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Jan 04. 2025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카지노 게임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카지노 게임을 읽고

카지노 게임

고전책 읽기 모임에서 이탈로 칼비노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 모임에서 읽은 책은 <나무 위의 남작이었는데, 초반에는 이 작가의 스타일에 문장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었다. 중간 좀 안 되는 지점부터 속도가 나기 시작했고 끝에 다다를수록그 뒷장, 바로 뒷장이 궁금해져 멈출 수가 없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이상형은 처음 만난 사람이라던가? 유치한 농담이지만 처음 만난 이탈로 칼비노에게 흥미가 생기니 한 권으로 그 흥미를 마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 3부작에 해당하는 책을 모두 읽어보기로 했다. 마침 책도 얇아서 부담이 적었다. 읽으면서더욱 이탈로 칼비노에게 빠지게 되었다.


<반쪼가리 자작은 3부작 중 가장 먼저 발표한 작품인데, 이 순서대로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포탄에 맞아 몸이 반쪽이 나서 한쪽은 극단적 악한 존재로, 나머지 반쪽은 극단적 선한 존재로 지내다 결국은 합쳐진다는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그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서 엘리스 몸이 마구 커지고 작아지는 데에 전혀 위화감이 카지노 게임 것처럼 대놓고 허풍을 탕탕치니 어이없지만 멱살 잡혀 다음 페이지로 계속해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시작과 동시에 뻥을 어마어마하게 치니 그야말로 충격요법이랄까. 이탈로 칼비노의 환상적이고 은유와 알레고리가 범벅된 글들을 쾅하고 사고가 나듯 눈앞에서 받아들이고 나면 그다음책을 흡수하는 게 훨씬 편했을 것이다.


몸의 반쪽만 남았는데 어떻게 말을 타고 걷고 결투를 청카지노 게임 생활을 하지? 라며 글을 읽는데, 이탈로 칼비노는 또 그야말로 탁월한 묘사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망토는 깃발이 깃대에 매달려 있듯 뭔가에 걸쳐져 있다는 표현이나, 반쪽 인간이 말에 타기 위해 발명한 장치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래서 절대 현실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절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보게 된다. 대단한 그리고 섬세한 허풍쟁이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는 단편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복잡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동정이 일다가도 미움이 이는 그런 인물들이다. 사람을 죽이는 단두대나 고문기구 같은 것을 만들면서 괴로워하지만 더욱 아름답고 고도화된 기구들을 만들어내며 희열을 느끼는 피에트로키오도가 그랬다. 의사라고 하지만 사람들을 진료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오히려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 후에 나타나는 도깨비불 같은 것을 연구하는 트렐로니가 그렇다.마을에서 쫓겨나 외딴곳에 살며 마을 사람들에게 얻은 물건과 음식으로 살아가는 문둥병 환자들에게는 동정심이 일다가도 받아온 물건과 음식을 허투루 버려가며 쓴다거나 음란한 유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장면에서는 그 동정심이 싹 사라지기도 한다. 황무지에 사는 위그노교도는 교리에 맞춰 철저한 금욕과 규칙에 맞춰 살지만 정작 그 교리를 적어둔 책도 자료도 없고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카지노 게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도달하고픈 목표와는 별개로 흐르는 행위들, 고귀한 이상을 세워두지만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자극에 휘둘리는 삶, 내 속에 존재하는 도덕성과 타협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욕심. 그런데 어쩔 것이냐. 그게 바로 카지노 게임의 삶인 것을. 그렇다면 카지노 게임는 선한 반쪼가리 자작과 같은 삶을 지향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선한 반쪼가리 자작이 등장했을 때에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이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이나 내 머릿속에 들었다. 분명 그랬다. 그러나 극단적 선함은 불편함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불행을 가져왔다. 위그노교도들의 노고 어린 농작물을 굶고 피폐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무조건 저렴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매일같이 설교를 하는 것이나, 선의로 노인에게 제공한 지팡이가 아내를 두들겨 패는 데 사용되는 것이나, 문둥병환자들의 영혼을 치료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그들의 방탕한 시절이 끝나 결국 절망과 눈물만 남은 이야기들이 그랬다. 이쯤 되면 순수 선이라는 것이 과연 개인에게 관계에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질문에 소설은 아니라고 답한다. 인간의 삶은 그보다는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선 <노르웨이 숲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 아버지의 병실에서 이야기한 '연극사 2'가 생각났다. 에카지노 게임피테스의 연극은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어서 이것저것 마구 뒤엉켜 꼼짝도 못 하게 돼버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그건 모든 사람의 정의가 실현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이 달성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존재는 교통정리를 하듯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 버린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삶은 그렇게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교통정리하듯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소설은 악한 자작과 선한 자작을 붙여 하나의 완결성 있는 인간을 만듦으로써 주장을 완성한다. 카지노 게임에게는 선한 면도 악한 면도 모두 존재한다. 내적 외적으로 그 둘의 싸움은 어느 한 편의 승리로 끝나지 않으며, 어느 순간에는 어느 것이 악한건지 선한 건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다. 그저 그 순간순간 주어지는 환경과 당대에 통하는 규칙, 대략의 상식 안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것이다. 오히려 반쪽이었을 때 완벽했던 존재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불안한,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존재가 된다. 물론 책에서는 두 반쪽이 재결합한 경험이 있으니 매우 현명해졌다고 표현한다. 정반합의 과정이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책에서는 또 이런 단서도 달아놓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의 화자였던 자작의 조카는 이 사건을 겪으며 어린아이에서 사춘기 소년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부족함과 슬픔을 느낀다. 예전의 순수했던 어린 자작의 상태가 된 것이다. 의사이자 소년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트렐로니마저 떠나면서 이 소년의 불안함은 극도에 다다른다. 트렐로니를 실은 배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소년은 이곳, 의무와 도깨비불만이 가득 찬 카지노 게임의 세계에 남아 있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어른이기에 사회구성원이기에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칙, 그리고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해괴한 도깨비불이 공존하는 이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상반된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이 세계는 반쪼가리 자작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이기도 하고, 그러나 융합되지 못하고 섞이지 못한 불안전한 상태이기도 하다. 둘을 겪었기 때문에 현명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불안한 감정이 가득한 사춘기 젊은이의 상태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소년도 삼촌 자작이 겪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고 정반합의 과정을 거칠지도 모르겠다. 분명 책은 끝났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소년의 조카, 손녀 손자를 거쳐 오랜 시간 유사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시대로 이어져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다. 그야말로 각자의 사정으로 뒤엉켜 혼란만이 가득한 이 세계, 반쪼가리 자작과 소년이 살았던 또 다른 태랄바로 말이다.



<100자 평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그저 재미로 끝나지 않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불안카지노 게임 슬픈 이 시대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사형대를 만들지 물방아를 만들지 고민하게 만든다. 제대로 된 허풍과 묘사에 읽는 내내 놀이기구를 타듯 신나는 건 덤.

카지노 게임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