아 있다. 청년에게 다가가서 물으니 오늘 일요일이라서 그렇단다.
일요일 오후의 시에스타 시간은 한마디로 시칠리아에서 최악의 시간대이다. 청년에게 에리체 올라가는 리프트 타는 곳을 물으니 꽤 멀다고 한다. 청년은 큰 길가까지 나와 친절히 방향을 가려쳐 준다. 그런데 거기 가는 버스도 일요일이라서 언제 올지 모른단다. 도리가 없다. 청년이 가르쳐준 방향을 향해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리를 걷는 수밖에. 차도 안 다니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래도 ‘걸어라. 걷다 보면 무엇이든 나오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10여 분을 큰길을 따라 걷는다. 야자나무가 길게 늘어선 큰길 교차로에 이르니 마침 승용차 1대가 신호대기로 멈추어 선다. 다가가 ‘Dove e stazione funivia?(리프트 타는 곳이 어디지요?)’라고 묻는다. 이탈리아에서는 Dove(어디) 한 단어만 잘 활용하면 길 묻기의 반은 성공이다. 내유창한(?) 이탈리아어가 통했나 보다. 아랍 사람 같이 생긴 중년 남자가 차 창문으로 팔을 빼고 곧장 가라고 가르쳐준다. 길을 건너 야자나무 밑으로 몇 발자국 걷는데 뒤에서 계속 경적소리가 난다. 돌아다보니 조금 전 그 남자이다. 타란다.
친절하게도 이 남자는 일부러 길을 돌아 산자락의 터미널까지 나를 태워준다. 걸어왔으면 족히 30~40분은 걸릴 거리이다. 텅 빈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funivia(리프트)에 오르니 트라파니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유명한트라파니 염전도 보이고 지중해가 눈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날씨가 좋을 때는 튀니지 연안도 보인다고 한다. 언젠가 꼭 한 번 와보고 싶던 북아프리카로의 관문 트라파니이다. 한때 페니키아인이 지배하고 카르타고와 아랍인들이 지배하던 땅, 시칠리아의 그 어느 곳보다도 아랍적인 곳. 사람들의 생김새도, 도시의 분위기도 아랍 냄새가 물씬 난다.
나는 한때 이곳에서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트라파니에서 튀니지까지 최단 거리는 불과 128km의 거리이다. 4,40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이어진 육지였다. 2천 년 전에도 배로 하루면 와 다을 수 있는 거리였고 지금은 페리로 불과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지금도 수많은 아프리카 보트피플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오는 길목이다.
푸니비아(리프트)를 타니 10여 분만에 에리체 정상에 닿는다. 해발 751m. 북아프리카에서 배를 타고 보면 마치 등대처럼 해안가에 우뚝 솟은 돌산 위의 도시이다. 돌로 차곡차곡 쌓은 트라파니 문(Porta Trapani)을 지나 시가지로 들어서니 도시는 온통 회색톤이다. 정교하게 다듬어 깔아놓은 포장석과 집들, 교회와 성들도 회색 일색이다.
중후하고 견고한, 다듬지 않은 회색 중세도시.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에서 보던 잘 다듬어진 중세 도시들과는 딴판이다.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고 매력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에리체는 시칠리아의 다른 도시들처럼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3,000년 전에 순수한 시칠리아 원주민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신화의 섬 시칠리아에서 에리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무대이기도 하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s)가 살았다는 땅이다. 또한 에리체는 트로이 멸망 이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던 아에네스(Aeneas)가 세웠다는 비너스 신전 유적터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비너스 숭배의 땅이기도 하다. 한동안 아랍의 지배를 받다가 12세기 노르만에 정복된 이후 지금의 모습을 한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중세도시가 형성된다.
도시의 건물 대부분이 노르만 고딕 양식으로 견고하게 높이 세워져 유사시에는 방어 진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산 위의 도시라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다. 가져간 스웨터 등을 다 꺼내 입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좁은 거리 여기저기에는 아랍풍의 도자기 기념품점들과 아랍식 요리 쿠스쿠스 식당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거리 광장 한 곳에는 아직도 코닥 필름 광고가 버젓이 붙어 있는 상점도 보인다. 설마 지금도 코닥 필름을 판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시칠리아 기행문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카지노 쿠폰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카지노 쿠폰 성 라푸타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애니메이션을 본 적은 없지만 바다에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에리체는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천공의 도시로 변할 것만 같다.
맑은 날 750m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버스를 타고 올라왔으면 그 절경들을 제대로 구경할 수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랍인이 만든 Castello Pepoli(페폴리 성)도, 노르만인이 만든 Castello Venere(비너스 성)도 미쳐 둘러볼 시간이 없다. 서둘러 오늘의 최종 목적지 세제스타(Segesta)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이곳에서는 버스도 기차도 없단다. 택시도 일요일이라 불러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트라파니로 도로 내려가서 버스로 가든지 기차로 가란다. 에리체에 머문 시간은 겨우 1시간 남짓뿐이다. 별수 없이 처진 어깨로 Funivia(리프트)를 타고 다시 트라파니로 내려온다. 오늘 과연 세제스타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