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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Mar 17. 2025

'직면'과 '응축', 낭만을 찾아서

베르그손 <물질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업 후기 (11)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바닥으로부터 불러내온 관념, 즉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점점 더 잘 운동 도식에 삽입될 수 있는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발전된다.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더 완전한 표상의 형태를 취함에 따라 더 구체적이고 더 의식적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그것을 끌어들이고 그것이 그 틀을 채택하는 지각과 더욱 혼동되려는 경향을 띤다. 『물질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눈다. 바로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습관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다.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겪어온 개인적 체험 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다.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은 뚜렷하지 않고 뿌옇고 모호하게 존재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의미한다. 반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내가 의식 속에 떠올릴 수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다. '습관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내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한 것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떠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떠올려지고 행동하게 되는 행위에 대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모든 순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의식 속에 떠올릴 수 없다. 어제 내가 하루종일 무엇을 했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무슨 대화를 했는지, 식사는 무엇을 했고 맛은 어땠는지··· 등을 떠올려보자. 순간순간들은 떠올릴 수는 있어도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순간 전체를 떠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편적인 순간들 속의 느낌과 생각들이 마치 만화의 한 컷이나 사진 한 장처럼 카지노 게임 사이트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화의 한 컷, 혹은 사진 한 장 사이를 우리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지 못한다. 이 때 만화의 한 컷 (사진 한 장)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사이를 포함한 만화 전체가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다. 우리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한다' 라고 하는 것은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삶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까?


완전한 지각의 두 흐름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잘 싶은 소망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운동선수', '작가' 처럼 특정 직업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부모'나 '부자' 처럼 어떤 상태가 될 수도 있다. 혹은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을수도 있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을수도 있다. 이 소망(꿈, 삶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비밀이 바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있다.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1) →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 운동적 도식 → 지각의 틀 → 새로운 지각 →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섞임 →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2) ...
카지노 게임 사이트'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화 될수록 더 잘 지각하게 된다


먼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베르그손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화 된다. 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점점 더 잘 운동 도식에 삽입된다. 이를 통해 대상에 대한 더 완전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찾게 되고, 이를 통해 외부 대상에 대한 변화된 '지각의 틀'을 가지게 된다. 이 '지각의 틀'에 포획되는 외부 대상에 대한 지각들을 끌어당기게 되고, 이것이 기존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섞이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 생성되고 이것이 순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저장된다. 즉,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화 될수록 더 많이 지각하게 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구별되는 지각은 반대 방향의 두 흐름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는 구심적이어서 외부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심적이어서 우리가 '순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 이 두 흐름이 결합하여 만나는 지점에서 그것들은 명확하게 식별된 지각이 된다. 『물질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앙리 베르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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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더 잘 알게 (식별하게) 되는 것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관계된 지각의 두 가지 흐름(구심적, 원심적)에 따른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는 남자친구 (나) 가 있다고 해 보자. ① 그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여자친구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알았다. ② 여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남자친구는 예전에 여자친구가 우울해 했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졌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에서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화 시킨다. ③ 길가에서 베스킨라빈스를 발견하고 여자친구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말한다. ④ 그런데 갑자기 여자친구의 기분이 더 안 좋아진 것이다. 알고보니 여자친구는 우울한 것이 아니라 친구와 다투고 화가 났던 것이었다. ⑤ 남자친구는 고민한다. '이럴 때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매운걸 먹어야 하는거 아닐까?'.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하니 여자친구의 기분이 좋아졌다. ⑥ 이 새로운 카지노 게임 사이트 ('화가 났을 때에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떡볶이구나')이 기존의 순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섞인다.


이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들 자체는 평소 여자친구가 기분이 좋을 때에는 무용하게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가 특정 상황 (여자친구가 기분이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다시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화 되어 사용된다. 이 때, 식별은 원심적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외부대상) 그리고 구심적 (외부대상 →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잠재적 상에서 실제 운동으로: '직면'과 '응축'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현재화됨에 따라 몸에 대응하는 모든 감각을 일으키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런 잠재적 감각 자체가 실재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게 하고 그것에 습관적으로 뒤따르는 운동과 태도를 몸에 새기려는 경향을 가져야 한다. 『물질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앙리 베르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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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꿈(삶의 전환)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과정은 위에서 예를 들어 설명했던 지각의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실제 운동 (행동,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은 '순수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상카지노 게임 사이트'화 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즉, 이 과정을 통해 '잠재적 상'과 '잠재적 감각'이 불러 일으켜지고, 이것이 실제 운동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잠재적 상'이 '잠재적 감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직면'의 과정으로, 그리고 '잠재적 감각'이 '실제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응축'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삶의 변화를 실제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이 '직면' 과 '응축'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 자신의 적성이 아닌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 있다고 해 보자.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첫째, 다른 업종으로 이직하고 싶다는 '잠재적 상' 을 떠올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 해야 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을 한다거나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준비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과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자기정당화를 하곤 한다. "어차피 무슨 일을 하든 힘든건 다 똑같아" "이 일도 하다보면 재미있어" "일은 별로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니까 괜찮아" "지금 내 상황에 이만한 직장이 어디있어" "내가 이직 준비하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져서 안돼". 하지만 만약 이 '직면'의 과정을 제대로 겪는다면 그 사람은 직장에서 소름이 돋거나 짜증이 나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둘째, '직면'을 하더라도 그 잠재적 감각을 실제 운동 (이직준비) 로 이행하기까지는 '응축'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종종 주변에 언제나 불평불만 (상사욕, 동료욕, 회사욕, 거래처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직장에 대한 직면을 해서 잠재적 감각은 느끼지만, 이것을 응축하지 못한 채 휘발 시켜버리는 사람이다. 반면, 묵묵히 일하다가 갑작스레 사직서를 내고 이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직장에 대한 불만을 온몸으로 응축시켜서 실제적인 운동을 해 낸 사람들이다.



석사과정을 졸업했던 시기, 나는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전공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교 학부 5년 대학원 석사과정 3년이라는 8년의 시간이 아까워서, 그리고 그 시간동안 적지않은 노고를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결정이 틀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못해 합리화를 했다. 내가 축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이유는 고귀한 이유 (인류와 동물의 생명권과 평화를 위하여) 라고 포장했다. 실제로는 편하고 명예도 있으며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할 자신이 없어서, 외국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나의 마음을 직면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맞이했다. 코로나 19가 터져 학교가 셧다운 되었다. 실험실에 출근을 하지 않은 첫 날, 외면해왔던 잠재적 감각들 (무기력, 우울, 분노, 짜증 등)이 터져나왔다. 그 시간동안 나는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글들을 쓰며 나의 지나온 삶들을 돌아보았다. 그 응축의 과정들을 거치고 나는 유학을 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취직이라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에게 얼마 전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박사과정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나의 브런치 글을 구독하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보내왔던 카톡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친구는 자신이 공부를 하며 많은 동물들을 죽였다며 힘들어했다. 무슨 의미로 이 연구를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포스트닥터로 근무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감정이 폭발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는 진보적인 가수를 좋아하고, 종종 나와 철학적이거나 인문학적인 대화를 하는것을 즐겼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여러가지 어쩔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어디에 있든 나를 응원한다고 했던 친구는 그 이후로 카지노 게임 계정을 삭제한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언젠가 이 글을 보았으면 좋겠다.


'진짜 낭만'을 찾아서


나에게도 직면하거나 응축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최근에는 <글쓰기와 실전이라는 글을 쓰고 많이 부끄러웠다. 그 글에 나는 이십대 때에 내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돈을 벌었고 '현실' 속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해 스스로를 대견해 하듯이 적었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중산층 부모' 라는 믿을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한'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나의 낭만은 진짜 낭만이 아니라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낭만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랬으니 진짜 꿈을 이루기 위한 '실제 운동'을 이루기 위한 응축의 과정으로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직면' 하고 '응축' 해야할까? 나의 현실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언젠가 스승이 경제적 형편이 넉넉한 부모를 둔 사람들에게 해 준 조언이 있다.


'허세' 부리지 말고, '착취'하지도 말고, '균형'잡고 돈을 벌어라. 부자 부모를 둔 이들의 세 가지 밥벌이가 있다. 부모 돈을 거부하고 스스로 돈을 버는 일, 부모 돈을 받아서 쓰는 일, 부모 돈(을 기반)으로 스스로 돈을 버는 일. 첫째는 허세다. 젊음의 치기에 부리는 허세. 부자 집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약하게 길러진다는 것이고, 그 약함으로 세상과 정면승부하려는 것은 허세다.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부잣집 도련님들의 허세는 대부분 실패한다. 둘째는 착취다. 땀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먹는 착취. 셋째는 균형이다. 있는 그대로의 허세를 부리지도 말고, 착취하지도 말고,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라. - 황진규


더 사랑하는 사람과는 '의논'하고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통보'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태도다. 나는 아직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나의 퇴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시간 차는 있겠지만, 나의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부모님에게 퇴사 사실을 알리는 것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통보'를 해야할수도 있고 '의논'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약하게 길러져서 약하게 살아왔던 내가 세상과 정면승부 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허세일 뿐만 아니라 소중한 관계를 깨어지게 하거나 타인에게 슬픔을 줄 수 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건, 젊음의 치기에 부리는 허세로 퇴사를 했다는 사실을 아프게 직면하는 것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의 현실이다.


진짜 낭만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진짜 낭만' 은 '현실'과 '낭만' 너머에 있다. '현실'에서 '낭만'의 민낯을 여실히 보고 '진짜 낭만' 찾으러 떠날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내겠다. 그렇게 나도 '낭만'을 넘어 '현실'과 '낭만' 사이의 '진짜 낭만' 을 찾으러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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